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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향호] 엄마의 마음을 닮은 향호를 다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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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01일 16:00 프린트하기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법칙. 석호의 운명엔 늘 이 법칙이 따랐다. 이로 인해 사라진 호수가 있었고, 사라질 위기의 호수가 있었다. 강릉 향호도 이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다. 향호엔 어떤 위기가 있었고, 현재는 어떠한지를 돌아보았다. 

 

천년 묵은 향나무를 매향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향호. 오랜만에 다시 찾다. - 고종환 제공
천년 묵은 향나무를 매향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향호. 오랜만에 다시 찾다. - 고종환 제공

수심이 깊어진 향호, 수심(愁心)이 깊어지다  


향호를 처음 찾았던 때가 지난 겨울이었다. 얼어있는 호수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았었다. 다시 찾은 호수는 선선한 바람 따라 걷기 좋았다. 고무보트를 타는 사람도 보였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이번에 다시 찾았을 때도 향호는 자꾸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의 마음 같아서다. 늘 내어주기만 하는 것 같다.

 

고무보트를 타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 고종환 제공
고무보트를 타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 고종환 제공

향호는 유역 면적 8.06㎢, 면적 34만 5천㎡의 작은 석호다. 그런데 최대 수심이 15m에 이를 정도로 수심이 깊다. 다른 석호에 비해 유독 수심이 깊기도 하다. 왜 그런 걸까. 향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규모와 형태에 있어서 큰 변화가 없었다. 수심도 2, 3m에 불과했다. 호수를 매립해 농경지를 일구게 되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다른 석호와 마찬가지로 향호 역시 축산폐수, 생활하수 등이 유입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이러한 이유로만 오염이 되었다면 수심이 그렇게 깊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향호 면적 변화.1910년대 42만㎡에서 현재는 34만 5천㎡다. -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향호 면적 변화.1910년대 42만㎡에서 현재는 34만 5천㎡다. - 원주지방환경청 제공

수심이 깊어진 이유는 따로 있다. 동해안 석호의 저층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모래로 돼 있는 저층, 펄로 돼 있는 저층,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혼재된 저층으로 나뉜다. 향호의 저층은 모래로 돼 있다. 질이 좋은 규사가 호수 바닥에 있었다. 규사는 유리나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로 쓰이는 하얀 모래다. 이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가만둘 리 없었다. 호수 동쪽 연안엔 규사 채취공장이 있었다. 규사 채취는 무려 20년 이상 계속되었다. 수심은 점점 깊어졌다. 호수 바닥을 헤집어 놓으면서 수질은 더욱 악화되었다. 사시사철 풍성하고 다양한 어종을 볼 수 있는 호수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호수 바닥에 사는 생물을 먹고사는 잠수성 조류들도 더는 머물 수 없는 호수가 돼버렸다.

 

지난 겨울.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로이 서 있는 새 한 마리. - 고종환 제공
지난 겨울. 꽝꽝 언 호수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외로이 서 있는 새 한 마리. - 고종환 제공

수심을 덜어줘야 할 때  


향호는 점점 병들어 갔다. 이를 살리는 것이 시급했다. 2001년 전국내륙습지 자연환경조사를 통해 지형, 생물상 등 생태계 정밀조사가 이루어진다. 향호가 보전 가치가 높은 석호로 입증되면서 중점관리대상 석호 7곳 중 하나로 선정된다. 2000년대 후반에 본격적인 생태복원사업이 진행되었다. 규사 채취로 훼손된 생태를 복원하고 호수 상류 농경지를 습지로 조성하기로 한다. 유입 수량이 부족하고, 하구 막힘 현상이 일어나 수질 오염이 심각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호수 하구에 갯터짐 유발 도류제를 설치하고, 오수처리장을 설치하는 등 다각도로 추진되었다.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는 향호. 공원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 고종환 제공
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는 향호. 공원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 고종환 제공

향호는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고 있는 호수인 만큼 생태복원이 절실하다. 다른 석호와 달리 배후에 담수성 호소가 분포하고 있어 생물들의 서식처는 물론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인 가시고기가 살고 있기도 하다. 가시고기는 부성애가 강한 어류로 알려져 있다. 엄마 가시고기가 알을 낳고 떠나면 아빠 가시고기는 먹는 것도 잊고 잠도 못 이룬 채 알을 지킨다. 알이 쉽게 부화하도록 가슴지느러미를 부지런히 움직여 둥지에 산소를 공급하고, 깨끗한 물을 넣어준다.

 

둘레 2.5km의 향호 산책로. 지압로, 정자, 의자 등이 갖춰져 있다. - 고종환 제공
둘레 2.5km의 향호 산책로. 지압로, 정자, 의자 등이 갖춰져 있다. - 고종환 제공

아빠 가시고기는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까지 지극정성을 다해 돌본다. 갈수록 쇠약해져 가면서도 먹이사냥에 서툰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살까지 내어준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내어준 후 쓸쓸히 죽어간다. 가슴 아린 부성애다. 더 마음 아픈 건 이들의 서식처가 오염된 것이다. 이로 인해 가시고기의 수도 줄어들고 말았다. 이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더 우선으로 복원해야 하는 석호가 있어 보류 상태다.

 

갈대숲과 어우러진 데크길.선선한 바람 따라 걷기 좋다. - 고종환 제공
갈대숲과 어우러진 데크길. 선선한 바람 따라 걷기 좋다. - 고종환 제공

산책로를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바람에 살랑이는 갈대를 보니 가을의 절정에 이르렀을 땐 얼마나 더 운치 있을까 싶다. 그 서걱거리는 소리는 더 깊어질 듯하다. 한편으론 이렇게 갈대가 수북하다는 것은 육화가 진행되는 것이기도 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향호는 현재 호소 면적의 20% 정도가 수생식물 군락으로 덮여 있다. 다른 석호에 비해 육화 된 규모는 작다. 하지만 육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건 언젠가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석호의 숙명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개입이 그 시간을 앞당기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늘 내어주기만 하느라 힘들었던 향호. 이젠 우리가 그 수심을 덜어줘야 할 때다. 
 

 

석호 여섯 번째 이야기, 강릉 향호 뷰레이크 타임을 마무리하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향호 속에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가시고기가 살고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향호는 다시 건강해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우선 호수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걷기 좋은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따라 향호 산책로를 걸으며 늘 내어주기만 하는 호수의 고마움을, 그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고기은. KBS, MBC 방송구성작가, 소셜커머스 쿠팡 여행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길을 잃고 뜻밖의 풍경, 인연을 만날 때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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