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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프로세서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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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프로세서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2016.11.15 16:30

‘아톰’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제품이라면 여전히 ‘넷북’이 먼저 생각날 테고, 이미지라면 역시 ‘느리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있을 게다. 지금도 아톰 프로세서의 대중적인 위치는 애매한 게 사실이다. 제품의 특성을 잘 살려줄 짝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시장은 이미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제 옷을 입는 것이다.


지난 주 이틀 동안 서로 다른 형태의 두 가지 아톰 프로세서를 만났다. 지난 11월10일 레노버는 ‘요가 북’을 내놓았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터치와 펜이 중심이 된 노트북이랄까. 요가북은 생긴 건 노트북처럼 생겼지만 밑판이 키보드 대신 거대한 터치 패널로 채워졌다.

 

태블릿에 쓰는 디지타이저 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종이를 대고 그려도 화면에 그대로 기록된다. 키보드는 가상으로 띄우긴 하지만 힘을 주어 눌러야 하고, 눌렀을 때 실제 키보드를 누르는 것 같은 진동 피드백도 준다. 어쨌든 이 제품이 눈에 띄는 이유는 독특한 입력 방식이지만, 그러면서도 두께와 무게를 9.6mm, 690g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예전에는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가 새로 나오면 기존 하드웨어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친절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새 소프트웨어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더 빠른 새 PC를 요구했다. 그래서 윈도우3.1은 486을, 윈도우95는 펜티엄을 시장에 안착시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새 운영체제가 나왔는데, 내가 쓰던 컴퓨터에서 느리게 작동할 것 같다면 업그레이드를 멈춘다.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에 맞추는 시대가 됐다. 그래야 시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운영체제도 이를 빗겨가진 못했다. 덕분에 윈도우를 비롯한 운영체제는 더 가벼워졌다. 새 운영체제가 이전 운영체제보다 빠른 환경,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다르다. 어떤 방법으로든 세대 교체를 통해 더 나은 성능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톰 프로세서도 마찬가지다. 애초 아톰은 저전력 프로세서로 태어났다. 목표로 했던 시장도 저소득 국가에 아주 기본적인 컴퓨팅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한 저가 칩이었다. 그게 어쩌다 보니 넷북이라는 옷을 입게 됐고, 원래 의도했던 시장이 아닌 기존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인텔도 이를 걱정했던 때가 있다. 아톰이 많이 팔리는 건 인텔에게 여러 면에서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일단 값이 싸기 때문에 수익에 좋지 않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고성능 PC를 만지던 기존 시장에서는 아톰 자체가 좋지 않은 컴퓨팅 환경이 된다. ‘작고 예뻐서 샀지만 성능에 실망했다’는 지금의 아톰에 대한 인식 자체도 바로 10년 전 넷북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아톰 프로세서는 이제 그렇게 ‘못 쓸 물건’은 아니다. 물론 PC의 기준은 코어 프로세서를 비롯한 PC용 프로세서다. 하지만 아톰이 들어가면 더 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 요가 북은 비즈니스나 게임을 목적으로 만든 컴퓨터가 아니다. 그림이나 메모, 필기가 중심이 되는 일을 돕는 컴퓨터다. 그렇다면 아톰 프로세서에 윈도우10이나 안드로이드를 올리는 게 무리는 아니다. 레노버가 노린 것도 그 부분이다. 성능이 중심이 되는 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호섭 제공
최호섭 제공

성능을 내려 놓은 대신 레노버는 작고 늘씬한 기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값도 60~70만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물론 PC 성능이야 높으면 높을 수록 좋지만 요가 북에 들어간 아톰 프로세서가 과거 넷북의 악몽을 되살릴 수준은 절대 아니고, 전체적으로 적절하게 잘 조합했다는 인상이다. 아톰이었기에 만들 수 있는 형태의 컴퓨터이기도 하다.


사실 아톰은 어중간한 자리에 있긴 하다. 그 어중간함이 강하게 부딪친 부분이 바로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다. 아톰 프로세서가 성능으로 푸대접을 받았지만 모바일 시장에서는 성능으로 아쉬운 소리를 들을 제품은 아니다. 아톰 프로세서의 출발도 저전력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전력 소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텔은 아톰 프로세서를 상당히 여러 갈래로 발전시켜 왔다. 결과적으로 모바일 시장에 자리잡진 못했지만 남은 것들은 분명히 있다. 바로 임베디드다.


애초 아톰 프로세서의 특징은 저전력 프로세서였고, 인텔은 이를 통해 여러 기기에 작은 컴퓨터를 심길 바랐다. 그걸 예전에는 ‘아톰’ 하나로 다 하려고 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PC시장에서도, 임베디드 시장에서도 아톰은 어딘가 거리가 있는 제품이 되어 버렸다.


인텔코리아는 11월 11일, 임베디드용 아톰 E3900 프로세서를 소개했다. 이름은 아톰이지만 앞에서 소개한 레노버 요가 북에 들어간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프로세서다. 사물인터넷, 네트워크를 목적으로 하는 임베디드 환경에 최적화된 칩이라고 보면 된다. 인텔코리아 이명기 이사는 아톰 E3900을 소개하면서 임베디드 프로세서의 복잡한 조건을 설명했다.

 

 

최호섭 제공
인텔코리아 제공

“각 산업에서는 각 기능에 수직적으로 특화된 플랫폼 환경을 원합니다.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은 조금 다릅니다. 산업에 쓰이는 소프트웨어와 상업용에 쓰이는 소프트웨어가 다른데 그걸 하나의 틀로 개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임베디드는 수직적이지만 수평적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설계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아톰은 외려 태생적으로 수평적인 구조에 유리하다. x86 기반 설계이기 때문이다. 기존 PC 환경에서 개발하던 환경을 대부분 그대로 쓸 수 있다. 운영체제만 해도 윈도우부터 리눅스, 안드로이드같은 범용 운영체제부터 QNX, 윈드리버같은 실시간 운영체제(RTOS)도 돌아간다.


수직적인 설계 구조도 볼만하다. 아톰 E3900은 모듈 형태로 설계되어 있다. 코어 수부터 처리 속도, 전력 소비량에 따라 크게 3가지 코어가 있고, 여기에 메모리 모듈을 붙이는 것으로 모두 17가지 제품으로 나눠진다. 이는 반도체 공정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 인텔은 과거 스마트폰용 아톰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이 모듈화 기술을 얻게 됐다.


아톰 E3900의 대표적인 활용 영역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인텔은 몇 년 안에 자동차 안에서 쓰일 디스플레이의 개수를 19개로 내다봤다. 인포테인먼트부터 계기판, 뒷자리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도 디스플레이로 대체되는 기술이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도도 풀HD에서 4k로 점차 올라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스템을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 공간 문제와 케이블 설계 때문이다. 시스템은 더 단순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다.

 

 

인텔 제공
인텔코리아 제공

이제 차량 한 편에 태블릿만한 큰 디스플레이가 자리잡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아톰은 당장 19개까지는 아니더라도 3대의 디스플레이를 풀HD로 운영할 수 있다. 이 디스플레이 개념은 약간 다를 수 있는데, 3대라고 해도 이를 쪼개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디스플레이로 쓰일 수도 있다.


아톰 E3900에는 밝기 차이에 관계 없이 사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vHDR 기술과 어두운 곳에서 카메라로 받아들인 사물을 또렷이 보정해주는 ULL 기술이 들어간다. 또한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1000분의 1초 단위로 데이터를 동기화하는 타임 코디네이트 콘트롤(TCC) 기술도 더해졌다. 이런 게 엄지 손톱 반 만한 프로세서에서 처리된다. 실제로 이 프로세서가 들어간 차량들이 나오고 있고, ‘똑똑한 자동차’ 소리를 듣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디어는 결코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아톰 프로세서는 딱 그 사례였다. 애초 생각했던 저소득 국가를 위한 컴퓨터 쪽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뜻밖의 인기와 고성능 제품에 대한 간섭효과, 그리고 성능에 대한 실망을 동시에 겪었다. 모바일 시장에도 정착하지 못했고 인텔에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는 옷을 찾아 입기 시작했다.

 

 

※ 필자소개

최호섭. PC사랑을 시작으로 최근 블로터까지 IT 분야만 팠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들여다보기 시작한 노트북과 팜 파일럿 PDA는 순간이 아니라 인생을 바꿔 놓았다. 기술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역사와 흐름을 읽고자 한다. 세상은 늘 배울 게 많고, 기술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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