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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율성 높이자] 노벨상 수상자 104명 연구비 최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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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율성 높이자] 노벨상 수상자 104명 연구비 최초 분석

2016.09.29 01:00
gettyimagesban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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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의 기본은 창의력입니다. 대한민국이 과학강국으로 거듭나려면 과학자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연구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이유입니다. 동아사이언스 취재진은 2016년 노벨상 수상 시기에 앞서 국내 과학계 현황과 내, 외부의 목소리를 십분 반영한 ‘과학자 연구 자율성 높이자’ 기획 시리즈를 28, 29일 양일에 걸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과학이라는 생태계를 숲에 비유하면, 연구비는 숲을 풍요롭게 가꾸는 양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6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국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연구비(4.29%)를 지원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이유도 이처럼 과감한 투자에 있다. 하지만 과연 연구비를 많이 주기만 하면 뛰어난 성과가 나올까. 혹시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법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진 않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핵심 업적 데이터를 수집해 연구비 항목을 집중 분석했다. 우선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상 과학부문(물리, 화학, 생리·의학) 수상자 123명의 수상 핵심 업적에 해당하는 논문 161편을 모았다(2000~2008년 성과는 기존 논문(doi:10.1096/fj.09-148239의 결과를 참고). 논문 저자가 자신이 받은 도움에 대해 기록하는 이른바 ‘논문 사사(acknowledgement)’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논문을 게재하는 저널마다 정책이 조금씩 다르지만, 저자는 논문 사사에 자신이 어디로부터 어떤 연구비를 지원받았는지, 연구비의 형태는 무엇이었는지 기록하게 돼 있다. 따라서 논문 사사를 확인하면 연구비 지원 여부와 특징을 알 수 있다. 아무런 연구비 정보가 없는 논문은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출처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총 104명의 논문 142편에 대해 연구비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보를 분류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연구비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연구 자유’라는 사실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2000년~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수상 업적 논문에 기록한 연구비 형태. 파란색 점은 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주황색 점은 화학상 수상자, 녹색은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랜트 형태의 연구비를 지원 받은 노벨상 수상자가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2000년~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수상 업적 논문에 기록한 연구비 형태. 파란색 점은 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주황색 점은 화학상 수상자, 녹색은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연구자가 직접 제안하는 연구 과제를 지원하는 그랜트 형태의 연구비를 지원 받은 노벨상 수상자가 (기관에서 기획안 연구 과제에 지원자를 받아 연구비를 수여하는 콘트랙트 형태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풀뿌리 연구’ 지원금이 노벨상 낳는다


취재팀은 104명 중 외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를 기록한 88명(84.6%)의 논문을 분석했다. 가장 많은 수상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 39명이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2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88명 중에서 67명은 자신이 받은 연구비의 종류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했는데, ‘그랜트(Grant)’와 ‘콘트랙트(Contract)’라는 형태로 나뉘었다.

 

미국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에서 연구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는 송민경 프로그램 디렉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랜트는 ‘연구자가 원하는 주제를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비’다. 한국연구재단의 ‘이공학 개인 기초연구 지원사업’ 등 한국의 기초연구비 지원사업 일부가 성격상 그랜트에 속한다.

 

반면 콘트랙트는 ‘국가가 연구 주제와 목표, 방법 등을 기획한 뒤 이를 수행할 연구자들을 모집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형태를 ‘국책사업(기획과제)’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그랜트와 콘트랙트의 차이는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이라는 점이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로버트 레프코위츠 듀크대 의대 교수 - Bengt Nyman 제공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로버트 레프코위츠 듀크대 의대 교수 - Bengt Nyman 제공

분석 결과 핵심 업적의 연구비를 외부에서 받았다고 기록한 88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49명(55.7%)이 그랜트를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 이상이 그랜트만으로 자신의 연구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랜트와 콘트랙트를 모두 받아 연구한 경우는 12명(13.6%)이었다. 콘트랙트만 받았다고 기록한 수상자는 6명(6.8%)뿐이었다. 형태를 기록하지 않은 사람은 21명(23.9%)이었다. 연구비 지원 형태를 명확히 기록하지 않은 논문도 그랜트로 추정되는 성격이 많았다(지원기관이 NIH, NSF인 경우 등).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레프코위츠 미국 듀크대 의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연구자가 ‘본능을 따라’ 자유롭게 연구하도록 지원하는 연구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프코위츠 교수는 “나는 연구 경력 내내 NIH와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HHMI)로부터 연구비를 받았다”며 “특히 HHMI의 연구비는 특정 주제가 아니라 연구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5년 동안 무얼 연구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5년 뒤에는 그 동안 이룬 학문적 성과에 대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계속 지원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풀뿌리 연구의 가능성을 믿는 NIH의 연구비 지원 철학

 

그렇다면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어떤 정책과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위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중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NIH를 취재했다. NIH는 올해 약 36조 원(323억 달러)의 재정을 생명현상과 인간행동 연구에 투자했다. 그 중 83%가량(약 268억 달러)이 NIH 외부의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나머지 예산 중 11%는 NIH 산하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이 사용한다). 이 가운데 콘트랙트에 해당하는 예산(9%)을 빼면 NIH는 전체 예산의 약 74%를 연구자들이 스스로 제안하는 상향식 제안 연구, 즉 ‘풀뿌리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만 3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NIH의 지원으로 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송민경 디렉터는 “콘트랙트는 선진 연구 성과를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형 연구나 급히 필요한 연구과제(감염성 질환 치료제 개발 등)에 적합한 지원 방식”이라며 “노벨상을 비롯한 선도형 연구 성과는 그랜트 형태의 지원을 받은 연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최대 5년 동안 그랜트를 받을 수 있고, 이후 평가를 거쳐 같은 연구 주제로 또다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NIH 재직 당시 연구비 지원 심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명경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장(UNIST 교수)은 “198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첵의 경우 40년 이상 한 가지 주제로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고 말했다.

 

또 NIH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연구비를 지원 받은 과학자는 매년 지난해의 연구 성과와 지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무가 없다. 연구가 당초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전문 과학자들인 NIH의 연구 프로그램 디렉터와 상의해 연구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다. 송 디렉터는 “연구자가 연구 목표를 수정했다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며 “모든 것은 연구비 지원 기간이 끝난 뒤 연구자가 이룬 과학적인 성과를 가지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2000~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 수상 업적에 외부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경우.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2000~2015년 노벨과학상 수상자 중 수상 업적에 소속 연구기관 외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경우(파란색은 물리, 주황색은 화학, 생리의학은 녹색). 논문을 확인하고 직접 e메일을 보내 확인했다.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외부 연구비 지원 일체 없었던 노벨상 수상자 비율도 16%

201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에릭 베치그. - Ecole polytechnique Université Paris-Saclay 제공
201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에릭 베치그. - Ecole polytechnique Université Paris-Saclay 제공

 

취재팀의 논문 분석 결과 흥미로웠던 사례는 외부 연구비 없이 연구한 경우다. 초고해상도 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에릭 베치그 박사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저는 고용된 신분이 아니었고, 내가 가진 돈으로 연구했습니다. 소속 없이 연구하던 때가 제 경력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었어요. 자유롭게 호기심에 따라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연구비 지원 없이 노벨상 업적을 냈다. 34세의 나이에 벨연구소를 그만 둔 그는 8년 동안 아버지가 세운 회사에서 일하다가 42세에 다시 그만뒀다. 그리고 벨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5만 달러(약 5600만 원)를 모아 집 거실에서 초고해상도 현미경의 초기모델을 만들었다. 그때 나이가 45세였다.

 

베치그 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소속 기관 외의 기관에서 연구비를 받지 않은 경우는 꽤 많았다. 104명의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16명(15.4%)이 소속 연구기관에서 제공하는 연구 장비와 연구비만으로 업적을 냈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이 6명, 화학이 3명, 생리·의학이 7명이었다.

물리학 분야 수상자들의 특징은 분명했다.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았거나(이론물리학), 연구 수행 당시 민간 기업체 연구소 소속(니치아화학공업, 스탠다드통신연구소, 벨연구소)이었다. 기업에서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제공했기 때문에 외부 연구비를 지원받을 필요가 없었다.

 

화학과 생리·의학 분야 수상자들은 주로 국가 혹은 민간 재단에서 세운 연구소 소속이었다(10명 중 8명).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MRC)와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소에서 여섯 명의 수상자가 나왔고, 호주의 공립병원에서 두 명이 나왔다. 유일하게 대학 소속인 수상자는 피터 맨스필드 교수(영국 노팅엄대)로, 물리학자이지만 자기공명영상(MRI)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생리·의학상(2003년)을 탔다.

 

공립, 사립, 기업체 소속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이들 모두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연구소 소속이었다. 그렇다고 이 연구소들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3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산하 분자생물학연구소(LMB)는 정부로부터 연간 약 4000만 파운드(약 580억 원)를 지원받는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총 예산 규모의 평균(약 1978억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랜트형 지원 중요하지만 목표 뚜렷한 대형 연구는 콘트랙트형 필요”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카지타 타카아키 도쿄대 교수. - Holger Motzkau 제공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카지타 타카아키 도쿄대 교수. - Holger Motzkau 제공

“그랜트를 조금 받긴 했지만, 중성미자 진동변환을 발견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정부에서 슈퍼카미오칸데를 중요한 과학실험장치로 선정하고 건설 예산을 지원해 준 것이 중요했습니다. 슈퍼카미오칸데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과학자 자율성을 높이는 데 그랜트형 연구비 지원이 유리하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연구 성격에 따라서는 콘트랙트형 지원을 빼 놓아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탄 카지타 타카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일본과 미국 정부가 거대 실험장치의 건설비를 지원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슈퍼카미오칸데를 이용해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콘트랙트 형태의 지원을 받아서 탄생한 노벨상 수상 업적들은 대규모의 실험장비를 필요로 하는 연구가 많았다. 중성미자를 발견(2002)하고,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성과(2015) 외에도 인공위성을 발사해서 우주 엑스선원(2002)과 극초단파 우주배경복사(2006), 우주 가속팽창(2011) 등을 확인한 것 등이다. 그리고 대부분 물리학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18건 중 15건, 생리·의학 2건, 화학 1건). 즉, 콘트랙트형 지원이 빛을 발하는 영역은 연구 목표가 뚜렷하고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분야다.

 


 

※이 기사는 동아사이언스 탐사취재 일환으로 진행된 과학동아 10월호 특집

‘데이터로 본 노벨 생태계’ 중 일부를 발췌,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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