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운명적인 장소

통합검색

운명적인 장소

2016.09.24 18:00

흔히 절경이라고 일컫는 명소에 가보면 기암괴석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보게 된다. 그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나무의 아찔한 조화가 우리의 눈에는 멋진 풍경이지만 산수화 같은 그 실체가 있기까지는 오래전 어느 날, 한 폭의 짓궂은 바람에 실려와 불시착하듯 내려앉은 어느 송화(松花)가 그 가파른 곳이 어디인 줄도 모르고 하필 한 줌의 분사(粉砂)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으리라. 그러고는 살아내기 위해 줄기보다 뿌리에 온 힘을 쏟아 비바람과 눈보라와 가뭄과 중력을 견디고 간신히 지탱하며 촘촘한 나이테를 전족(纏足)처럼 제 속에 새겼으리라. 이처럼 식물은 처음 뿌리 내린 곳에서 운명적으로 평생을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곳이 어디냐에 따라 암벽 틈의 소나무처럼 박복하기도 하고, 최적의 환경에서 예수가 태어난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신화적인 나무도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는 있단다.

 

GIB 제공
GIB 제공

동물은 다르다. 식물(‘植’物)의 대응 개념으로 이름 지어졌을 동물(‘動’物)은 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에 먹이를 찾기 위해 자주 이동하거나 서식하기에 적당한 곳에서 터전을 이룬다. 그 점에서는 동물 중에서 독보적으로 진화해 문명을 이룬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에도 몽골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의 유목민은 마치 군무(群舞)를 추며 날개의 노를 젓는 철새나 생태에 적합한 수온을 찾아 대양의 수심에 은빛 수를 놓으며 오르내리는 물고기 떼처럼 계절에 따라 바람을 가르며 양 떼를 몰아 동서남북으로 이동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활동 공간은 한정돼 있다.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거리와 범위가 그들의 생활공간이자 터전이다.


농경 사회를 이룬 우리 조상들의 활동 범위는 유목민에 비하면 훨씬 협소하다. 1950년대 말에 별세하신, 대전에서 평생을 가난한 소작농으로 사셨다는 나의 조부께서 일생 동안 가장 먼 길을 가보셨다는 곳이 고작 지금의 대청호수 아래에 잠긴 충북 문의(文義)였다니, 조부의 주거지에서 불과 백 리쯤이나 되었을까. 그곳은 내가 학생 때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를 읽고 눈 내리는 날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이었기에 나로서는 그 빤한 거리가 가늠된다. 하지만 그 ‘거리’는 누군가 얼마나 멀리 떠나보았는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느 개인의 일상생활 범위가 그의 인생의 화폭(畫幅)이 될 것이다.

 

GIB 제공
GIB 제공

20여 년 전 나는 지금은 번화가가 된 지 오래된 소위 홍대 근방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10년을 지내고 1년여를 떠났다가 다시 그 동네에서 7년의 사회생활을 하고는 6년여의 시간을 서울 근교의 신도시 변두리에서 반경 십 리 안에서만 활동하며 촌로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또다시 바로 그곳, 즉 홍대 주변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그곳이 내 유년을 키운 텃밭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의 첫 꽃을 피우고 떨구고 다시 피고 지기를 반복했던 오래된 정원 같아서인지 날이 갈수록 서리가 내려앉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다시금 돌아왔음에도 익숙한 그곳은 내겐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달이다. 그믐밤이 아니면, 구름이 가리지 않으면 우리는 밤하늘에서 매일 표정을 바꾸는 달을 볼 수 있다. (의지가 아닌 물리 작용이겠지만) 그 창공이 달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지구 주위를 맴돌며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 곳곳의 개펄 바닥을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하는 달의 궤도가 그의 터전이듯 세상의 만물에는 터전이 있기 마련이다. 만물의 티끌에 불과한 나의 터전은 또다시 홍대 동네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맨땅 한 곳 없이 보도블록만 깔려 있는 그 익숙한 동네 거리를 걸으면 오래전 내 청춘의 뿌리가 만져진다. 그렇게, 인간 역시 자기 터전에 발을 딛고 있을 때 몸과 마음이 안정되니 어쩌면 동물성의 고향은 식물성일지도 모른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스페셜’ 코너에 [생활의 시선]을 연재하고 있다.

 

※ 편집자주
뉴스를 보다보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야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고개를 들어 사물을 그대로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대상을 온전히 바라보면 분석한 내용을 종합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시선’을 매주 연재합니다. 편안한 자세로 천천히 읽으면서 감정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9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