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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르제발스키 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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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15일 17:59 프린트하기

 

몽골 초원에서 야생 상태로 살고 있는 프르제발스키 말. 생김새가 보통 말과는 꽤 다르고 염색체 개수도 다르지만 같은 종으로 분류하는 게 대세다. - Claudia Feh 제공
몽골 초원에서 야생 상태로 살고 있는 프르제발스키 말. 생김새가 보통 말과는 꽤 다르고 염색체 개수도 다르지만 같은 종으로 분류하는 게 대세다. - Claudia Feh 제공

지난 해 초 국내 과학계는 난데없이 생물학 교과서 진화론 폐기 논란에 휩싸였다. 한 종교 계열 단체에서 제출한 교과서 개정 청원(아마 당사자들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낸 걸 텐데)이 덜컥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했다. 진화론 창조론 논쟁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필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관련 기사를 쓰게 됐다.

 

평소 과학과 종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뺏기는 게 좀 짜증이 났지만(전화로 얘기를 나눈 한 진화생물학자도 똑 같은 심리상태였다!), 그래도 일은 일이니 취재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다보니 나중엔 나름 재미있기까지 했다. 100년을 넘게 계속된 미국의 진화론 창조론 투쟁 역사는 한편의 드라마였고, 시조새와 연관된 최신 연구결과를 보면서 조류의 진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말의 진화를 디테일하게 알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말의 진화가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개수가 줄어드는 방향(최종적으로 발굽이 됨)으로 이뤄졌다는 막연한 지식에 새로운 정보를 하나 둘 보태다보니 얘기할 게 많아져, 결국 ‘과학동아’ 2012년 8월호에 말을 기획으로 다룰 때 필자가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내용을 (구성상) 포함시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됐다. 바로 ‘프르제발스키 말(Przewalski's horse)’ 이야기다.

 

과학저널 ‘네이처’ 7월 4일자에는 70만 년 전 북미대륙을 질주했을 말의 냉동 사체(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게놈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이번 논문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프르제발스키 말의 매력도 함께 소개한다.

 

●400만~450만 년 전 에쿠크속 공동조상에서 갈라진 듯

 

에쿠스속에 속하는 여러 말의 게놈을 분석해 비교한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계통수. 400만~450만 년 전 공동조상에서 여러 종들이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부터 당나귀,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약 70만 년 전), 후기 플라이스토세 말(약 4만3000년 전), 프르제발스키 말, 가축화된 말이다. - 네이처 제공
에쿠스속에 속하는 여러 말의 게놈을 분석해 비교한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계통수. 400만~450만 년 전 공동조상에서 여러 종들이 갈라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부터 당나귀, 중기 플라이스토세 말(약 70만 년 전), 후기 플라이스토세 말(약 4만3000년 전), 프르제발스키 말, 가축화된 말이다. - 네이처 제공

덴마크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2003년 캐나다 유콘준주(Yukon Territory) 시슬강(Thistle Creek) 지역 영구동토에서 56만~78만 년 전 말의 뼈를 발견했다. 워낙 보존상태가 좋아 이들은 이 시료를 분석해 73가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밝히는데 성공했다. 최근 수년 사이  게놈분석기술이 급격히 발달하자 이번에 게놈해독까지 도전했고 멋지게 성공한 것. 수만 년 전 인류의 게놈이 해독된 게 불과 2~3년 전인데 무려 10배나 더 오래된 게놈이 해독된 것이다. 바야흐로 ‘고게놈학(palaeogenomics)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여담이지만 오래 전 생물체의 게놈을 해독하는 것과 최근 황우석 박사팀이 시도하고 있다는 멸종된 생물을 복원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매머드 체세포의 핵을, 핵을 뺀 코끼리 난자에 넣어 대리모 코끼리 자궁에 착상시켜 매머드를 탄생시킨다는 꿈같은 계획은 각 염색체의 DNA가 온전하게 보존돼 있어야 가능하지만, 게놈해독은 DNA가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파괴되지 않으면 가능하다. 어차피 게놈분석을 하려면 DNA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야한다. 이번에 분석한 게놈조각의 평균 길이는 77.5염기쌍이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영구동토처럼 조건이 좋을 경우 게놈해독 가능성의 한계는 100만 년 전 정도라고 한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앞서 말의 진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약 5500만 년 전 하이라코테리움(Hyracotherium)이라는 고양이만한 동물이 살았는데 오늘날 말과 맥, 코뿔소의 공동조상이라고 한다. 그 뒤 여러 생물종이 나타나면서 점차 오늘날의 말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계열은 멸종해 명맥이 끊겼다. 그 결과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말류는 에쿠스(Equus)라는 단일 속(屬)으로 말과 얼룩말, 당나귀 등 8종이 있다. 몇몇 연구자들이 여러 증거를 토대로 오늘날 에쿠스속 종들의 공동조상이 대략 400만 년까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아직까지 200만 년이 넘는 에쿠스속 화석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영국 리전트파크동물원에 있던 프르제발스키 말 수컷 ‘차르’(위)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잡종 수컷(아래)의 모습. - 세포유전학 제공
영국 리전트파크동물원에 있던 프르제발스키 말 수컷 ‘차르’(위)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잡종 수컷(아래)의 모습. - 세포유전학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 70만 년 전 말(정확히는 에쿠스속 동물)의 게놈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4만3000년 전 말(역시 뼈)과 현생 길들여진(가축화된) 말(5가지 품종), 프르제발스키 말, 당나귀의 게놈도 함께 분석해 비교했다. 그 결과 이들의 공동조상이 400만~45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직 화석 증거는 없지만 현재 추정하고 있는 연대와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또 이들 사이의 유전적 거리를 비교한 결과 먼저 당나귀와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고 그 뒤에 70만 년 전 종과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다. 그리고 4만3000년 전 종과 나머지의 공동조상이 분리됐다(그림 참조). 길들여진 말과 프르제발스키 말은 3만8000년~7만2000년 전 갈라진 것으로 나왔다. 발굴된 뼈만으로는 70만 년 전 종이나 4만3000년 종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게놈 데이터만 보면 당나귀보다는 말(품종개량 과정에서 많이 변형됐을 가축화된 말 보다는 프르제발스키 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프르즈왈스키 말이 어떤 중요성을 띠기에 이번 연구에서 비교군의 하나로 포함됐을까.

 

●1969년 최후의 야생마 죽었지만

 

1879년 몽골 지역을 탐사하다 프르제발스키 말을 발견해 보고한 러시아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독재자 스탈린과 닮아 그의 친부라는 괴담도 있다. 참고로 스탈린은 1878년 오늘날 조지아공화국에 속하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 위키피디아 제공
1879년 몽골 지역을 탐사하다 프르제발스키 말을 발견해 보고한 러시아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독재자 스탈린과 닮아 그의 친부라는 괴담도 있다. 참고로 스탈린은 1878년 오늘날 조지아공화국에 속하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 위키피디아 제공

1839년 러시아 스몰렌스크에서 태어난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Nikolay Przhevalsky)는 역마살을 누르지 못하고 바람처럼 살다가 티푸스에 걸려 49세에 객사한 사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관학교를 마치고 25세에 모스크바의 한 군사학교의 지리교사로 부임한 프르제발스키는 28세 때인 1867년 러시아지리학회에 시베리아를 조사하겠다는 제안서를 내 지원을 얻는데 성공한다. 1869년까지 실컷 돌아다니다 온 그는 ‘우수리 지역 여행’이라는 탐사일지를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 뒤 네 차례에 걸쳐 한 번에 2~3년 걸리는 중앙아시아 탐사여행을 하면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여러 동식물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몽골에서 발견한 야생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생말은 사실 진짜 야생말이 아니다. 사람이 길들여 가축으로 만든 말이 탈출해 자연으로 되돌아가 적응한 것이다. 프리제발스키가 몽골에서 야생말을 목격하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지구상에서 야생말은 멸종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15세기 독일의 탐험가 요한 실트베르거가 몽골에서 특이하게 생긴 야생말을 봤다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프리제발스키는 몽골 초원의 말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마침내 1879년 그 야생말을 발견한 것이다. 1881년 생물학자 폴리아코프는 이 말의 학명을 발견자 프리제발스키를 기려 ‘에쿠스 프르제발스키(Equus przewalskii)’라고 명명했다. 그 뒤 이 말은 프리제발스키 말 또는 몽고야생말(Mongolian wild horse)로 불린다.

 

프르제발스키 말은 (가축화된) 전형적인 말에 비해 다리가 짧아 땅딸막하다는 인상을 준다. 얼굴도 길쭉하면서도 둥글둥글한 게 필자 같은 비전문가가 봐도 보통 말과는 확실히 다른 생김새다. 키(어깨 높이)는 130cm 정도이고 몸무게는 300kg 내외로 제주마보다 약간 더 큰 조랑말이다. 야생에서는 수마리가 가족이 돼 무리로 생활하는데, 보통 수컷 한 마리에 암컷 한 마리에서 세 마리, 새끼들로 이뤄져 있다.

 

발견 당시에도 이미 얼마 되지 않던 개체수는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1969년 몽골에서 마지막 야생 프르제발스키 말이 죽었다. 한편 독일 뮌헨과 체코 프라하의 동물원에 프르제발스키 말 수십 마리가 있었는데, 1950년대에는 12마리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다행히 1977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프르제발스키 말 보존?보호재단’이 설립됐고, 1992년 16마리를 몽골의 초원으로 되돌려 보내는 걸 시작으로 야생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몽골과 중국 여러 곳에 야생으로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살고 있고 각국의 동물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 세계에 1000여 마리만 있는 희귀종이다.

 

사실 프르제발스키 말은 희귀‘종’은 아닌데, 오늘날은 가축화된 말과 같은 종인 ‘에쿠스 페루스(Equus ferus)’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즉 프르제발스키 말은 에쿠스 페루스의 한 아종으로 아종명까지 포함된 학명이 ‘에쿠스 페루스 프르제발스키(Equus ferus przewalskii)’이고 가축화된 말은 ‘에쿠스 페루스 카발루스(Equus ferus caballus)’다. 겉모습이 꽤 차이가 남에도 한 종으로 묶은 건 프르제발스키 말과 (가축화된) 말 사이에 생식력이 있는 새끼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당나귀와 말 사이에서는 생식력이 없는 새끼(노새나 버새)가 태어나 둘이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잡종의 염색체는 65개로 이뤄져 있다. 화살표는 가축화된 말에서 받은 5번 염색체와 이에 상응하는, 프르제발스키 말에서 받은 23번, 24번 염색체를 가리키고 있다. - 세포유전학 제공
잡종의 염색체는 65개로 이뤄져 있다. 화살표는 가축화된 말에서 받은 5번 염색체와 이에 상응하는, 프르제발스키 말에서 받은 23번, 24번 염색체를 가리키고 있다. - 세포유전학 제공

흥미롭게도 (가축화된) 말과 프르제발스키 말은 염색체 숫자가 서로 다르다. 즉 말은 64개(32쌍)인 반면 프르제발스키 말은 66개(33쌍)이다. 사실 필자는 작년에 프르제발스키 말에 대해 알아보다 생물이 염색체 개수가 달라도 한 종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참고로 당나귀는 염색체가 62개(31쌍)다.

 

따라서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나 버새의 염색체가 63개(말에서 32개, 당나귀에서 31개를 받으므로)인 것처럼 말과 프르제발스키 말 사이에 태어난 잡종은 염색체가 65개다. 그런데 이 잡종이 어떻게 생식력(다른 잡종이나 말 또는 프르제발스키 말과 짝짓기를 해서)을 가질 수 있을까.

 

연구 결과 말의 5번 염색체가 쪼개져 프르제발스키 말의 23번과 24번 염색체가 됐음이 밝혀졌다(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둘의 염색체는 전반적으로 구조가 유지돼 있다. 따라서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에서 염색체 쌍이 배열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1974년 학술지 ‘세포유전학’에 발표된 한 논문을 보면 감수분열 과정에서 모계(또는 부계)에서 받은 5번 염색체와 부계(또는 모계)에서 받은 23번, 24번 염색체가 나란히 정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다.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가축화된 말 유래 5번 염색체와 프르제발스키 유래 23번, 24번 염색체가 나란히 배열하는 모습을 찍은 현미경 사진(위). 아래는 이를 도식화한 그림. 이런 배열이 가능하기 때문에 잡종도 생식력이 있고 따라서 프르제발스키 말은 가축화된 말과 염색체 개수가 다름에도 한 종으로 분류된다. - 세포유전학 제공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가축화된 말 유래 5번 염색체와 프르제발스키 유래 23번, 24번 염색체가 나란히 배열하는 모습을 찍은 현미경 사진(위). 아래는 이를 도식화한 그림. 이런 배열이 가능하기 때문에 잡종도 생식력이 있고 따라서 프르제발스키 말은 가축화된 말과 염색체 개수가 다름에도 한 종으로 분류된다. - 세포유전학 제공

프르제발스키 말은 종다양성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말이 가축화되면서 게놈상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파악하는데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논문에서 프르제발스키 말을 포함시킨 이유다. 다행히 이번 게놈분석 결과 프르제발스키 말의 게놈에 가축화된 말의 게놈이 유입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과거 몽골에서도 가축화된 말과 피가 섞이지 않았고 사람에게 잡혀 동물원으로 팔려와 수 세대가 지나 다시 몽골 초원으로 간 여정에서도 혈통을 유지했다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도 프르제발스키 말이 몇 마리 있는 듯하다. 언제 한 번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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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15일 17:59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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