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4000년 전 중국 대홍수 유적 찾았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8월 08일 18:00 프린트하기

“거센 홍수가 하늘로 넘치고 거대한 물줄기가 산을 둘러싸고 언덕까지 덮쳤소. 백성들이 매우 걱정하니 홍수를 다스리도록 시킬 사람이 있겠소?”
- 요임금, ‘사기 본기’(김원중 옮김)에서


역사책을 읽다보면 문득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살다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의 삶과 업적을 기록한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으니 바로 ‘사기(史記)’다. 중국 한나라의 사관 사마천은 왕의 미움을 사 사형을 언도받은 뒤 궁형을 선택하는 치욕을 감수하고 살아남아 여생을 바쳐 이 책을 완성한 뒤 기원전 86년 경 사망했다.


총 130편 52만 자가 넘는 엄청난 분량의 ‘사기’는 2500년의 중국역사를 담고 있다. 사마천이 2100여 년 전 사람이므로 중국역사가 4600년에 이르는 셈이다. ‘사기’는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는데 먼저 ‘사기 본기(本紀)’ 열두 편에서는 왕조나 제왕(천자)이 주인공이다. 다음으로 서른 편으로 이뤄진 ‘사기 세가(世家)’에서 주요 제후(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사기 열전(列傳)’ 칠십 편에서 제왕과 제후들을 도왔던 인물들이 나온다. 이밖에 ‘표’ 열 편, ‘서(書)’ 여덟 편을 더해 총 130편이다.

 

본격적인 중국 제국의 문을 연 하나라의 시조 우임금의 초상. 송나라 화가 마린의 작품이다. 우임금은 대홍수로 인한 재난을 수습해 민심을 얻은 것으로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본격적인 중국 제국의 문을 연 하나라의 시조 우임금의 초상. 송나라 화가 마린의 작품이다. 우임금은 대홍수로 인한 재난을 수습해 민심을 얻은 것으로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하나라, 신화의 끝 역사의 시작


‘사기 본기’ 열두 편은 연대순으로 구성돼 있는데 앞의 몇 편을 어디까지 역사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즉 1편 ‘오제(五帝) 본기’와 2편 ‘하(夏) 본기’, 3편 ‘은(殷) 본기’에 나오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만 은나라는 1930년대 은허에서 궁터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왕조로서 고증된 상태다.


오제는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다섯 제왕으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요임금과 순임금은 이상적인 왕으로 후세에서 널리 칭송됐다. 사마천은 오제 본기 말미에서 그가 참고한 당시를 기록한 문헌에 대해 “다만 깊이 고찰하지 않은 것에 불과할 뿐, 거기에 기술된 내용이 전부 허황한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하는 중국 하나라를 뜻한다. 3편 ‘은 본기’를 보면 하나라의 제후국인 상(商)나라의 탕왕이 포악하고 방탕했던 하의 걸왕을 쫓아내고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때가 기원전 1600년 무렵이다. 참고로 은나라는 상나라의 별칭이다. ‘은 본기’의 기술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라가 가상의 국가일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2편 ‘하 본기’를 보면 국가의 성립과정이 꽤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즉 순임금 시대의 신하 우(禹)가 황허(黃河) 일대에서 대대적인 토목사업에 성공하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게 되고 결국 순임금이 죽은 뒤 임금으로 추대돼 하나라를 세운 것으로 나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글 앞에 인용한 것처럼 요임금 시절 대홍수가 일어났다. 요임금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았고 곤(鯀)이라는 사람이 중책을 맡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9년이 지나도록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요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임금은 책임을 물어 곤을 귀향보내고 그 아들 우가 직책을 잇게 했다.


우는 13년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으며 불철주야 토목사업에 매진해 ‘아홉 산의 길을 열고 아홉 강의 물길을 이끌어’ 마침내 지긋지긋한 홍수피해로부터 황허 유역을 살려내고 새로운 국가의 틀을 만들었다. 사마천은 글 말미에 “순과 우 때 비로소 공물과 부세가 갖추어졌다”고 평가했다.

 

최근 고고학 발굴 결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요임금 시대 대홍수는 3900여 년 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지진으로 지시 협곡(Jishi Gorge, 지도 왼쪽)에 산사태로 댐이 생기며 물이 고였고 이듬해 댐이 터지면서 대홍수가 일어나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이 물에 잠기고 지형이 달라졌다. 지도 오른쪽을 보면 대홍수 이전 황하 하류(아래쪽 파란색 점선)와 이후 하류(위쪽 파란색 점선)가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파란색 실선은 오늘날 물줄기이다. 이번 발굴로 초기 청동기 문화인 얼리터우 유적(Erlitou site)이 하나라와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한층 힘을 얻게 됐다. - 사이언스 제공
최근 고고학 발굴 결과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요임금 시대 대홍수는 3900여 년 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지진으로 지시 협곡(Jishi Gorge, 지도 왼쪽)에 산사태로 댐이 생기며 물이 고였고 이듬해 댐이 터지면서 대홍수가 일어나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이 물에 잠기고 지형이 달라졌다. 지도 오른쪽을 보면 대홍수 이전 황하 하류(아래쪽 파란색 점선)와 이후 하류(위쪽 파란색 점선)가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파란색 실선은 오늘날 물줄기이다. 이번 발굴로 초기 청동기 문화인 얼리터우 유적(Erlitou site)이 하나라와 관련이 있다는 학설이 한층 힘을 얻게 됐다. - 사이언스 제공

지진으로 산사태 나 댐 만들어져


학술지 ‘사이언스’ 8월 5일자에는 곤과 우 부자(父子)가 22년에 걸쳐 토목사업을 벌인 끝에 간신히 극복한 대홍수가 4000년 전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는 고고학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이 홍수는 홀로세에 있었던 가장 큰 물난리였다. 놀랍게도 대홍수는 폭우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때문이 아니라 호수의 둑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진 결과로 밝혀졌다.


중국 베이징대 등 여러 기관의 공동연구자들은 하나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하 중류 일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지진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이에 따르면 한 해에 지진이 일어났고 그 결과 티벳 고원 가장자리인 황하 상류 지스 협곡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바위 무더기가 쌓이며 현재 강 수위보다 240미터 더 높은 엄청난 높이의 자연 댐이 만들어졌다. 그 뒤 6~9개월에 걸쳐 물이 고이며 길이가 1300미터에 이르고 수위가 현재 강 수위보다 185~210미터 더 높은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당시 저수량은 120~170억t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참고로 소양강댐의 저수량은 29억t이다).


결국 물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돼 댐이 무너져 그 일대 수천 킬로미터가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연구자들은 둑이 무너지면서 호수의 수위가 110~135미터나 낮아졌고 이때 쏟아진 물의 양이 113~160억t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충격이 워낙 커 황하를 비롯한 여러 하천의 둑이 터지고 토사가 쌓이면서 물길이 바뀌었고 그 결과 비가 내리면 침수가 되는 수해가 반복됐다. 결국 흙을 퍼내 새로 물길을 만드는 대대적인 토목사업을 벌였고 마침내 재난을 극복했다. 그 결과 저지대에서도 마음놓고 농사를 짓게 됨에 따라 황하 주변에 사람들이 늘고 문화가 꽃피었다. ‘사기’에 따르면 이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우임금이다.

 


하나라 역사 300여 년 늦춰져


연구자들은 지스 협곡에 남아있는 최대 30미터 높이의 당시 호수 퇴적층과 댐 아래 황허 주변에 여전히 있는 최대 20미터 높이의 당시 퇴적층에서 시료를 수거해 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전 1920년 경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따라서 곤과 우 부자가 22년에 걸쳐 토목사업을 벌였다면 하나라는 기원전 1900년 경 성립됐다는 얘기가 된다.


흥미롭게도 대홍수의 피해를 입은 황허 중류 일대는 기원전 1900~1550년에 걸쳐 초기 청동기 문화인 ‘얼리터우(二里頭) 문화’가 번성했다. 그동안 얼리터우 문화가 하나라의 존재를 입증하는 고고학 유적이라는 설이 제기됐는데, 이번 대홍수의 증거 발견으로 ‘사기’의 기술이 신빙성이 높아지면서 유력해졌다. 결국 대홍수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토목공사의 성공이 신석기시대가 막을 내리고 청동기시대가 출범한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역사가들은 하나라가 기원전 2200년 무렵 시작됐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중국 정부가 돈을 댄 ‘하-상-주 연대기 프로젝트’는 2000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그 시기를 기원전 2070년 경으로 추정했다. 이번 대홍수 유적 결과로 그 시기가 조금 더 늦춰진 셈이다. 그래도 3900년 전이므로 여전히 아득한 옛날이다.


사마천은 기원전 108년 아버지 사마담을 이어 천문 달력 기록을 총괄하는 부서의 장관인 태사령직을 물려받았다. 당시 사마담은 역사서를 편찬하고 있었는데 죽으며 아들에게 완성을 부탁했다. 사마천은 기원전 99년 패한 장수를 두둔하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형을 언도받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궁형을 감수했다. 오로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사마천은 기원전 91년 경 ‘사기’를 완성했으나 현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공표하지는 않고 딸에게 넘겼다. 그 결과 그와 한무제가 죽고 난 뒤에야 공개됐다. 사마천이 곤과 우의 토목사업에 대해 쓸 때 아버지와 자신을 떠올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6년 08월 08일 18: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8 + 8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