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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중계의 목적은 ‘응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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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20일 19:41 프린트하기

지구촌 스포츠 축제, 2016 리우 올림픽이 폐막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보다 저조한 성적표를 받은 듯하다. 기대에 못 미쳐 선수 당사자는 물론이고 직접 관계자야 내내 무척 아쉽겠지만, 나처럼 관전 자체만을 즐기는 개인에게는 우리 선수를 응원하던 당시야 벌겋게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으로 장딴지를 치고도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다 지난 일일 따름이다.

 

개최 기간 동안 나는 틈틈이 실황 중계 방송을 시청하거나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관심 있는 동영상을 찾아 봤다. 어떤 경기는 10초 안에서 메달 색깔이 갈렸고 10km를 헤엄쳐야 하는 마라톤 수영 경기(여자)는 금메달이 결정되기까지 1시간 56분 32초가 걸렸다. 그렇듯 각 종목의 출전 선수들은 경기를 마칠 때까지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거리를 늘리거나 과녁을 좁히거나 경쟁하는 선수를 압도하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했다. 어떤 선수는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어서거나 세계 최고 기록을 다시 썼고, 또 다른 선수는 자기의 세계 랭킹 순위에 못 미치는 결과에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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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惜敗)한 자국 선수의 눈물을 보면서 덩달아 눈시울을 적신 시청자도 꽤 있었으리라. 관중은 그럴 수 있다. 아깝게 실점을 하면 제 이마에 손벽을 치기도 하고 응원하던 선수가 승리하면 함성도 지르면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들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방송 진행자나 해설자는 개인이 아니라 공공의 역할자다. 그러기에 그들은 경기 내용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하고 감정 노출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국 선수(들)의 경기만 시작되면 무조건적인 억지 칭찬과 응원 일변도의 들뜬 중계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손주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놀기도 잘한다’며 손주 자랑을 늘어놓는 뭇 노인의 말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제 손주를 예뻐하지 않는 조부모가 있겠냐마는, 그 혈연의 사랑이 ‘한겨레’라는 애국애족으로 확장돼 응원하고 있는 국민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더 부추기고 극대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여기는 듯한 중계는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애국 중계’야말로 최고의 중계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애국심에서 우러나오는 자기감정의 물결을 마이크 앞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실황 중계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의 관전 목적은 ‘응원’만이 아니다. 올림픽인 만큼 각국 대표로 출전한 선수들의 세계적인 기량을 즐기기 위함이 더 본원적일 것이다. “아는 만큼 즐긴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려면 관전자도 경기에 대해 알아야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지식을 숙지한단 말인가. 시청자에게는 경기의 규칙과 각 선수의 스타일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최적화는 무엇인지 등의 구조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크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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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중계자는 안경이든 망원경이든 현미경이든 시의적절한 렌즈를 순간순간 시청자의 손에 쥐어주는 역할자여야 한다. 일반인들의 관전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경기 규칙이나 현장 환경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경기 내용의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알기 쉽게 분석해주는 일이 그들의 우선적 책무다. 그래야 그 방면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패색이 짙은 자국 선수의 경기 내용을 두고 그저 컨디션 문제로만 해석하거나, “안타깝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식의 막연한 희망의 발언만 되풀이하는 동굴 속 메아리 같은 생중계는 시청자에게 절망감만 더해줄 뿐이다.

 

경기 결과가 왜 이렇게 됐는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줘야 시청자도 수긍할 테고, 그런 해설은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와 관계자에게는 의미 있는 충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지 ‘우리 선수’이기에 좋은 성적을 바라며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100m 육상 경기에서 세계 기록이 단축되길 바라듯이, 어느 선수이든 그의 기량이 탁월하기에 박수를 보내는 관전 문화도 넓혀져야 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 5000m 여자 육상 경기 중 넘어진 두 선수가 서로를 일으켜 세워 결승점까지 동반 완주한 것처럼, 올림픽의 진정한 의미는 ‘다정히 경쟁하는 지구인 축제’이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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