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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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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행복’

2016.08.06 18:00

무더운 낮밤이 연일 지속되는 한여름이다. 자연 상태로는, 해발 오륙백 미터쯤 되는 강원도 산상에나 올라 있어야 비닐하우스 같은 이 불볕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날씨에서 몸의 행복은 ‘피서’(避暑)일 수밖에 없다. 손쉽게는 에어컨이 가동된 공간 속에 있는 것이지만, ‘전기세’가 아님에도 세금으로 오해할 법한 가정용 ‘전기 요금’의 엄청난 누진제도 때문에 이 나라의 많은 국민들은 집 안 에어컨 앞에서 망설이기 마련이다. 그나마 그 버튼을 누를지 말지를 고민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꼬마들이 선풍기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야릇한 메아리로 제 목소리가 바뀌는 것이 신기해 “아아아~” 소리를 길게 내며 장난치고 있을 것이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그런 이 땅의 무더위는 ‘고온’(高溫)이라는 총각이 난로를 지고 저 혼자 찾아오는 게 아니라, 거대한 분무기를 쏘아대는 ‘다습’(多濕)이라는 연인까지 데려온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의 팔짱을 빼지 않는 다습한 공기는 한반도에서 ‘장마’라는 혼인식을 올리자마자 그와 함께 곧바로 신혼살림을 차리고는 가을 초입 절기인 백로(白露) 때까지 칩거하며 내내 후텁지근한 잔치를 벌인다. 그러고는 개구리가 알을 낳듯 어느새 ‘폭염’이라는 개구쟁이들을 연달아 출산해 한반도 집 안을 떠들썩하게 가득 메운다.


대가족으로 불어난 이들의 잔치는 한낮 동안 가장인 ‘고온’이 소란스레 꽹과리를 치고 아내인 ‘다습’이 묵직하게 징을 치고 부부의 아이들은 샛노란 고깔을 쓰고는 태평소나 장구나 북을 울리면서 곡예를 곁들여 노래를 하며 노는데, 보통은 초복부터 말복까지는 그 신명이 쉽게 시들지 않아 종종 ‘열대야’라는 뒤풀이까지 이어져 저녁은 물론 한밤까지 여흥을 즐기는 바람에 그 집 마당은 좀처럼 그 열기가 식지 않는다. 


그 바람에 그 여름가족과 한집 살림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는 한밤에도 끝나지 않는 더위 잔치 때문에 얕은 잠 속을 드나들곤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풍물놀이 덕분에 대지에서는 온갖 곡식들과 열매들이 무르익어가니, 다시 그 덕을 보는 우리로서는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우리는 그렇게 신열을 앓는 자연에게 보탬이 되기는커녕 내내 해악을 끼쳤으니 가만히 성찰하며 올해 같은 이상 기후를 긍정해야 하지 않을까.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희극에서 대사로써 말했듯이.

 

한햇님(mywaymysoul)(F) 제공
한햇님(mywaymysoul)(F) 제공

그럼에도, 더위와는 누구든 친하고 싶지는 않겠다. 그러니 해마다 찾아오는, 특히 올해처럼 쉬지도 않고 폭염 잔치를 연일 벌이는 여름가족과 동거할 수밖에 없다면, 이런 방법과 느낌으로 열대야를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일단은 고온과 다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야 한다. (에어컨 없이) 손쉬운 방법은 끈끈하고 후끈한 맨몸에 찬물을 몇 분간 끼얹는 것이다. 그러고는 회전 모드와 약풍 버튼을 눌러 선풍기를 돌리고 간소한 차림으로 자리에 눕는다. 양손을 깍지 끼어 팔베개를 한다. 그러고 가만있는다. 아직은 땀이 나지 않는 몸을 향해 선풍기가 천천히 좌우로 고갯짓을 하며 바람을 몰아온다. 그 바람은 먼저 정강이와 무릎을 쓸고 지나가서는 간지럼의 고향인 겨드랑이 골짜기 수풀로 솔솔 불어온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는 동안 마음은 벌써 그 여린 살에 닿을 다음번 바람의 촉감을 기다리게 된다. 그 느낌을 나는 ‘사소한 행복’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한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느껴보시라. 인생이 그렇듯, 이 여름이 가면 느낄 수 없나니.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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