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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블랙홀로 호킹복사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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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8월 29일 19:00 프린트하기

당시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1990년 스티븐 호킹 교수의 한국방문이 그렇다. 호킹 교수가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강연을 하기로 한 날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필자는 ‘어차피 멀리서 지켜볼 텐데...’라며 발길을 돌렸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비집고 들어가서 ‘현장’을 지켜봤을 것이다.

 

생존한 과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인사인 스티븐 호킹. 1980년대 모습이다. - NASA 제공
생존한 과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인사인 스티븐 호킹. 1980년대 모습이다. - NASA 제공

필자의 마음이 이렇게 변한 건 수년 전 나온 호킹의 자서전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를 읽고 나서다. 책에서 호킹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루게릭병의 진행과정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호킹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42년 태어난 호킹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조정 클럽에 가입해 키잡이를 할 정도로 운동신경에 문제가 없었지만 졸업 무렵부터 몸놀림에서 이상을 느꼈고 자주 넘어졌다. 결국 정밀진단을 받았고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즉 루게릭병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다녔고 결혼까지 했다.


1966년 블랙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호킹은 몸이 점점 굳어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도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1974년 학술지 ‘네이처’에 ‘블랙홀은 폭발할 것인가?’라는 짤막한 논문을 실으며 하루아침에 물리학계의 스타가 됐다. 그 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88년 펴낸 교양과학서 ‘시간의 역사’가 수십 개 언어로 번역돼 천 만부 이상 팔리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호킹의 상태는 꾸준히 악화돼 이 무렵에는 사지가 사실상 마비되고(손가락을 꼼지락거릴 수 있었다) 말도 못했다. 1985년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기관절개수술을 했고 그 결과 목소리를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발음이 부정확해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호킹은 스크린 메뉴에서 글자를 선택해 문장을 구성해 음성을 합성해 대화를 하게 됐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눌렀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된 뒤에는 뺨을 움직여 작동한다고 한다. 이런 역경에서도 정신이 붕괴되지 않고 버틴 호킹은 진정 강한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진짜 블랙홀(위)와 유사 블랙홀(아래). 블랙홀은 중력이 아주 커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체로 그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파란 점선)이다. 만일 그 부근에서 광자쌍이 만들어질 경우 사건의 지평선 바깥쪽의 광자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 이를 호킹복사라고 부르는데 아직까지 관측되지는 않았다. 아래는 유체(루비듐 원자의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의 흐름으로 구현한 유사 블랙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면서 가속되는데 중간에 사건의 지평선(파란 점선)이 있다. 그 주위에 포논쌍이 만들어질 경우 하나(오른쪽)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 최근 이 현상을 실험적으로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 네이처 제공
진짜 블랙홀(위)와 유사 블랙홀(아래). 블랙홀은 중력이 아주 커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체로 그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파란 점선)이다. 만일 그 부근에서 광자쌍이 만들어질 경우 사건의 지평선 바깥쪽의 광자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 이를 호킹복사라고 부르는데 아직까지 관측되지는 않았다. 아래는 유체(루비듐 원자의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의 흐름으로 구현한 유사 블랙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면서 가속되는데 중간에 사건의 지평선(파란 점선)이 있다. 그 주위에 포논쌍이 만들어질 경우 하나(오른쪽)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 최근 이 현상을 실험적으로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 네이처 제공

블랙홀은 검지 않다


1974년 논문은 오늘날 ‘호킹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알려진 현상을 기술하면서 그 결과로 블랙홀 폭발(나중에는 ‘증발’이라고 표현이 널리 쓰인다)로 이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전까지 블랙홀은 말 그대로 검은 구멍, 즉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천체였다. 정의에 따라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으로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호킹은 일반상대성이론, 즉 중력의 영역에 양자역학을 도입하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무 것도 없는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진공은 양자요동으로 끊임없이 입자쌍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상태다. 호킹은 문득 블랙홀의 경계면, 즉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 양자요동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즉 순간적으로 생겨난 입자쌍 가운데 하나는 사건의 경계선 안쪽에, 다른 하나는 바깥쪽에 놓일 경우 안쪽에 있는 건 블랙홀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바깥쪽에 있는 건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다. 이 경우 두 입자는 다시 만나 소멸할 수 없다. 호킹은 이 입자가 광자, 즉 빛일 경우 블랙홀이 빛을 내는 셈이라고 해석했다. 즉 호킹 복사다. 그 결과 ‘블랙홀은 더 이상 검지 않다’는 표현이 나왔다.


그런데 애초에 이 광자는 진공에서 태어난 가상 입자쌍 가운데 하나였다. 즉 가상입자에서 에너지가 양의 값인 진짜 입자가 된 셈이다. 그 결과 블랙홀을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한 입자는 음의 에너지를 갖게 되고 따라서 블랙홀의 에너지, 즉 질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만일 블랙홀에 질량유입이 끊기고 호킹복사가 계속될 경우 결국에는 블랙홀이 사라지게 된다. 다만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나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 1974년 논문에서 호킹은 우주가 시작됐을 때 만들어진 1000조 그램 미만의 아주 작은 블랙홀일 경우 138억 년이 지난 현재가 완전히 증발하는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1974년 논문이 높이 평가된 건 그동안 양립하지 못했던 중력이론과 양자이론이 처음으로 합쳐지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다. 즉 양자역학이 도입되면서 블랙홀도 수명이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힉스입자가 그랬던 것처럼 호킹복사 역시 관측으로 입증하기 전까지는 유력한 이론일 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호킹복사를 관측하지 못하고 있다.

 

음향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호킹복사를 강물과 물고기로 비유한 그림. 앞의 그림과 좌우가 바뀐 상태다(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물리학 제공
음향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호킹복사를 강물과 물고기로 비유한 그림. 앞의 그림과 좌우가 바뀐 상태다(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 참조. - 네이처 물리학 제공

극저온에서 음향 블랙홀 만들어


학술지 ‘네이처 물리학’ 8월 15일자 온라인판에는 유사 블랙홀에서 유사 호킹복사를 확인하는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물리학과 제프 슈타인하우어 교수는 보세-아인슈타인 응축으로 구현한 유사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 발생한 포논쌍 가운데 하나가 호킹복사로 블랙홀을 벗어남을 확인했다. 포논(phonon)은 양자역학에서 음파의 입자 측면을 나타내는 용어다.


진짜 블랙홀에서 진짜 호킹복사를 관측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에너지가 너무 약하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할 방법을 고민해왔다. 198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윌리엄 운루 교수는 ‘음향 블랙홀(acoustic black hole)’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즉 빛(광자) 대신 음파(포논)를 가두는 블랙홀이다. 여기에서는 중력 대신 유체의 흐름이, 광자 대신 포논이 등장한다.


유체의 흐름을 강물의 흐름으로, 음파를 물고기로 표현한 그림을 보자. 강물을 거스르는 물고기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상류에서는 물의 흐름이 느려 물고기는 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중간에 물살이 센 구간이 있고 그 속도가 물고기의 헤엄 속도보다 크기 때문에(초음파 속도) 하류의 물고기는 도저히 상류로 넘어갈 수 없다. 즉 중간 물살이 시간의 지평선이고 그 오른편이 블랙홀이다.


이때 중간 물살 부근에서 양자 음파, 즉 가상의 포논쌍(그림에서 흐린색으로 표현한 물고기쌍)이 생길 경우 물살 바로 위쪽에 생긴 물고기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만(호킹복사) 아래쪽에 놓인 물고기는 하류(블랙홀)를 벗어나지 못한다.


슈타인하우어 교수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구현해 루비듐 원자를 보세-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로 만들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란 여러 입자가 동시에 하나의 양자상태에 놓일 수 있는 경우다. 이 상태에서 음파(포논)의 진행속도는 초속 0.5mm 정도다. 슈타인하우어는 몽블랑 만년필 모양의 길이 수mm인 관에 원자를 가둔 뒤 레이저로 가속시켜 어느 지점에서 음파의 속도를 넘게 조작하는데 성공했다. 즉 음향 블랙홀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때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 발생한 가상의 포논쌍이 헤어지면서 하나는 블랙홀 내부에서 하나는 밖에서 진짜 포논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얽힘 현상을 관찰해 확인했다. 이때 후자가 음향 호킹복사다. 얽힘(entanglement)이란 동시에 생겨난 입자쌍의 양자상태가 서로 묶여 있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다. 참고로 진짜 블랙홀의 경우 광자쌍 가운데 호킹복사만 관측할 수 있지만(물론 가능성으로서) 음향 블랙홀에서는 포논쌍 모두를 관찰할 수 있다.


필자는 슈타인하우어 교수의 실험을 이해하는데 실패했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이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직 호킹 교수의 반응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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