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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301] 잠과 꿈의 유전학 - 잠꾸러기 생쥐와 꿈 안 꾸는 생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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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5일 18:10 프린트하기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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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3분의 1일나 차지하는 잠. 혹자는 잠을 죽음에 연관시키기도 한다. 잠이 매일 겪는 일시적인 죽음이라면 죽음은 영원이 깨지 않는 잠이라는 것이다. 건강에 관련된 일이 다 그렇듯이 잠도 잘 잘 때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점차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부쩍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잠은 생각할수록 미스터리한 현상이다. 뇌가 휴식하고 습득한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하루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이르는 시간을 들인다는 건 낭비 아닐까. 그리고 잠이 두 가지로 나뉘어 있는 게 이런 기능과 관련이 있는 현상일까. 즉 비렘(non-REM)수면이 휴식 (또는 청소)을 위한 시간이라면 렘(REM, 급속안구운동)수면은 정보처리와 기억을 위한 시간일까.


다른 생명현상과는 달리 잠은 사람을 대상으로 뇌파 측정을 통해 이런 사실들이 가장 먼저 알려졌다. 따라서 정신의학에서 꿈을 매우 중요시한 프로이트의 관점을 지지하는 듯 했으나 그 뒤 다른 포유류나 심지어 조류에서도 렘수면이 존재한다는, 즉 이들도 꿈을 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학술지 ‘사이언스’ 4월 29일자에는 파충류인 비어디드레곤에서도 렘수면이 보인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수면의 과학에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잠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현상이다. 영국 화가 프레데릭 레이튼의 1895년 작 ‘타오르는 6월’. - 위키피디아 제공
수면의 과학에 많은 진전이 있었음에도 잠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현상이다. 영국 화가 프레데릭 레이튼의 1895년 작 ‘타오르는 6월’. - 위키피디아 제공

수면 조절 신경회로 많이 밝혀져


아무튼 사람이 자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잘 알려져 있다. 즉 깬 상태에서 잠이 들 때는 1단계 비렘수면으로 들어간다. 비렘수면은 네 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단계가 진행될수록 잠이 깊어진다. ‘업어 가도 모를 정도’가 4단계다. 그리고 다시 잠이 얕아지면서 렘수면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대략 90분 주기의 사이클이 4~5회 반복된다.


비렘수면과 렘수면은 뇌파로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비렘수면에서는 진동수가 작은 델타파와 세타파가 주를 이루고 대신 진폭은 크다. 반면 렘수면은 진동수가 큰 알파파와 베타파가 주를 이루고 대신 진폭은 작다. 사실 뇌파 패턴만 보면 렘수면은 각성 상태와 별로 차이가 없다. 이 기간 생생한 꿈을 꾸는 것만 봐도 수긍이 간다. 다만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경로가 차단돼 있어 몸이 따라가지는 않는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과학자들은 각성과 수면 과정, 비렘수면과 렘수면에 관여하는 뇌의 회로를 밝혀내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예를 들어 기저전뇌(basal forebrain)에는 각성 뉴런을 억제하는 수면 뉴런이 존재하다. 그런데 최근 알츠하이머병이 처음 시작되는 뇌부위가 기존에 알려진 측두엽이 아니라 기저전뇌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불면증이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전조증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말이 되는 결과다.


학술지 ‘네이처’ 10월 6일자에는 수면조절의 신경회로 연구 현황을 정리한 리뷰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수면의 행동이나 뇌과학 연구는 상당한 진전이 있음에도 관련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상태였다. 그런데 ‘네이처’ 11월 17일자에 수면과 관련된 유전자 두 개가 보고되면서 수면의 유전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수면곡선의 한 예로 자정부터 오전 6시30분까지 잠의 기록이다. 깨어 있다가 비렘수면의 1단계로 들어가는 선잠을 시작으로 비렘수면이 점차 깊어지고 다시 얕아지다 어느 순간 렘수면(빨간색)이 나타난다. 잠자는 동안 이런 주기가 몇 차례 반복된다. 렘수면 동안 일시적으로 잠이 깨기도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수면곡선의 한 예로 자정부터 오전 6시30분까지 잠의 기록이다. 깨어 있다가 비렘수면의 1단계로 들어가는 선잠을 시작으로 비렘수면이 점차 깊어지고 다시 얕아지다 어느 순간 렘수면(빨간색)이 나타난다. 잠자는 동안 이런 주기가 몇 차례 반복된다. 렘수면 동안 일시적으로 잠이 깨기도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비렘수면만 늘어나거나 렘수면만 짧아져


일본 쓰쿠바대와 미국 텍사스대 등 공동연구자들은 생쥐에 임의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수면 패턴에 이상을 보이는 개체를 찾아 분석한 결과 수면 시간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렘수면 시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았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DNA 염기에 변이를 일이키는 약물인 ENU를 처리한 수컷 생쥐와 정상 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8000마리가 넘는 새끼들의 수면 시간과 뇌파를 일일이 조사해 이 가운데 이상을 보이는 개체들을 찾아냈다. 먼저 수면 시간이 대폭 늘어난 변이체들로, 연구자들은 이에 ‘슬리피(Sleepy)’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슬리피 생쥐는 깨어있는 시간이 9시간이 채 안 돼 정상 생쥐보다 평균 네 시간이나 적었다.


게놈에서 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확인한 결과 9번 염색체에 있는 Sil3 유전자의 열세 번째 인트론의 염기 하나가 구아닌(G)에서 아데닌(A)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 인트론은 유전자에서 아미노산으로 번역이 안 되는 부분이다(전사가 일어난 뒤 스플라이싱이라는 과정을 거쳐 인트론이 제거되고 남은 엑손의 정보에 따라 리보솜에서 아미노산 사슬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염기 하나가 바뀌면서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 열세 번째 엑손을 포함해 열네 번째 인트론까지 통째로 잘려나갔다. 그 결과 중간에 아미노산 52개가 없어진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수면 패턴이 비정상적인 변이 생쥐를 얻은 과정.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약물을 처리한 수컷생쥐와 정상생쥐를 교배해 변이를 지닌 새끼를 얻은 뒤 수면 패턴과 뇌파를 분석해 특이한 개체를 찾는다. 이 가운데 비렘수면 시간이 늘어난 슬리피 변이체는 Sik3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났고, 렘수면 시간이 줄어든 드림리스 변이체는 Nalcn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처 제공
수면 패턴이 비정상적인 변이 생쥐를 얻은 과정.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약물을 처리한 수컷생쥐와 정상생쥐를 교배해 변이를 지닌 새끼를 얻은 뒤 수면 패턴과 뇌파를 분석해 특이한 개체를 찾는다. 이 가운데 비렘수면 시간이 늘어난 슬리피 변이체는 Sik3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났고, 렘수면 시간이 줄어든 드림리스 변이체는 Nalcn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처 제공

흥미롭게도 슬리피 생쥐들에서 렘수면의 시간은 별 변화가 없었다. 즉 비렘수면만 특이적으로 늘어난 결과라는 말이다. 한편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나 약물의 효과는 여전했다. 즉 잠자리가 바뀔 경우 생쥐도 잠을 잘 못 이루는데, 슬리피 변이체도 마찬가지였다. 또 카페인 같은 각성제의 효과도 여전했다. 즉 각성 반응은 정상이었다. 슬리피의 긴 수면 시간은 수면 회로 자체의 변화에 따른 생리적인 반응이라는 말이다.


SIK3는 단백질인산화효소로 대뇌피질과 시상, 시상하부, 뇌간 등 수면조절과 관련된 부위에서 폭넓게 발현된다. 연구자들은 수면 결핍의 정도에 따라 SIK3의 인산화 정도가 바뀌면서 활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변이 SIK3 단백질은 이런 과정에 왜곡이 생겨 잘못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수면 시간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한편 또 다른 변이체는 ‘드림리스(Dreamless)’다. 이 변이체의 뇌파를 검사한 결과 렘수면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꿈꾸는 시간도 반토막이 났을 것이지만 꿈을 아예 꾸지 않는 건 아님에도 극적 효과를 위해 이런 이름을 붙인 듯하다. 반면 비렘수면은 정상 생쥐와 별 차이가 없었다.


게놈에서 변이가 일어난 부분을 확인한 결과 14번 염색체에 있는 Nalcn 유전자의 엑손에서 염기 하나가 티민(T)에서 아데닌(A)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결과 315번째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에서 라이신으로 바뀐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Nalcn은 양이온 채널 단백질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뇌간에서 렘수면과 관련된 영역인 복외측수도관, 중간뇌핵 등에서 많이 발현한다. 연구자들은 변이 Nalcn 채널이 이온 전도도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렘수면 조절 뉴런의 활성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꿈은 물론이고 잠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지만 수면과 관련된 신경회로와 함께 유전자도 하나 둘 밝혀진다면 머지않아 잠과 꿈의 미스터리가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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