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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라진 과학계 별들](14) 생명과학에 보는 재미를 더해 준 로저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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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9일 16:00 프린트하기

지난 네 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그해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어느새 2016년도 달력도 마지막 달만 남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0건, ‘사이언스’에는 8건의 부고가 실렸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7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1명이 된다. 이들의 삶과 업적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지난 1월 24일 작고한 마빈 민스키의 경우는 1월 27일자 동아사이언스 기사로 대신한다.

 

 

★ 로저 첸 (1952. 2. 1 ~ 2016. 8.24) 생명과학에 보는 재미를 더해 준 화학자

 

지난 8월 24일 갑작스럽게 타계한 로저 첸. 2008년 노벨상 수상 무렵 모습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8월 24일 갑작스럽게 타계한 로저 첸. 2008년 노벨상 수상 무렵 모습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인용횟수가 많은 논문을 쓰고 싶다면 실험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방법을 개발해라. 그러면 우주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이 인용될 것이다.
- 피터 무어, 예일대 화학자.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014년 10월 30일자에 ‘과학인용지수(SCI)’가 나온 지 50주년을 맞아 인용횟수 탑 100 논문을 소개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SCI에는 1900년 이래 발표된 논문 5800만 건이 등록돼 있다. 100위에 해당하는 논문의 인용횟수는 1만2119회이고 1만회 이상 인용된 논문이 148편이다. 가장 궁금한 1등 논문은 인용횟수가 무려 30만5148회에 이른다. 1951년 학술지 ‘생물화학저널(JBC)’에 실렸는데, 미국의 생화학자 올리버 로리가 개발한 단백질 분석법인 ‘로리방법(Lowry method)’을 소개하고 있다.

 

2위와 3위 역시 단백질 분석법에 관한 논문이고(각각 21만3005회, 15만5530회 인용됨), 4위가 DNA염기서열분석법, 5위가 간편한 RNA추출법, 6위가 단백질 분리방법, 7위와 8위가 전자의 에너지를 구하는 방법(소프트웨어), 9위가 동물에서 지질을 추출하는 방법, 10위가 염기(또는 아미노산)서열데이터분석방법(소프트웨어)이다. 즉 인류 과학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이 아니라 실험의 기초가 되는 분석법을 설명하는 논문이 더 인기가 많은 것이다.

 

분석법을 다룬 논문은 많이 인용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저자가 종종 노벨상을 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DNA염기서열분석법을 소개한 1977년 논문으로 인용횟수 4위(6만5335회 인용)를 자랑한다. 이 연구를 이끈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생어 박사는 198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생명과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또 하나의 방법인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을 소개한 1988년 논문은 인용횟수 63위다. 연구를 이끈 미국의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는 199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약학과 로저 첸(Roger Tsien) 교수도 분석법 개발의 대가다. 세포 내 칼슘 이온을 형상화하는 형광센서 푸라2(fura-2)를 소개한 1985년 논문은 2014년 인용 순위 42위(1만9561회 인용)에 올랐고 2년이 지난 2016년 현재 2만906회 인용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업적으로 그가 노벨상도 탈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그는 다양한 색상의 형광단백질을 만든 업적으로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오늘날 형광단백질 없는 생명과학 실험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보편화됐다. 이런 놀라운 성과를 낸 첸 교수가 지난 8월 24일 자택 부근에서 자전거를 타던 도중 뇌졸중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첸은 195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엔 저명한 과학자들이 수두룩한데 오촌당숙이 중국의 우주 개발을 이끈 첸쉐썬이다. 여덟 살 때부터 집에서 각종 화학실험을 해온 천재 소년 로저는 열여섯 살에 ‘MIT를 피해’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MIT에는 아버지와 삼촌들, 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첸은 돌연 화학에 염증을 느껴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유학해 생리학을 연구한다. 그러나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화학 지식을 이용해 생리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화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동료들에게 그의 접근법은 경이 그 자체였다. 1980년 첸은 칼슘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형광색소인 퀸2(quin-2)를 합성해 세포 내 칼슘신호 전달 과정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1982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생리학과에 자리를 잡은 첸은 1985년 퀸2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푸라2를 만들었다.

 

1989년 센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약학과로 자리를 옮긴 첸은 외부에서 넣어주는 게 아니라 세포가 스스로 만드는 센서를 개발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 경우 게놈에 해당 센서를 만드는 유전자를 넣어줘야 하는데 유전자의 산물, 즉 단백질 자체가 센서일 경우 가장 이상적이었고 그 후보 물질이 녹색형광단백질(GFP)이었다.

 

로저 첸은 해파리의 녹색형광단백질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색이 선명하고 다양한 형광단백질들을 만들었다. 2008년 하버드대 연구진들은 생쥐의 뉴런에서 녹색, 빨간색, 청색 형광단백질 유전자가 임으로 발현하게 만든 브레인보우(brainbow) 기술로 개별 뉴런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게 했다. - 네이처 제공
로저 첸은 해파리의 녹색형광단백질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색이 선명하고 다양한 형광단백질들을 만들었다. 2008년 하버드대 연구진들은 생쥐의 뉴런에서 녹색, 빨간색, 청색 형광단백질 유전자가 임의로 발현하게 만든 브레인보우(brainbow) 기술로 개별 뉴런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게 했다. - 네이처 제공

1960년대 미국 우즈홀해양생물연구소의 시모무라 오사무 박사가 해파리에서 발견한 GFP는 푸른빛이나 자외선을 흡수한 뒤 이보다 에너지가 낮은 녹색빛을 내는, 즉 형광을 내는 단백질이다. 따라서 특정 단백질의 발현 정보를 담은 염기서열(때로는 단백질 유전자도 포함)과 GFP의 유전자를 융합해 게놈에 집어넣는다면 특정 단백질이 발현되는 위치나 양에 대한 정보가 녹색형광을 통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몇몇 과학자들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1992년 우즈홀해양연구소 더글러스 프레이서 박사팀이 수년간 고생한 끝에 GFP 유전자 사냥에 마침내 성공했다. 그에게서 GFP 유전자를 지닌 대장균을 받은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는 1994년 촉각수용체세포에서만 녹색 형광이 나오는 예쁜꼬마선충을 만들어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첸 역시 프레이서에게서 대장균을 받았고 화학자답게 먼저 형광 메커니즘을 연구해 1994년 이 과정에 산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 해파리의 GFP는 형광이 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첸은 단백질의 아미노산을 바꿔치기해 더 강한 형광을 내는 GFP를 만드는 연구에 착수했고 1995년 성공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 뒤 수년에 걸쳐 녹색 뿐 아니라 다양한 파장의 빛을 내는 변이 형광단백질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그 결과 세포 내에서 여러 단백질이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단백질 각각에 다른 색을 내는 형광단백질을 연결하면 되었다. 이 업적으로 첸은 시모무라, 찰피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최근 첸은 신경세포에 형광을 입혀 수술 중에 실수로 신경이 손상되지 않게 하는 형광안내수술 프로젝트와 종양에서 형광을 발하는 탐침을 개발해 암을 조기에 검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었다. 첸은 160건이 넘는 미국특허를 보유했고 바이오벤처를 세 곳 설립했는데 주로 자신의 박사후연구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네이처’ 10월 13일자에 실린 부고는 세 명이 썼는데, 그 가운데 둘은 그의 친형들인 루이스 첸과 리처드 첸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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