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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0) 현장에 개입해 핵심종 개념을 만든 로버트 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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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0) 현장에 개입해 핵심종 개념을 만든 로버트 페인

2016.12.24 19:30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로버트 페인 (1933. 4.13 ~ 2016. 6.13) 현장에 개입해 핵심종 개념을 만든 생태학자

 

2011년 타투시 섬에서 로버트 페인이 포획한 불가사리와 포즈를 취했다. - Anne Paine 제공
2011년 타투시 섬에서 로버트 페인이 포획한 불가사리와 포즈를 취했다. - Anne Paine 제공

TV자연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가끔 불편한 장면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감염이나 사냥과정의 충돌로 부상을 입은 동물이 상처가 덧나 결국을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이 그런 예다.

 

관찰자들은 끊임없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동물을 치료할 생각은 안 한다. 자신들은 생태계를 관찰할 뿐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때로 ‘하긴 동물을 치료해주면 스토리가 안 되겠지...’라며 시니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생태계 연구에서 이런 불개입의 원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로버트 페인(Robert Paine)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1933년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난 페인은 어린 시절 자연의 품속에서 자랐고 하버드대에 들어가서는 고생물학에 심취했다. 화석을 연구하기 위해 미시건대 대학원에 진학한 페인은 그러나 생태학자 프레더릭 스미스의 강의를 듣고 생태학으로 전향해 ‘살아있는’ 화석인 개맛을 연구해 196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 동물학과에 자리를 잡은 페인은 먹이사슬에 대한 기존 입장, 즉 먹이가 주요 변수이고 포식자가 종속 변수라는 통념을 반박하는 ‘녹색세계가설’를 입증하는 실험을 설계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위적인’ 행동에 착수했다. 즉 그의 스승인 스미스와 동료 연구자들은 1960년 발표한 논문에서 식물을 먹으로 하는 초식동물의 수는 결국 포식자에 의해 조절되므로 녹색세계가 유지되려면 포식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63년 페인은 워싱턴주 마카 만 해변에서 폭 8m인 구역을 설정한 뒤 최상위 포식자인 오커불가사리를 잡아들였다. 우리가 익숙한 불가사리는 손바닥만하지만 오커불가사리는 폭이 50cm에 이르기 때문에 바위에 붙어있는 걸 떼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인은 이곳을 수시로 찾아가 불가사리가 보이는 대로 없애면서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처음에는 불가사리가 즐겨 먹는 먹이인 따개비가 늘어나다가 얼마 뒤 홍합이 우점종이 되면서 조류(algae)와 삿갓조개를 몰아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 구역에 사는 종수가 15종에서 8종으로 줄어들었다. 페인은 1966년 발표한 논문에서 오커불가사리처럼 생태계 전반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종을 ‘핵심종(keystone species)’이라고 불렀다. 이 논문이 나간 뒤 많은 생태학자들이 개입 연구(실험생태학)에 뛰어들었고 다양한 생태계에서 핵심종의 존재가 속속 드러났다.

 

페인 사단의 전모를 한 눈에 보여주는 페인가계도. 1999년 만든 것이다. - Marian Kohn 제공
페인 사단의 전모를 한 눈에 보여주는 페인가계도. 1999년 만든 것이다. - Marian Kohn 제공

한편 페인은 뛰어난 후학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학계에는 ‘페인 사단’으로도 불린다. 실제 1999년 메리언 콘이 그린 페인계통도가 있을 정도다. 그림에서 나무기둥이 페인이고 직계 제자들인 큰 가지에 그들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작은 가지들이 나 있다. 페인이 이처럼 뛰어난 학자들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연구에서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주면서도 논문에는 되도록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으려는, 즉 제자들이 빨리 독립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페인은 1967년 연어낚시 여행을 떠났다가 발견한 태평양 연안의 작은 섬 타투시(Tatoosh)를 둘러본 뒤 연구에 최적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1970년부터 핵심종에 대한 본격적인 실험생태학 연구를 진행해 많은 결과를 얻었다. 25년이 지난 1995년 페인은 마침내 불가사리를 더 이상 잡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영원히 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불가사리가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예상대로 불가사리가 돌아오자 해안을 뒤덮은 홍합이 급속히 줄어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페인은 1998년 교수직을 물러난 뒤에도 타투시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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