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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자를 발견한 '해리 크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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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자를 발견한 '해리 크로토'

2016.12.19 15: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19건, ‘사이언스’에는 7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6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0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해리 크로토 (1939.10. 7 ~ 2016. 4.3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자를 발견한 화학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자를 발견한 화학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자를 발견한 화학자 '해리 크로토' - 위키피디아 제공

자기 분야에서는 꽤 유명하고 심지어 노벨상을 탔더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학자가 대다수다. 특히 물리학이나 생명과학에 비해 화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이런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그런데 예외적인 화학자 두 사람이 있으니 축구공과 똑 같이 생긴 분자 풀러렌을 발견해 1996년 노벨화학상을 함께 탄 리처드 스몰리와 해리 크로토다. 2005년 스몰리가 62세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고 11년이 지난 올해 4월 30일 해리 크로토(Harry Kroto)가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하인츠 크로토쉬너(Heinz Krotoschiner)와 아내 에디스는 위스베치에 정착했고 1939년 아들 해리를 낳았다. 전쟁이 터지자 독일 성인 남성인 아버지는 포로로 맨 섬으로 보내졌고 에디스는 아들과 함께 힘든 시기를 보냈다. 종전 뒤 풀려난 하인츠는 성을 크로토로 줄여 개명하고 영국에 정착했다.

 

셰필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크로토는 1967년 서섹스대에서 강사 자리를 잡은 뒤 성간 공간의 화학을 연구했다. 그는 전파천문학 관측 데이터와 분자분광학 데이터를 조합해 분자구름을 이루는 다양한 탄소 기반 화합물을 연구했다. 크로토는 미국 라이스대 화학과의 리처드 스몰리 교수가 단순명료한 분광학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기법을 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 1984년 3월 스몰리 교수 실험실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의견을 교환했고 스몰리 교수의 장비가 크로토 교수가 성간 구름에서 관측한 긴 사슬의 탄소화합물 같은 유형의 분자를 제대로 검출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이듬해 9월 흑연을 증기로 만들 때 나오는 화합물을 분석했고 천체관측에서 보이는 탄소원자 7~12개 길이의 분자가 검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와 함께 탄소원자 40~80개로 이뤄진 분자들도 나왔고, 특히 탄소원자 60개로 이뤄진 분자의 피크가 높았다. 즉 탄소원자 60개로 이뤄진 안정한 분자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라이스대의 동료 화학자 로버트 컬과 함께 이 화합물의 구조를 연구했고 축구공과 똑 같이 생긴 분자라는 놀라운 결론에 이르렀다. 즉 정육면체 조각 20개, 정오면체 조각 12개를 이어붙인 축구종의 패턴에서 꼭짓점 60개에 각각 탄소원자가 위치하는 구조였다. 이들은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분자에 버크민스터풀러렌(buckminsterfullerene)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붙였다. 크로토가 지오데식 돔을 디자인한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를 떠올려 제안했다고 한다. 비록 일류 저널에 실렸지만 질량분석 데이터만으로는 구조를 100% 증명한 게 아니기 때문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았다. 그 뒤 결정을 만들어 얻은 X선 회절 데이터를 분석해 제안한 구조가 맞다는 걸 증명했다.

 

노벨상 100주년을 맞아 크로토가 디자인한 화학상 부문 우표
노벨상 100주년을 맞아 크로토가 디자인한 화학상 부문 우표

그 뒤 1991년 일본 NEC연구소의 이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풀러렌이 길쭉해진 구조인 탄소나노튜브를 발견하면서 나노과학이 급부상했다. 스몰리 교수는 나노과학 전도사를 자처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노벨상을 빨리 탈 수 있도록 로비를 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풀러렌 논문을 발표하고 11년이 지난 1996년 스몰리와 크로토, 컬 세 사람은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수상 뒤 크로토는 과학대중화에 큰 관심을 보여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그는 정치적인 발언도 삼가지 않았는데 특히 과학의 영역을 넘보는 일부 기독교의 움직임에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는 종교적인 독선이 사람들을 비도덕적으로 만든다며 인문학이 도덕성 있는 인간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종교의 권력화 시도에 역시 강경한 리처드 도킨스는 크로토를 높이 평가했다.

 

한편 크로토는 그래픽디자인에도 조예가 깊어 원래 과학자 생활을 좀 일찍 접고 스튜디오를 차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풀러렌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제 2의 인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크로토는 1964년 선데이타임스 책표지 공모전에 수상하기도 했고 그 뒤 틈틈이 반(半)직업 삼아 그래픽 작업을 했다. 그 결과 포스터, 책표지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크로토는 말년에 루게릭병에 걸려 고생하다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도 무신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반면 스몰리는 암 투병을 하면서 한동안 떠나있었던 기독교로 돌아가 말년에 정신의 안식을 찾았다. 두 사람과 함께 노벨상을 탄 라이스대 로버트 컬 교수는 1933년생으로 가장 연장자이지만 2005년 ‘네이처’에 스몰리의 부고를 썼고 올해 역시 ‘네이처’에 칼텍의 제임스 히스 교수(1985년 풀러렌 논문의 공동 저자)와 함께 크로토의 부고를 썼다. ‘세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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