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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호] 50년을 기다려 살아난 가시연, 되살아난 경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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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호] 50년을 기다려 살아난 가시연, 되살아난 경포호

2016.08.04 16:00

가까워서 자주 찾고, 익숙해서 편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필자에겐 경포호가 그렇다. 지난 겨울엔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벚꽃이 활짝 핀 봄엔 사랑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호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호수도 매우 아팠음을 뒤늦게 알았다. 물론 지금 경포호는 건강하다. 하지만 다시 건강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호수에 희망을 불어넣은 것이 있다. 가시연이다. 꽃이 피어나는 여름. 경포호를 찾았다.

 

가시연꽃 발원지로 향하는 길. - 고기은 제공
가시연꽃 발원지로 향하는 길. - 고기은 제공

가시연을 만나기 100m 전  


“오늘은 가시연을 볼 수 있나요?”


‘네’라는 대답을 들은 건 경포가시연습지 방문자센터를 세 번째 방문한 날이었다. 드디어 볼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들떴다.‘그대에게 행운을’이라는 꽃말처럼 꽃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옛 어른들은 백 년 만에 한번 보는 꽃이라고도 했다. 백 년 만에 피는 꽃이어서가 아니다. 그만큼 보기 힘든 꽃이라는 의미다. 수심, 수온, 일조량.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피지 않는다.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운 식물이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꽃이니 몇 번 헛걸음하는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가시연이 피어나길 기다리며 찾고 또 찾았던 경포가시연습지. - 고종환 제공
가시연이 피어나길 기다리며 찾고 또 찾았던 경포가시연습지. - 고종환 제공

가시연이 피어난 습지로 향하는 중, 배가 제법 통통한 가시연을 발견했다. 곧 피어날 준비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2주 전쯤 나타난 것인데 조건이 맞지 않아 꽃은 피지 않은 채 씨앗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꽃이 피지 않았는데 씨앗이 생긴 걸까. 가시연은 폐쇄화다. 자가수분해서 스스로 종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꽃을 피우지 않은 채 종자를 만든 가시연(왼쪽). 쪼글쪼글한 잎이 쫙 펴진다. 잎의 지름은 보통 20~120cm이지만, 최대 2m까지 달하기도 한다(오른쪽). - 고기은, 고종환 제공
꽃을 피우지 않은 채 종자를 만든 가시연(왼쪽). 쪼글쪼글한 잎이 쫙 펴진다. 잎의 지름은 보통 20~120cm이지만, 최대 2m까지 달하기도 한다(오른쪽). - 고기은, 고종환 제공

가시연은 한해살이풀이어서 그해에 잎도 줄기도 모두 물에 사그라든다. 종자만 남겨둔 채 깨끗하게 사라진다. 종자는 둥둥 떠다니다가 적합한 곳을 찾아 가라앉는다. 그곳이 자신이 태어날 자리가 된다고 한다. 그다음 해에 모두 발아하는 것이 아니다. 발아하기 최적의 조건일 때를 기다린다. 그것이 10년이 되든, 20년이 되든 말이다. 1~2년 안에 물에서 발아가 안 되면 썩는 다른 식물의 씨앗과는 달리, 가시연은 매토종자이기 때문이다. 발아력을 유지한 채 땅속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습지를 가르는 나룻배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승선 최대 인원은 6명이다. - 고종환 제공
습지를 가르는 나룻배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승선 최대 인원은 6명이다. - 고종환 제공

병들어 가던 호수, 사라졌던 가시연, 다시 살아나다 


때를 기다리는 동안 평온한 것은 아니다. 설치류의 먹이가 될 위기가 빈번하다. 서식지가 사라지면 영영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1960년대 식량이 부족해 배고픈 시절. 경포 호수 주변 습지를 모두 논으로 개간했다. 서식지가 사라지자 가시연도 사라졌다. 문제는 가시연만이 아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면서 호수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1910년대에만 해도 약 160만㎡ 면적에 둘레가 12km나 되는 석호였던 경포호. 현재는 약 89만㎡, 둘레는 4.3km다. -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1910년대에만 해도 약 160만㎡ 면적에 둘레가 12km나 되는 석호였던 경포호. 현재는 약 89만㎡, 둘레는 4.3km다. -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호수의 크기도 대폭 줄어든다. 1970년 초, 경포호로 흘러오던 경포천과 안현천 두 물길을 곧바로 바다로 흘러들도록 직강화했다. 하천물길의 유입이 끊겼다. 하구에 보를 설치해 바닷물도 단절되자 경포호는 급격히 탁해졌다.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등 생태계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2000년대 초 경포호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면서 생태습지복원사업이 추진된다. 지역 전문가, NGO, 지역주민, 공무원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복원방향을 설정했다. 생태계의 구조적, 기능적 복원을 통해 습지 본래의 기능인 홍수 예방, 야생생물의 서식처 기능, 생물 다양성 증진, 지속가능한 이용 등을 고려해 조성한다.

 

수면이 거울같이 청정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경포호. 한때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 고종환 제공
수면이 거울같이 청정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경포호. 한때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 고종환 제공

조성되는 과정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가시연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50년 만이다. 수심, 수온, 일조량이 매토종자 발아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어 자연 발아한 것이다. 생태습지복원의 청신호를 켠 셈이다. 꽃이 피었다고 하지 않고, 부활했다고 표현할 만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 땅속에 살아있을 수 있는 매토종자라고 해도 무려 50년을 묵묵히 인내한 것은 참으로 경이롭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기에 더 귀하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시 볼 수 있음에. 그리고 습지가 건강해지고 있음을 가시연이 온몸으로 답해 준 것에. 

 

가시연꽃 발원지에서 발견한 꽃봉오리.연잎을 뚫고 올라와 있다. - 고종환 제공
가시연꽃 발원지에서 발견한 꽃봉오리.연잎을 뚫고 올라와 있다. - 고종환 제공

드디어 마주한 가시연


사진으로만 본 가시연을 드디어 마주했다. 최대 2m까지 달한다는 잎에 비해 꽃은 작기만 하다. 최대한 자란 크기가 어른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한 가시연은 찾은 그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가시연이란 이름대로 가시가 무성했다. 보랏빛 꽃을 둘러싸고 있는 꽃받침 조각은 든든한 호위무사같다.

 

작게 피어난 가시연을 찾기란 쉽지 않다.두 눈 크게 뜨고 찾을 것! - 고종환 제공
작게 피어난 가시연을 찾기란 쉽지 않다.두 눈 크게 뜨고 찾을 것! - 고종환 제공

과연 얼마 만에 피어난 것일까. 알 길은 없다. 다만 어렵게 꽃이 피었는데 지기까지 고작 이틀이라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 사이에도 오후 3~4시면 어김없이 잠을 자러 들어가기 때문에 꽃이 핀 모습을 보는 시간은 더 짧다. 활짝 피어나 뽐내기 바쁜 꽃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해져 버린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듯하다. 한편으론 워낙 예민한 식물이어서 이렇게라도 해서 자신을 지키려는 게 아닐까 싶다.

 

수질정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애기부들과 연꽃. - 고종환 제공
수질정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애기부들과 연꽃. - 고종환 제공

다양한 수생식물들 사이에서 자리를 꿋꿋이 지키기도 쉽지 않다. 이곳에 서식하는 수생식물은 수질정화식물이다. 부들, 연꽃, 물옥잠, 고마리 등은 더러운 물을 빨아들여서 깨끗한 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 것은 물론 홍수, 가뭄 조절도 톡톡히 하기에 인간에겐 이롭다. 하지만 가시연에겐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다. 부들이 자꾸 밀고 들어오니 자신의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일반 연꽃들이 지상으로 쑥쑥 올라와 그늘을 만드니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수생식물들끼리도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셈이다. 

 

아름다움을 더하는 노랑어리연과 물옥잠 - 고종환 제공
아름다움을 더하는 노랑어리연과 물옥잠 - 고종환 제공

가시연은 자신의 잎을 뚫고 나오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가시가 돋아나 있어 잘 안 뚫릴 것 같지만 잘 뚫린다. 오히려 잘 안 뚫리는 건 섬유질이 많은 일반 연잎이다. 가시가 촘촘한 연잎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듯해서인지 잎을 뚫고 올라와 있는 가시연꽃이 꽤 안정돼 보인다. 작년에 가시연을 보호하고자 인위적으로 천이작업을 해주었다고 한다. 올해는 부디 양껏 자신을 꽃피웠으면 좋겠다.

 

수줍게 피어난 수련! 오후 2시가 되면 잠자러 들어가니 늦지 말 것. - 고종환 제공
수줍게 피어난 수련! 오후 2시가 되면 잠자러 들어가니 늦지 말 것. - 고종환 제공

생태관광지로 거듭난 경포호, 가시연습지


2014년 경포호와 가시연습지는 생태관광지로 선정되었다. 경포호를 되살리고자 한뜻을 모아  부단히 애쓰고 노력한 결과다.‘UNESCO MAB(Man And Biosphere Program)-인간과 생물권 프로그램’개념을 도입한 복원대상지 공간구성부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복원한 것이 그 힘일 것이다. 인간의 간섭이 없는 자연 서식처를 마련하고, 새들이 앉는 곳도 배처럼 해놓는 등 세심함이 읽힌다.

 

동해안 제일의 철새도래지이며, 중간기착지로서 이동하는 조류에게 매우 중요한 터전인 경포호. - 고종환 제공
동해안 제일의 철새도래지이며, 중간기착지로서 이동하는 조류에게 매우 중요한 터전인 경포호. - 고종환 제공

생태가 살아나면서 먹을 것이 많아지고 쉴 곳이 많아지면서 이곳을 찾는 생물도 부쩍 늘어났다. 우리나라를 찾는 550여 종의 조류 가운데 300여 종의 조류가 관찰되었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수달과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삵도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철새들. - 고종환 제공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철새들. - 고종환 제공

어렵게 건강을 회복한 만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럴 때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눈높이다. 보완할 건 보완하되, 손대지 말아야 할건 손대지 말아야 한다. 가령 풀을 제거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풀을 제거했을 때, 동물이 쉴 곳 하나를 잃는 것인지도 모른다. 관광생태가 아니라 생태관광이라는 걸 늘 명심해야 것이다.

 


꿀팁 5큰술 


<①큰술> 주소 :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30 (저동 144-3)
<②큰술> 가시연습지를 탐방하기 전, 먼저 경포가시연습지 방문자센터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방문자센터는 강릉 3.1운동기념탑 주차장 내에 위치하고 있다.
<③큰술> 방문자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자연환경해설사와 습지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석호, 가시연습지 팸플릿을 얻을 수 있다. 현장 해설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되지만 현장에서 직접 신청해 간단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④큰술> 나룻배는 하절기에 오후 8시 ~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제외하고 이용 가능하다.
<⑤큰술> 도깨비방망이, 긴손잡이국자 등 다양한 호박을 만날 수 있는 관상용 호박터널도 놓치지 말 것!

 

이색 호박이 가득! 호박 이름을 추리해서 맞춰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 고종환 제공
이색 호박이 가득! 호박 이름을 추리해서 맞춰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 고종환 제공

석호 두 번째 이야기, 경포호 뷰레이크 타임을 마무리하며


우선 경포호 탐방에 도움을 주신 박경혁 선생님, 서용숙 선생님, 김승녀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몇 번을 찾아가도 늘 반갑게 맞아주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는 마음에 감동했다. 더운 날씨에 기꺼이 동행해 찬찬히 설명해주셔서 참 든든했다.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경포호와 가시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가까워서 귀한 줄 몰랐다. 익숙해서 소중함을 몰랐음을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시연은 알면 알수록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사라질 위기에서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견디어 냈다. 언젠가 싹 틔울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50년의 기다림 앞에서 조급한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때를 기다릴 줄 안다. 설령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종자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제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꽃을 피우고 피우지 못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가르쳐준다. 가시연처럼 우리에게도 발아력이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발아력이다. 무언가를 싹 틔울 힘을 기르는 중이다. 그러니 결코 자신을 무가치하다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가시연의 꽃말처럼 당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길 빈다.

 

 

필자소개
고기은. KBS, MBC 방송구성작가, 소셜커머스 쿠팡 여행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길을 잃고 뜻밖의 풍경, 인연을 만날 때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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