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H의 맥주생활 (9)] 찬바람 불 땐 이 맥주

통합검색

[H의 맥주생활 (9)] 찬바람 불 땐 이 맥주

2016.11.18 17:00

칼바람이 H의 뺨을 스친다. 아, 지긋지긋한 수족냉증. 이런 날에는 어두컴컴한 이자카야에서 꼬릿한 복어 꼬리를 넣은 뜨뜻한 사케 한잔이지. 아니 분위기 있게 바에 가서 싱글몰트 위스키 한잔을 홀짝여 볼까.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 앉아 달콤 쌉싸름한 블랙러시안 칵테일을 마셔도 좋겠다.


이 계절에 맥주를 마신다면? 맥주를 상상하니 갑자기 냉기가 돌면서 닭살이 생긴다. 맥주 들이킬 생각을 하니 이까지 시려온다. 너무 차가워 소화도 안 될 것 같다. 따뜻한 봄볕이 들 때까지 맥주에 안녕을 고해야 하나.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춥다고 맥주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맥주는 어떤 계절에나 어울린다. 기온, 분위기, 안주에 맞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우리 몸을 훈훈하게 덥혀줄 고도수 맥주를 찾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맥주 도수는 4~5도지만 10도 안팎의 맥주도 많이 있다. 이런 맥주들은 아주 차갑게 먹는 것보다 실온 정도로 즐길 때 복잡하고 풍성한 향과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고도수 맥주는 ‘맥주 친구’ 치킨, 피자, 햄버거와 잠시 이별하고 제철 안주와 함께 먹는 게 더 어울린다. 김장하는 날 갓 담은 김치와 수육에, 또 노량진에서 떠온 제철 방어회나 포항 직송 과메기 한 점에 진한 맥주 한 잔이 우리 마음의 온도를 조금은 높여준다.


구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가성비가 높은 겨울 맥주를 소개한다.

 


수도사들이 금식 기간에 마시던 ‘파울라너 살바토르(Paulaner Salvator)’

 

 

파울라너 제공
파울라너 제공

파울라너가 밀맥주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양조장 이름이다. 파울라너 양조장의 살바토르는 1634년 독일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에 마시기 위해 도수를 높여(7.9%) 만든 유서 깊은 맥주다. 붉은색이 도는 갈색에 부드러운 거품을 가졌고 캐러멜의 달콤한 향, 말린 과일의 향과 비스킷의 고소함, 약간의 쓴맛 등을 두루 느낄 수 있다.


살바토르의 맥주 스타일은 ‘도펠복(Doppelbock)’인데 도펠은 ‘더블’이라는 의미고 ‘복’은 도수가 높은 맥주를 말한다.

 


얼음에서 탄생한 ‘슈나이더 바이세 아벤티누스(Schneider Weisse Aventinus)’

 

 

슈나이더 바이세  제공
슈나이더 바이세  제공

아벤티누스는 12도로 와인 도수에 육박한다. 와인처럼 천천히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향을 즐기면서 먹기에 적당하다.


아벤티누스는 ‘아이스복(Eisbock)’이라는 스타일이다. 아이스는 얼리는 공정을 통해 만들었다는 의미. 맥주를 냉동하면 어는 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은 얼고 알코올 등 다른 성분은 얼지 않게 된다. 이 때 얼음을 제거하면 알코올 함량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아이스복이다. 아벤티누스는 밀맥주를 만든 다음 얼려서 만들어진다.

 


러시아의 슬픈 역사를 라벨에 담은 ‘올드 라스푸틴(Old Rasputin)’

 

 

노스코스트 제공
노스코스트 제공

암흑처럼 어두운 색에 잔잔한 커피와 초콜렛, 바닐라향을 선사하는 알코올 도수 9%의 맥주다. 라벨에 그려진 사람은 러시아의 요승(妖僧)으로 불리는 ‘라스푸틴’. 그는 사이비 종교의 수도승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환심을 사 국정을 농락하다 결국 제정 러시아를 파국으로 몰아간 인물이다.


이 맥주는 ‘러시안 임페리얼 스타우트(Russian Imperial Stout)’ 스타일인데, 어떤 맥주든 ‘임페리얼’이 붙으면 도수가 높고 묵직하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러시아가 들어간 이유는 18세기 영국에서 러시아 왕가로 수출하기 위해 도수를 높여 탄생한 맥주이기 때문이다.

 


세인트 버나두스 앱트12(St. Bernardus Abt 12)

 

 

베스트블레테렌포세일 제공
베스트블레테렌포세일 제공

수도사가 그려져 있는 라벨에서 추측할 수 있듯 벨기에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던 맥주 스타일이다.유럽 수도원에서는 금식 기간에 마시거나 판매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맥주를 양조해 왔다. 여러 수도원 맥주 스타일이 있는데 두벨(Dubbel), 트리펠(Tripel), 쿼드루펠(Quadrupel) 순으로 도수가 높아진다.


쿼드루펠 스타일인 세인트 버나두스 앱트12는 엄밀히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는 아니고 수도원 맥주 스타일로 만들어진 맥주다. 복잡한 과일향과 커피, 초콜릿, 캐러멜의 맛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10.5도로 추위를 이기는 데도 그만이다.

 
이들 맥주는 일반 마트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맥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틀샵에 가야 살 수 있다. 가격도 일반 맥주의 4~5배 이상이다. 도수가 높은 만큼 조금 마시고 취하니까 큰 손해는 아니다.


일반 맥주들이 양조한 후 빨리 마실수록 맛이 좋은 것과 달리 이 맥주들은 시간을 두고 묵혀 마셔도 괜찮다. 맛이 조금씩 변하면서 더 깊은 맛을 낸다. 바틀샵에 가서 자신 있게 도펠복, 아이스복, 임페리얼 스타우트, 쿼드루펠, 발리와인, 스카치에일 등 겨울 맥주를 추천해 달라고 해보자. 몇 병 사다가 저장해 놓으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아, 오늘은 몇 달 전에 사서 쟁여놓은 13도 짜리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따야겠다. 세찬 눈보라가 친다 해도 내 손은 따스하리…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2 + 3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