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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 처가 사이 –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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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 처가 사이 –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2016.09.13 12:00

2016년 丙申년 새해, 불안한 젊음을 위한 신경인류학 에세이
추석특집 – 가족 내 갈등 극복하기

 

1편: 시댁과 처가 사이 –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2편: 영원한 라이벌, 형제자매 – 출세 자랑, 재산 자랑, 자식 자랑

 

▶고민
또 명절입니다. 남들은 명절이라 즐겁다고 하는데, 저는 불안감과 짜증부터 밀려옵니다. 지난 설날에도 남편과 크게 다투고, 연휴 내내 냉랭하게 지냈던 악몽이 떠오르네요.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문제입니다만, 명절에는 시댁에 먼저 가야한다는 남편의 말을 도무지 수긍할 수 없습니다. 똑같이 소중한 아들, 딸인데, 왜 친정에는 명절 끝자락에나 가야한다는 것인가요?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1. 부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2. 하지만 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해서는……
3. 영화 같은 사랑, 아침 드라마 같은 갈등.
4. 명절을 짧고, 결혼생활은 길다.

 

GIB 제공
GIB 제공

많은 사람들이 명절을 쇠고 나면 오히려 더 피곤하다고 합니다. 고향집으로 가느라 긴 운전에 지치기도 하고, 차례나 손님 접대를 위한 음식 준비에 몸이 바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통 왕래가 없던 친지나 고마운 어른들을 찾아 다니는 일도, 날아갈 듯 기쁜 일 이라고는 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소위 ‘명절 증후군’이 이러한 신체적인 피로감에 국한된다면, 아주 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수의 명절 증후군은, 골이 깊은 가족 내의 갈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2회에 걸쳐서 이러한 은밀하고 복잡한 가족 내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댁과 처가 사이 –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 편입니다.

 


● 전략적 동반자 관계, 부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암수의 만남, 즉 부부 관계는 아주 독특한 현상입니다. 혼자 살면 편한데, 왜 굳이 번거롭게 남녀로 나뉘고, 다시 서로 만나고, 사랑하고, 바람피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러면서 사는 일까요? 조물주가 보기에 좋았기 때문에 일어난, 당연한 신의 섭리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논쟁하느라 바빠서, 정작 본인의 짝은 찾지 못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엔진과 기어박스(Engine and Gear-Box)’ 가설이라는 오래된 이론이 있습니다. 엔진만 멀쩡한 고물차와 기어박스만 멀쩡한 고물차를 합치면, 제대로 굴러가는 차를 만들 수 있죠. 우리도 그래서 서로 암수로 나뉘어,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천재 극작가 버나드 쇼(Bernard Shaw)는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라는 무용수에게 이런 청혼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머리와 내 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버나드 쇼는 ‘반대로 나의 몸과 당신의 두뇌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겠소?’라며 거절했다고 하네요.

 

조지 버나스 쇼(George Bernard Shaw), 1911년. - illustrated London News 제공
조지 버나스 쇼(George Bernard Shaw), 1911년. - illustrated London News 제공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923년.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923년.

‘복권 모델(Raffle-Ticket Model)’ 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복권을 살 때, 같은 번호로 100장을 사면 별로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서로 다른 번호로 50장을 사고, 다른 50장을 가진 사람과 나누면 하나라도 당첨이 되지 않겠냐는 식입니다. 엔진과 기어박스 가설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죠? 이외에도 ‘트랜스포손(Transposon)’ 가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DNA 조각 중에는 게놈의 이곳저곳을 통통 튀어 다니는 ‘트랜스포손’이라는 녀석이 있는데, 요놈이 다른 세포의 게놈까지 넘어 가려고 하다가 암수가 생겨났다는 가설입니다. 자세한 것은 너무 어려우니까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유성생식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만, 공통적인 것은 그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일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 ‘유리함’이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만 이견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생물학자도 최초의 유성생식이 ‘배우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 이타적 세포의 고귀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부부 관계를, ‘하등’한 수준의 세포들과 비교하는 것이 불편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하는 아름다운 부부들도 있습니다. 정말 숭고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배우자에게 ‘왜 너는 나에게 그런 희생을 하지 않느냐?’라고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라기보다는 ‘고도의 이해관계로 맺어진 전략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략 목표의 불일치, 명절


인류학자들은 수많은 종족과 사회를 연구하면서, 이른바 ‘혼인’이라는 독특한 인간 관계의 공통 분모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상호 의무이다. 둘째 상호 간의 성적 접근의 독점권을 ‘대개’ 가진다. 셋째 둘 사이의 자녀를 ‘준정, 즉 적출로 인정’한다. 넷째 앞으로 계속 결혼관계가 지속된다고 예상한다. 이러한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혹은 바로 깨지게 됩니다. 결혼을 ‘약속’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대개는 전략적인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동반자 관계가 잘 유지됩니다. 자식이 잘되기 바라는 마음은 부부가 서로 다를 리 없습니다(물론 실제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약간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서로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동일하니, 굳은 협력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혼인의 네 가지 조건에, 부모님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서로의 부모님을 자신의 부모님으로 인정한다’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배우자의 소중한 ‘부모님’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는 사실 ‘남’입니다. 우리 부모님에 대한 마음과, 배우자의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냉정한 말이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고부관계나 장서관계가 미묘하고, 종종 큰 갈등의 근원이 되는 이유입니다.

 


● 로맨틱한 사랑, 봉건적인 갈등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 올리버는, 레드클리프에 다니는 제니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제니는 가난한 이민자의 딸이였고, 올리버의 부모는 둘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합니다. 결국 올리버는 부모와 연을 끊고, 다락방을 얻어 제니와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네. 잘 아시는 러브스토리의 줄거리입니다.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년작, 에릭 시걸 원작, 앨리 맥그로우 및 라이언 오닐 주연. - http://www.impawards.com/1970/love_story.html 제공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년작, 에릭 시걸 원작, 앨리 맥그로우 및 라이언 오닐 주연. - http://www.impawards.com/1970/love_story.html 제공

오늘날 많은 젊은 연인들은 자유롭고 낭만적인 연애를 하고, 또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연애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결혼을 높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드라마들이 이러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상당수의 젊은 부부들도, 아마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연애하고 결혼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부부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낭만적인 결혼을 한 부부가, 명절에 서로 어느 집에 먼저 가는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자신의 부모님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배우자와 대판 싸움을 벌이는 일이 있더라도 굳이 하루 먼저 가겠다는 심산일까요? 연애와 결혼은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처럼 해 놓고, 왜 명절은 식상한 아침 연속극처럼 치르는 것일까요?


사실 명절에 어느 집에 먼저 가는지에 대한 신경전은, 유효기간이 지난 과거 관습의 잔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안, 혹은 너네 집안으로 나누어, 서로 위세를 뽐내고 더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일까요? 처가집에 먼저 가면, 마치 데릴 사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시댁에 먼저 가면, 마치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겁니다. 사실 부모님 댁에 찾아 뵙는 날은 일년에 고작 일주일 남짓한데 말입니다.


시댁에 먼저 가거나 혹은 처갓댁에 먼저 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가친척이 다 모이는 명절에 위신이 상당히 깎이는 일일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자유로운 결합으로서의 결혼관계가, 갑자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집안과 집안의 결합으로 성격이 변하는 것입니다. 양가 부모님 댁 중 어디에 먼저 가느냐는 ‘실무적’인 문제가 집안 대 집안이라는 ‘의례적’ 차원의 문제로 변하는 순간, 상대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문을 배신하는 일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 명절은 짧고, 결혼은 길다.


현대 사회에서 친족집단의 의미는 과거에 비해서 많이 약해졌습니다. 과거처럼 큰 집에 수십명의 친척들이 북적거리면서 함께 명절을 쇠는 집안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집안에 대한 자존심을 내세워봐야 별로 얻을 것도 없고, 그 실체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전과는 명절의 의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명절증후군이라고 하면, 가사의 공평한 분담 이야기와 더불어 늘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친정 혹은 처가에 먼저 가나요? 시댁에 먼저 가나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명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누가 이기고 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배우자의 집에 하루 먼저 간다고 해서, 패배감이나 억울함을 느낀다면 이상한 입니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부모님의 기대(추석에 먼저 방문하라는)를 저버리는 정도의 낭만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살림살이 좀 어떠십니까? 뉴스를 보면 도처에 안좋은 소식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취업 걱정, 중장년 층은 노후 걱정에 노심초사합니다. 경제, 정치 심지어 날씨까지 우리 편은 없어 보입니다. 본지는 인류학을 전공한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한번쯤 고민할 법한 주제를 선정, 지면을 통해 상담을 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마음에 품고 사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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