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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맥주생활 <3>병나발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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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맥주생활 <3>병나발 이제 안녕

2016.10.07 18:00

“이모, 여기 카스 두 병에 처음처럼 한 병요~ 히야시(=차갑게 식힌) 이빠이~~!”


평소 조용한 H의 목소리가 한껏 커지는 순간이다. 냉장고에서 막 꺼내 와 손이 쩍쩍 달라붙을 것만 같은 맥주병. 뻥 소리를 내며 뚜껑을 시원하게 개봉해 소주를 깔아놓은 잔에 따른다. 주변의 습기를 한껏 머금은 맥주잔을 쥐고 ‘원샷’을 외친다.


음주경력 20년. H에게 가장 좋은 술 맛이란 공복에 시원한 액체가 짜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쏘~맥’ 첫 잔의 짜릿한 그 느낌이다. 한잔 쭉 들이키고 나서 머리가 띵하면 100점. 2차에 가서도 손잡이 달린 500ml 맥주잔을 통째로 냉동실에 얼려서 주는 가게를 최고로 친다.

 

얼음맥주
얼음맥주-픽사베이 제공

집에서 마시는 술도 마찬가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트에서 사온 각종 맥주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둔 H. 드디어 때가 왔다.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고 페일에일(Pale Ale)을 하나 골라 병을 따서 꿀떡꿀떡 넘겨본다. 330ml 용량의 작은 맥주 병이니 당연히 병나발. 왕년에 버드와이저, 코로나 등으로 병나발 좀 불어봤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간 먹던 맥주들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겠다. 시음기까지 찾아보고 심혈을 기울여 고른 맥주인데 블로그 마케팅에 또 속은 것인가… 허탈하다. 꽃향기, 오렌지·자몽향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신사가든 제공
신사가든 제공

우리는 속지 않았다. 다만 게을렀을 뿐. 맥주는 잔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 타고난 게으름을 자랑해온 H에게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지만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니 한번 시도해본다.


맥주는 오감으로 마시는 음료다. 맥주병이나 캔을 딸 때나 잔에 따를 때 나는 소리(청각), 색깔과 거품(시각), 향(후각), 맛(미각), 거품, 탄산과 입안느낌(촉각)을 모두 음미하는 것이다. 마치 와인 맛을 보는 소믈리에처럼 맥주를 즐기다 보면 어느 날 매번 마시던 맥스가 천상의 맥주로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 맥스는 영국, 독일 등에서 열린 맥주대회의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훌륭한 맥주다.)


맥주를 잔에 따른 뒤 손목의 스냅을 활용해 잔을 살살 돌려준다. 휘발성 물질인 향이 잔 위쪽에 한껏 모인다. 이때 잔에 코를 대고 향을 맡은 뒤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이렇게 하면 풀, 꽃, 과일, 빵의 향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병이나 캔의 작은 구멍으로는 아무리 좋은 후각을 갖고 있더라도 향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맥주 스타일별, 브랜드별로 전용 잔이라는 것도 있다. 밀맥주는 특유의 거품을 모으고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도록 길고 위쪽이 불룩한 바이젠(Weizen) 잔에 마시고 향과 도수가 센 스트롱 에일은 거품을 눌러 유지하고 화려한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퉁퉁하면서 바깥쪽으로 퍼진 튤립(Tulip) 잔에 먹는 식이다. 맥주 회사에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맥주별 전용잔(‘호가든’하면 떠오르는 아랫쪽이 각진 잔 등)을 만들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위쪽이 좁아지는 잔이 거품과 향을 잘 모아줘 향이 강하고 도수가 높은 맥주를 마시기에 적당하다. 왼쪽부터 바이젠, 튤립, 필스너, 슈피겔라우, 노닉파인트, 빌리베허, 슈타인.  - 도서츨판 즐거운상상 제공
일반적으로 위쪽이 좁아지는 잔이 거품과 향을 잘 모아줘 향이 강하고 도수가 높은 맥주를 마시기에 적당하다. 왼쪽부터 바이젠, 튤립, 필스너, 슈피겔라우, 노닉파인트, 빌리베허, 슈타인.  - 도서츨판 즐거운상상 제공

이들 전용잔이 다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언제부터 모든 걸 갖춰놓고 먹었나. 학교 잔디밭에서의 깡소주,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캔맥주도 달게 마셨던 우리 아닌가. 소맥 말아먹던 맥주잔보다 큰 사이즈 잔 한 종류면 충분하다. 같은 맥주집에 주구장창 다니면서 사장님과 안면을 트고, 거절 당해도 민망하지 않을 만큼 취기가 얼큰하게 올랐을 때 473~568ml의 파인트(Pint)잔 하나만 달라고 해보자.


하나 더. 모든 맥주에 히야시가 능사는 아니다. 맥주 스타일별로 맛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온도가 있다.


가볍고 산뜻한 맛과 향을 즐기는 라거와 필스너는 낮은 온도(4~9℃)에서, 바이젠은 10~12℃, 페일에일 등 에일 맥주들은 13℃ 정도로 마셔야 특유의 강하고 풍부한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수가 높을수록 와인이나 위스키를 먹는 것처럼 상온에 가깝게 먹으면 된다.


온도를 재 가며 마실 수는 없는 노릇. 냉장고 냉장실이 4℃ 정도라는 점을 고려해 실온에 10~15분 정도 내놓은 후 맥주를 개봉하면 되겠다.


크게 손해 볼 것 없으니 하나씩 따라 해본다. 밍밍한 맥주여 안녕.

 


<’1일 1맥’ 추천맥주>

 

Konabrewing  제공
Konabrewing  제공

이름 : 파이어락 페일에일(Fire Rock Pale Ale)
도수 : 6.0%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양조장에서 만들어진 향이 풍부한 맥주. 붉은 색이 감도는 구리색으로두꺼운 거품층이 만들어진다. 포도와 오렌지 같은 감귤류 과일의 상큼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고 자몽이나 오렌지의 흰 껍질 부분을 씹는 것 같은 쓴맛의 풍미도 나타난다. 약한 캐러멜향도 감지된다.


하와이를 찾은 관광객의 모습을 담은 맥주 라벨을 보면서 북태평양의 낭만도 상상해보자.
지난 주 소개했던 바스 페일에일과 비교해보면 잉글리쉬 페일에일과 아메리칸 페일에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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