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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이 강한 비결, ‘포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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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03일 10:00 프린트하기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그런데 고체 속을 흐르는 진동과 소리 역시 파동인 동시에 입자다. 고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흔들릴 때 ‘포논’이라는 양자화된 입자가 전파된다. 거미줄이 강한 이유도, 차세대 소재 그래핀이 뛰어난 이유도 포논에 있다.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역학을 정립하는 데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빛은 정수배의 특정한 진동수를 갖는 에너지 알갱이’라는 가설을 이용해 고전 전자기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흑체의 복사법칙을 설명해 냈다. 이를 계기로, 빛의 양자론이 정립됐다. 아인슈타인은 금속에 빛을 쪼였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빛이 입자로 행동한 결과(광양자설)라고 설명하면서,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갖는다는 ‘빛의 이중성’을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빛의 양자론을 확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태동한 지 얼마 안 된 양자역학을 다른 곳에도 적용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체의 비열 문제였다. 비열이란 물질의 온도를 1℃만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다. 비열이 크면 온도를 올리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물은 모래보다 비열이 약 5배 크다. 따라서 모래는 금방 뜨거워졌다가 또 금방 식지만, 물은 온도 변화가 적다.


문제는 고체의 비열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당시 고체의 비열을 설명하는 고전 이론으로 ‘듀롱-페티 모형’이 있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고체의 비열은 온도에 상관 없이 일정해야 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포논(phonon)’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고체를 이루는 원자들 사이의 결합은 용수철 연결로 비유해 생각할 수 있다. 원자 사이의 결합은 온도가 달라지면서 흔들리는데, 이런 ‘열적 요동’이 용수철의 진동 특성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에선 연속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자연수로 셀 수 있는 양으로 재해석 할 수 있다(이를 양자화라 부른다). 전자기파의 진동을 양자화한 것이 바로 포톤(photon), 즉 광자다. 고체 원자들을 잇는 용수철의 진동 역시 양자화할 수 있다. 바로 이게 포논이다. 다시 말해, 포논은 용수철의 ‘진동 알갱이’다.

 


질량 없고 만질 수 없지만, 힘을 매개한다


포논이라는 용어는 소리(pho-)라는 접두어에 입자(-non)라는 접미어를 붙여 만든 단어로, 실제로 포논이 고체 안에서 소리를 전달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어떤 고체의 한쪽을 두드리면 포논이 전파해 반대쪽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새롭게 만든 고체의 비열 공식(아인슈타인 모형)은 실험결과와 상당히 잘 맞았다. 그런데 그의 성공은 고체 내부의 진동을 포논으로 해석한 데에만 있지 않다. 그는 포논이 보존(boson) 입자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고체 내부의 세상에 보존의 물리학(보즈-아인슈타인 통계)을 적용했다. 비로소 고체의 비열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입자는 스핀 상태에 따라 분류된다. 스핀이 1/2의 정수배(1/2, 3/2…)인 입자들은 원자로를 개발한 유명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따 ‘페르미온’이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는, 페르미온들은 같은 에너지 상태를 가질 수 없고 서로 배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즉 같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 반대의 스핀을 갖는 페르미온끼리만 같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파울리의 배타원리’라고 한다. 페르미온은 대개 양성자, 중성자, 전자 같은 물질을 구성하며,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따라 페르미온 입자로 이뤄진 물질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스핀이 0, 1, 2…등 정수 값인 입자도 있다. 바로 보존이다. 인도의 무명 물리학자였던 사티엔드라 나트 보즈의 이름을 본 땄다. 보즈는 페르미가 개발한 페르미 통계를 공부하고 보존의 물리학을 만들었다. 당시 그는 박사학위도 없는 무명의 물리학자여서 논문을 작성한 뒤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로 보냈다. 다행히 아인슈타인은 그 논문을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꼼꼼히 읽어본 뒤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고 독일어로 번역해 학술지에 제출했다. 바로 보존 입자의 물리학(보즈-아인슈타인 통계)이다. 이에 따르면, 보존 입자는 페르미온과 달리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같은 에너지 상태를 지닌 입자라도 서로 겹쳐서 존재할 수 있다. 만져지지 않는 에너지 덩어리인 셈이다. 이들 보존 입자는 대개 힘을 매개한다.


빛 알갱이, 즉 광자는 보존의 대표적인 예다. 빛은 실험을 해보면 입자의 특성을 보이지만, 질량이 없고 물질을 투과하며 만져지지 않는다. 포논은 어떨까. 원자 사이의 용수철 진동을 양자화한 것이므로 물질이 아니라 단순한 에너지의 진동으로서,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즉, 포논은 광자와 마찬가지로 스핀이 0인 보존 입자다.

 

초전도체 현상. 전자 두 개가 포논을 매개로 짝을 이루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 Henry Muhlpfordt(W) 제공
초전도체 현상. 전자 두 개가 포논을 매개로 짝을 이루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 Henry Muhlpfordt(W) 제공

전자 짝지어 초전도 만들고 전자랑 상호작용해서 격자 뒤틀고…


다른 보존처럼 포논 역시 힘, 즉 어떤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이 때문에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초전도 현상이 대표적이다. 초전도는 낮은 온도에서 물체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전류를 한번 흘리면 영원히 흐르는 신기한 현상이다. 고전역학으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다.


1957년 미국의 물리학자 존 바딘과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는 초전도의 근본 원리를 양자장론으로 해석한 이론을 발표했다(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BCS이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초전도는 전자 두 개가 포논을 매개로 짝을 이루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큰 홀 안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들이 제각각 움직일 경우, 어떤 사람이 홀 안으로 들어와 반대쪽 출구까지 가려면 많은 사람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홀 안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둘씩 짝을 이뤄 정해진 안무에 따라 춤을 춘다면, 부딪치지 않고 부드럽게 빠져 나갈 수 있다. 이 때 사람들이 전자라면 남녀를 묶어 춤을 추게 하는 음악이 바로 포논이다(포논의 어원이 소리입자 아닌가!). BCS이론에 따르면, 음의 전하를 갖지만 스핀이 서로 반대인 전자 두 개를 포논이 매개해서 짝을 짓게 한다. 그 결과 전기저항이 0이 된다.


전자와 포논이 짝짓기하는 현상도 흥미롭다. 고체 안에서 전자끼리도 상호작용하지만, 전자와 포논도 상호작용을 한다. 고전역학으로 설명한다면, 원자간 결합이 진동하면서 전자가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둘의 상호작용은 고체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 안에서 움직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서로 부딪치고 스쳐 지나갈 뿐 이야기를 나누진 않는다. 이번엔 결혼 정보회사가 적당한 홀에 50여 명의 남녀를 모아놓고 미팅을 주선한다고 해보자. 이 땐 참석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이야기도 나눈다. 만약 남녀 단 둘이 테이블에 소개팅을 한다면 어떨까. 앞의 경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며 서로를 탐색할 것이다.


전자와 포논의 상호작용도 비슷하다. 3차원 모양의 금속(지하철역) 안에 자유전자가 많으면(수많은 사람들), 자유전자와 포논은 서로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이동한다. 둘이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2차원 공간(홀)에 전자가 이보다 적어지면(50여 명의 남녀), 전자와 포논 사이의 상호작용이 생긴다. 0차원 양자점(테이블)에서는 전자와 포논의 상호작용이 너무 강해 전하가 ‘양자 우물’에 갇혀 움직이지 않게 된다.


흥미로운 건 홀과 테이블 그 중간쯤 되는 1차원 상황이다. 원자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용수철 결합을 하고 있는 1차원 격자 구조의 고체가 이에 해당하는데,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일렬로 앉아서 ‘사랑의 작대기’ 게임을 하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1대 1로 매칭되면 모두가 만족한다. 물리학적으로는 에너지가 낮은 상태(안정)가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디에선가 꼭 작대기가 어긋나고, 짝을 짓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하다. 물리학적으로는 에너지가 높아 불안정한 상태다.


마찬가지로, 1차원 구조에서 전자와 포논의 1대 1 매칭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에너지가 불안정해지기 쉽다. 하지만 자연은 에너지가 낮고 안정한 상태로 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정격자가 뒤틀리면서 전자와 포논이 짝짓기를 하게 된다. 이 경우 에너지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안정화된다. 이 현상을 발견한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파이얼스의 이름을 따 ‘파이얼스 왜곡 현상’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재료과학 분야에서 신물질을 만들 때 이 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파이얼스 왜곡을 이용해 개발한 새로운 열전소재(인듐셀레나이드)의 결정 구조. a 방향으로 연결돼 있지 않은 2차원 격자로, 전자를 제한하면 격자가 뒤틀리며 열전도도가 낮아진다. 파이얼스 왜곡은 이 같은 저차원 구조에서 잘 일어난다. - Nature, 이종수 외 제공
파이얼스 왜곡을 이용해 개발한 새로운 열전소재(인듐셀레나이드)의 결정 구조. a 방향으로 연결돼 있지 않은 2차원 격자로, 전자를 제한하면 격자가 뒤틀리며 열전도도가 낮아진다. 파이얼스 왜곡은 이 같은 저차원 구조에서 잘 일어난다. - Nature, 이종수 외 제공

기술적 난제들 중심에 포논이 있다


포논의 물리학을 알면 고체의 열, 전기, 자기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7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팀이 포논의 관점에서 거미줄이 강한 이유를 분석한 논문을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거미줄의 재료는 고분자 섬유인데, 결정이 규칙적인 부분(결정질)과 결정 구조가 없는 부분(비결정질)이 섞여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거미줄의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결정질의 포논과 비결정질의 포논이 상호작용하면서 거미줄의 탄성률이 커진다. 즉, 거미줄이 충분히 늘어나도 끊어지지 않고 버틴다.


특히 최근엔 많은 과학자가 그래핀의 포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전자기기를 제작할 때 큰 문제 중 하나는, 소자가 집적화될수록 열이 많이 난다는 점이다. 열전도도가 높은 소재를 이용해 열을 방출해 줘야 하는데, 유망한 후보가 바로 그래핀이다. 그래핀을 방열소재로 이용하려면 그래핀 자체의 포논뿐만 아니라 그래핀과 전극 접합소재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포논도 잘 알아야 한다.


이런 연구를 응용하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수도 있다. 예컨대, 필자는 앞서 소개한 파이얼스 왜곡 원리를 이용해 고체 안의 전자와 포논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전기는 잘 통하면서 열은 흐르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Nature 459(7249) 965~968, July 2009).


새로운 기술의 성공 여부는 이제 소재에 달린 것이 많다. 그리고 소재의 열, 전기, 자기적 물성 제어를 통해 새로운 기능성 물질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포논은 답을 갖고 있다.

 

 

※ 필자소개
이종수. GIST 신소재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0년부터 경희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열전소재와 새로운 초전도체 등을 연구 중이다. 이청진이란 필명으로 ‘호수 속에 내 모습 잃어버렸네’란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이종수 경희대 응용물리학과 교수 | 에디터 우아영

jsrhyee@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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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03일 10:0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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