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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열중한 성종,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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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08일 17:59 프린트하기

 

선정릉의 조감도 - 이종호 박사 제공
선정릉의 조감도 - 이종호 박사 제공

  성종이 남다른 학문에 열중한 것은 왕위에 오르기 전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졸지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왕이 된 후에야 비로소 제왕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늦었던 만큼 성종은 열심히 공부했다.

 

  13세에 왕위에 올라 20세 친정을 하기까지 성종은 거의 매일 두 세 차례의 경연(經筵, 왕에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고 정책을 논의하던 자리)을 빠지지 않았다.

 

  7년 여 동안 성종의 월평균 경연일수는 25일이 넘었고 아침과 낮에 열렸던 조강과 주강은 물론 석강과 야대에 경연을 실시하기도 했다. 성종의 이같은 경연 강행군에 신하들과 할머니 정희왕후도 걱정할 정도였다.

 

  사실상 『경국대전』의 반포, 집현전의 후신인 홍문관 설치, 사림파의 등용 등은 성종의 이 같은 학문적 성과와 노력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 볼 수 있다.
 

선릉의 상설도 - 이종호 박사 제공
선릉의 상설도 - 이종호 박사 제공

  그렇다고 성종이 방에 틀어 앉아 글만 읽던 책상물림은 아니었다.

 

  성종은 시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로맨티스트였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놀라운 정력이다. 성종은 25년 재위 기간 동안 공혜왕후 한씨, 폐비 윤씨, 정현왕후 윤씨와 명빈 김씨 등 총 12명의 왕비와 후궁 등에게서 16남 12녀를 얻었다. 물론 자식의 숫자로는 조선왕으로는 첫째가 아니다. 태종이 18년 재위하면서 12남 17녀를 두어 1명이 많다. 세종, 중종도 자식이 20명이 넘는다.

 

 세종은 32년 재위하면서 18남 4녀, 중종은 38년 동안 9남 11녀였다.

 

  놀라운 것은 성종이 사망할 때 나이가 고작 38세임에도 28명의 자식을 얻었다는 것은 가히 이 분야에서 태종을 제외하고 권위자라고 볼 수 있다. 공식적으로 거느린 여인은 성종 12명, 태종 12명, 세종 6명, 중종은 10명이다.

 

  그런데 주지육림으로 잘 알려진 연산군은 한 명의 왕비와 한 명의 후궁만 두었다. 호색(好色)이란 면만 본다면 연산군은 성종에 비해 저리가라다.

 

선릉의 정자각 - 이종호 박사 제공
선릉의 정자각 - 이종호 박사 제공

 성종 자신이 학문을 좋아하고 풍류도 즐겼지만 개인사는 매우 굴곡져 있다. 그는 집권기 내내 훈구파들의 득세를 제압하지 못했고 조선 왕실 역사에서 처음으로 왕비를 내쫓음으로써 결국 아들 연산군에 의해 피의 보복이 이뤄지는 단서를 고스란히 제공했다.

 

  왕비인 공혜왕후가 후사 없이 사망하여 파주 순릉(純陵)에 모셔지고 원자(연산군)을 낳은 숙의 윤씨를 계비로 삼았는데 윤씨는 질투가 심하여 왕비의 체통에 어긋난 행동을 많이 하였다는 이유로, 성종 10년(1479) 폐출되었다가 사약을 받는다(그녀의 묘는 서삼릉의 회묘(懷墓)다).

 

  윤씨가 폐출 사사된 것은 윤씨 자신의 잘못도 있었지만, 성종의 총애를 받던 엄숙의(嚴叔儀)·정숙의(鄭叔儀),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합심하여 윤씨를 배척한 것도 큰 이유다. 그러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성종이 이를 미연에 조정하거나 방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성종에게 큰 약점이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이 일이 조선왕조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촉발시키는 ‘갑자사화’의 동인이 된다.

 

 

참고문헌 :
 「살아선 왕실의 살림꾼 죽어선 시부모 다섯 분 모셔」, 이창환, 주간동아, 2010.12.13  
   「조선 전기 문화의 꽃 피우고 강남 개발을 지켜봤다」, 이창환, 주간동아, 2010.06.14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이한우, 해냄, 2006
   『선릉 정릉』, 문화재청, 2012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사진)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dongascience.com)가 공룡유산답사기, 과학유산답사기 2부, 전통마을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3부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과학유산답사기 4부를 연재합니다. 과학저술가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세계문화유산 속에 숨어 있는 과학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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