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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기린, 이러다 멸종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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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19일 17:30 프린트하기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 장주(장자)가 썼다는 ‘장자’는 정말 특이한 책이다. 필자는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머리가 탁할 때 ‘장자’를 읽곤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필자의 상식적인 관점과 꽤 다르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린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이 쓸모가 많은 인간이어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일이 잘 안 돌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한 열흘 해외출장을 다녀와도 “어디 갔었어?” 같은 반응을 접하면 김이 새기 마련이다.

 

그런데 ‘장자’는 쓸모있는 존재가 되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혜자라는 사람이 장자와 얘기를 하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에 아주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가죽나무라 말하네. 크기만 했지 옹이가 박혀 목수의 먹줄에 맞지 않고 가지는 굽어 곱자와 그림쇠에 맞지도 않네. 그래서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들조차 돌아보지도 않는다네. 자네의 말은 이 나무처럼 크기만 했지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라네.”

 

이에 대한 장자의 대답이다.

 

“자네는 언젠가 족제비를 본 적이 있겠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엎드려 망을 보는 거만한 놈이네. 동서로 날뛰며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지만 결국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 죽게 마련이네.
(중략)
그러니 자네의 나무가 크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네! 어떤 인위도 없는 고장의 광막한 들에 심고 그 곁을 할 일 없이 노닐고 그 밑에 누워보기도 하면 어떻겠나? 도끼로 찍힐 염려도 없고 아무도 해치지 않을 것이니 쓸모없다고 어찌 괴로워한단 말인가?”
  

 

● 상아 거래 양성화 논란

 

그런데 위의 에피소드가 꼭 인생사에 비유하기 위한 ‘쓸모’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코끼리와 기린을 생각해보자. 동아시아에 사는 필자로서는 정말 이국적인 동물들로 몇 년에 한 번 동물원에 가서 볼 때마다 늘 감탄이 나온다. 한 녀석은 육상동물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고 한 녀석은 키가 가장 크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코끼리는 기린은 없는 ‘쓸모’가 있다. 바로 커다란 상아 한 쌍이다.

 

여기서 상아의 쓸모란 코끼리의 관점이 아니라 족제비의 털가죽처럼 사람의 관점이다. 필자야 상아로 만든 세공품을 본 적도 없지만 이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지 상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이 코끼리 밀렵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돈의 유혹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넘쳐나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다. 그 결과 지난 100년 동안 아프리카코끼리 개체수는 무려 95% 이상이 줄어 이제 40만 마리도 안 남았다고 한다. 게다가 매년 밀렵으로 3만 마리가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끼리의 송곳니가 이처럼 터무니없이 크게 자라 쓸모있는 존재가 되지 않았다면 코끼리는 육상 최대 동물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느긋하게 지내고 있지 않을까(볼품은 좀 없겠지만).

 

학술지 ‘사이언스’ 9월 16일자에는 뜻밖의 기사가 실렸다. 24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17차 총회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상아 거래를 양성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거라는 얘기다. 상아 거래는 코끼리 밀렵을 뿌리뽑기 위해 지난 1989년 이래 금지된 상태다. 그럼에도 상아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밀렵으로 구한 상아가 밀거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TV 외신에서 압수한 엄청난 양의 상아를 태워버리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매춘’을 근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를 합법화해 사람들의 욕망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실제 여러 나라에서 공창제도를 실시하고 있듯이 이제 상아에 대한 욕망을 인정해 상아 거래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물론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마구잡이로 죽이자는 건 아니다. 자연사하거나 민가를 습격해 불가피하게 사살된 코끼리에서 얻은 상아를 시장에 내놓자는 얘기다.

 

보석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상아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코끼리 개체수가 95% 이상 줄었다. 오늘날도 매년 코끼리 3만 마리가 밀렵으로 희생되는 걸로 추정된다. 1900년 무렵 탄자니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보석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상아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코끼리 개체수가 95% 이상 줄었다. 오늘날도 매년 코끼리 3만 마리가 밀렵으로 희생되는 걸로 추정된다. 1900년 무렵 탄자니아에서 찍은 사진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얼핏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코끼리가 죽으면 상아는 남기 마련이므로 이를 거둬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밀렵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이런 주장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사로 죽은 코끼리에서 얻는 상아로는 수요를 충당하기에 어림도 없는 현실에서 거래가 합법화될 경우 상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만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에서 2008년까지 일시적으로 상아 거래를 허용한 적이 있지만 밀렵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다. 상아 거래가 합법화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상아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고 밀렵의 유혹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원산지’를 속이는 거야 어디나 있는 일이고 사는 사람은 “합법적인 거래인 줄 알았다”고 발뺌할 여지가 생긴다.

 

● 둥근귀코끼리가 특히 취약

 

학술지 ‘응용생태학저널’ 8월 31일 온라인판에는 상아 거래 양성화가 시기상조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코끼리 생태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조지 위트마이어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23년에 걸쳐 아프리카 중부에 서식하는 둥근귀코끼리의 생태를 조사한 결과 지금은 상아 거래 합법화를 논할 때가 아니라 밀렵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이 종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둥근귀코끼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코끼리의 별칭인가.

 

지난 2010년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는 게놈 비교분석으로 코끼리과(科) 동물의 계통을 분류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아프리카코끼리 조상과 매머드/아시아코끼리 공통조상이 먼저 갈라지고 그 뒤 매머드와 아시아코끼리가 갈라졌다. 얼핏 생각하면 현존 코끼리의 공통조상과 매머드의 조상이 먼저 갈라지고 코끼리가 두 종으로 나뉘었을 것 같은데 뜻밖이다. 사실 유인원의 경우도 겉모습으로 본 추측과는 달리(털의 관계는 반대다) 고릴라 조상과 침팬지/사람 공통조상이 먼저 갈라졌다.

 

 

게놈 분석으로 추정한 코끼리과 동물의 계통도. 아프리카코끼리의 조상과 매머드/아시아코끼리의 공통조상이 먼저 갈라졌고 그 뒤 매머드와 아시아코끼리가 갈라졌다. 이에 따르면 한 종으로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코끼리도 실은 두 종이다. - 플로스 생물학 제공
게놈 분석으로 추정한 코끼리과 동물의 계통도. 아프리카코끼리의 조상과 매머드/아시아코끼리의 공통조상이 먼저 갈라졌고 그 뒤 매머드와 아시아코끼리가 갈라졌다. 이에 따르면 한 종으로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코끼리도 실은 두 종이다. - 플로스 생물학 제공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 종으로 알고 있었던 아프리카코끼리가 알고 보니 두 종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익숙한 덩치가 큰 아프리카코끼리가 한 종이고 아시아코끼리보다도 작은 또 다른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코끼리의 실체는 알려져 있었지만 그동안은 아프리카코끼리의 아종으로 여겨졌다. 연구자들은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두 종이 200만~700만 년 전 갈라졌다고 추측했다. 이들은 서직지에 따라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africa savanna elephant)와 아프리카숲코끼리(africa forest elephant)로 불린다. 후자가 둥근귀코끼리다.

 

둥근귀코끼리는 탁 트인 초원이 아니라 밀림에 살기 때문인지 덩치가 작아졌지만(그래도 하마나 코뿔소보다는 크다) 여전히 멋진 상아를 지니고 있다. 밀렵꾼들에게는 이상적인 표적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아프리카코끼리의 상아가 상품(上品)이다. 아시아코끼리의 상아는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색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밀렵으로 개체수가 격감해 2002년에서 2011년까지 10년 사이에 개체수가 62%나 줄었고 서식범위도 30%나 줄었다. 현재 남아있는 둥근귀코끼리는 10만 마리가 채 안된다.

 

연구자들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장가(Dzanga)숲에 살고 있는 둥근귀코끼리를 개체 차원에서 추적조사하며 생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이 사바나코끼리와 덩치 뿐 아니라 생태도 꽤 달라 멸종위험에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바나코끼리의 평균 초산 나이는 11~14살인 반면 둥근귀코끼리는 23살이나 됐다. 또 출산 뒤 다음 출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5.5년이나 돼 사바나코끼리의 3.3~4.5년보다 훨씬 더 길었다. 그 결과 평균 출생률이 4.3%로 사바나코끼리보다 3~4% 더 낮았다.

 

한편 사망률은 평균 3.1%였다. 이 가운데 자연사는 1.7%, 밀렵으로 인한 사망은 1.4%였다. 장기연구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밀렵을 단속했음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출생률이 사망률보다 높으므로 23년 사이 개체수가 늘어났어야 했지만(연 평균 1.2%로) 실제로는 연 평균 0.2% 수준으로 줄었다. 조사 영역 밖으로 나간 코끼리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밝혀진 둥근귀코끼리의 번식력으로는 개체수를 두 배로 늘리는데 6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는 20년인 사바나코끼리에 비해 세 배에 이르는 기간이다. 설사 밀렵을 근절한다고 해도 41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인 상아 공급을 전제로 한 상아 거래 합법화를 논하기는 이르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숲코끼리(둥근귀코끼리, 왼쪽)와 사바나코끼리  두 종으로 이뤄져 있다. 둘은 크기뿐 아니라 생태도 꽤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개체수가 적은 둥근귀코끼리는 번식력도 떨어져 밀렵으로 인한 멸종위험에 더 취약하다. - 네이처 제공
아프리카코끼리는 숲코끼리(둥근귀코끼리, 왼쪽)와 사바나코끼리  두 종으로 이뤄져 있다. 둘은 크기뿐 아니라 생태도 꽤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개체수가 적은 둥근귀코끼리는 번식력도 떨어져 밀렵으로 인한 멸종위험에 더 취약하다. - 네이처 제공

 

 

● 기린, 250년 만에 네 종으로 밝혀져

 

앞서 기린을 쓸모가 없는 짐승처럼 얘기했지만 어디까지나 코끼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기린 역시 사람들의 오랜 사냥감이었다(고기와 가죽, 힘줄 등 버릴 게 없다). 다만 사냥을 엄격히 금지할 경우 코끼리처럼 목숨을 걸고 밀렵을 할 정도의 동기부여가 안 될 뿐이다. 아무튼 기린 역시 개체수가 꾸준히 줄고 있어(서식지 감소와 사냥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현재 야생에 남아있는 기린은 9만 마리가 채 안 된다. 1990년대 후반 14만 마리가 넘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개체수가 줄어드는 속도는 코끼리보다 느리지만 개체수 자체는 훨씬 적다.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9월 8일자 온라인판에는 기린의 보호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즉 지금까지 한 종으로 알려진 기린이 알고 보니 네 종이라는 연구결과다. 따라서 네 종을 합쳐 9만 마리가 남아있는 것이므로 개별 종으로 따지면 멸종을 우려할 수준이라는 말이다.

 

독일 괴테대 악셀 얀케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기린 190마리에서 채취한 생체조직에서 DNA를 추출해 핵게놈의 유전자 7개의 염기서열과 미토콘드리아게놈의 염기서열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을 크게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렇게 갈라진 시기를 계산한 결과 125만~200만 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정도 시간이면 이들을 서로 별개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며 각각에 대해 새로운 종명을 부여했다.

 

지난 250여 년 동안 한 종으로 알려졌던 기린이 실은 네 종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북부기린과 망상기린은 남아있는 개체수가 수천 마리에 불과해 적극적인 보호가 시급하다. 그물 무늬가 마친 그린 것처럼 선명한 망상기린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250여 년 동안 한 종으로 알려졌던 기린이 실은 네 종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북부기린과 망상기린은 남아있는 개체수가 수천 마리에 불과해 적극적인 보호가 시급하다. 그물 무늬가 마친 그린 것처럼 선명한 망상기린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1758년 칼 린네가 기린의 학명을 부여한 이래 지금까지 기린은 한 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서식지나 줄무늬 패턴의 차이에 따라 9가지 아종으로 분류해왔다. 그런데 게놈 서열을 바탕으로 계통도를 구성하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새로운 종 분류에 따르면 린네가 학명을 정할 때 참조한 아종(누비아기린)이 포함된 북부기린이 기존 학명을 물려받았다(Giraffa camelopardalis). 북부기린은 세 아종으로 구성된다. 다음으로 두 아종으로 이뤄진 남부기린(G. giraffa)이다. 나머지 두 종은 망상기린(G. reticulate)과 마사이기린(G. tippelskirchi)이다.

 

이렇게 네 종으로 나눠놓고 보면 북부기린의 개체수는 세 아종을 다 합쳐도 5000마리가 채 안되고 망상기린의 개체수도 9000마리가 채 안 된다. 자칫 멸종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머지 두 종도 마사이기린이 3만 마리, 남부기린이 4만 마리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코끼리나 기린처럼 멋진 동물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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