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7) 메타개체군 연구를 심화시킨 ‘일카 한스키’

통합검색

[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7) 메타개체군 연구를 심화시킨 ‘일카 한스키’

2016.12.20 18:0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일카 한스키 (1953. 2.14 ~ 2016. 5.10) 메타개체군 연구를 심화시킨 생태학자

 

일카 한스키. - Linda Tammisto/헬싱키대 제공
일카 한스키. - Linda Tammisto/헬싱키대 제공

요즘 과학계에는 ‘메타’라는 접두어가 유행인 것 같다. 물리학에는 메타물질이 있고 생명과학에는 메타게놈이 있다. 메타(meta-)는 ‘너머’라는 뜻으로 한 단계 위의 범주를 뜻한다.

 

예를 들어 메타물질은 일반 물질의 특성을 부여하는 원자 대신 원자들의 배열, 즉 메타원자가 그 특성을 부여하는 물질이다. 메타게놈은 한 종의 게놈이 아니라 시료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게놈을 뜻한다. 즉 한 번에 한 종씩 게놈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다 분석할 수 있는 기술 덕분에 가능한 분야다. 데이터를 분석한 논문들을 모아 또 분석하는 메타분석 논문도 부쩍 늘었다.


생태학에도 메타개체군(metapopulation)이란 용어가 있다. 한 서식지를 차지하고 상호작용하는 동종 개체들의 무리를 개체군이라고 부르므로 메타개체군은 개체군으로 이루어진 개체군을 뜻한다.

 

즉 어떤 종이 메타개체군을 이루는 지역 내부에는 종이 살 수 있는 영역이 섬처럼 흩어져 있는데 이게 국지개체군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고 서식지를 넓히면서 동식물이 살 수 있는 영역이 점점 파편화되면서 메타개체군이 늘어나고 있다. 메타개체군 분야를 개척한 생태학자 일카 한스키(Ilkka Hanski)가 지난 5월 10일 63세로 별세했다.


1953년 핀란드 렘페레에서 태어난 한스키는 전원에 위치한 할아버지 집에서 나비와 나방을 채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헬싱키대의 유전학자 에스코 수오말라이넨이 할아버지 집에서 희귀한 나비를 채집했는데 이게 인연이 돼 한스키는 생물학에 더 열정을 갖게 됐다. 헬싱키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뒤 영국으로 유학 가 옥스퍼드대에서 쇠똥구리의 생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헬싱키대에 자리를 잡은 한스키는 수많은 호수와 섬이 있는 핀란드에 딱 적합한 메타개체군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참고로 메타개체군은 1969년 미국 하버드대의 생태학자 리처드 레빈스가 만든 용어다. 한스키는 198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 발트해에 있는 올란드 제도에 사는 글랜빌표범나비(Glanville fritillary butterfly)를 대상으로 25년에 걸친 장기 메타개체군 연구에 들어갔다.

 

한스키는 2014년 암 진단 이후 집필에 들어갔지만 끝내 책이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그의 삶과 연구가 담긴 ‘Messages from Islands’는 12월 13일 출간됐다. - 네이처 제공
한스키는 2014년 암 진단 이후 집필에 들어갔지만 끝내 책이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그의 삶과 연구가 담긴 ‘Messages from Islands’는 12월 13일 출간됐다. - 네이처 제공

한스키와 동료 연구원, 학생들은 매년 4000여 곳의 지역을 조사했는데 400~800 곳에서 나비를 발견했고 그 지역은 해마다 바뀌었다. 즉 메타개체군 내에서 국지개체군이 소멸되고 재등장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분석기법은 종의 다양성 보존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스키가 1999년 펴낸 ‘메타개체군 생태학’은 이 분야의 바이블이다.


2000년 한스키는 헬싱키에 메타개체군연구센터를 설립해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그는 후배들이 손을 흔들 때마다 기꺼이 도움을 주면서도 ‘상당한 지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걸 거부했다. 후배 과학자들이 하루 빨리 경력을 쌓아 독립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뛰어난 학자이자 존경받는 스승으로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던 한스키는 그러나 2014년 암 진단을 받았다. 그 뒤 그는 자신의 삶과 연구를 뒤돌아보는 교양과학서를 집필했지만 아쉽게도 출간을 보지 못하고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된 ‘Messages from Islands’는 지난주 출간됐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3 + 3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