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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맥주생활 (16)] 맥주 덕후의 종착역, 신맛 맥주 '사우어 비어(Sour 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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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맥주생활 (16)] 맥주 덕후의 종착역, 신맛 맥주 '사우어 비어(Sour Beer)'

2017.01.06 17:00

이태원 경리단길 펍에서 친구들을 만난 H. 각기 다른 맥주를 주문해 조금씩 마셔 보기로 하고 ‘서울리너 바이세(Seouliner Weisse)’라는 이름의 맥주를 고른다. ‘바이세’라면 독일어로 밀을 의미한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울에서 만든 독일식 밀맥주라는 뜻이겠군. 맥주에 대해 눈을 떠가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맥주를 맛본다.


맥주 잔에 코를 갖다 대는데 기대했던 밀맥주의 바나나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시큼한냄새가 냄새가 코를 톡 쏜다. 한입 마시자 나도 모르게 찌푸려지는 눈살. 이게 뭐야? 시금털털한 데다 텁텁하고… 뭔가 큼큼한 냄새까지 감지된다. 맛을 본 친구들도 하나 같이 인상을 쓴다. 이거 상한 거 아냐?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미생물이 만든 신 맛


이 맥주는 상하지 않았다. 신 맛을 특징으로 하는 ‘사우어 비어(Sour Beer)’ 중 하나인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라는 스타일의 맥주다. 청량함, 쌉쌀함, 과일향, 볶은맛, 비스킷맛 등이 맥주 맛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마신다면 맥주라고 하기 어려운 괴상하기 짝이 없는 맛이다.


그러나 사우어 비어는 ‘맥덕(맥주 덕후)의 종착역’으로 불릴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시원한 맥주, 홉 향이 펑펑 터지는 맥주, 도수가 높은 검은 맥주 등을 돌고 돌아 결국에 푹 빠지게 되는 맥주라는 의미다.


식초처럼 뾰족한 신맛부터 홍초처럼 새콤한 신맛, 과일주스처럼 달콤한 신 맛… 무엇보다 입 안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주는 다채로운 신 맥주의 세계에 눈을 뜨면 속절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꼬랑내 나는 삭힌 홍어, 취두부, 블루치즈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아, 생각만해도 침이 고인다.

 

라임과 석류 - pixabay 제공
라임과 석류 - pixabay 제공

알고 보면 사우어 비어의 신 맛은 우리에게 익숙한 맛이다. 김치나 요거트의 고소하면서도 신 맛을 만들어내는 ‘젖산’이나 식초의 훅 들어오는 신맛을 구성하는 ‘초산’ 등이 사우어 맥주에 들어있다.


젖산이나 초산을 만들어내는 것은 맥주를 발효시키는 효모,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들이다. 사우어 맥주를 만들 때는 일반 맥주와 다른 미생물을 활용해 신 맛을 만들어낸다.


일반 맥주가 한달 정도면 완성되는 데 비해 사우어 비어는 몇 달에 걸쳐 발효가 진행된다. 많은 사우어 비어들이 수개월, 수년 동안 오크통에서 추가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일반 맥주보다 귀하게 취급되고 가격도 비싸다.

 


유럽에서 온 신 맥주


사우어 비어의 고향은 독일, 벨기에 등 유럽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들어진 베를리너 바이세는 알코올 도수가 대부분 2~3%로 낮고 레몬처럼 시큼하며 탄산이 많다. 독일에서는 딸기나 레몬 시럽 등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즐긴다고 한다.


독일의 또 다른 사우어 비어인 ‘고제(Gose)’는 신맛에 짠맛까지 나기 때문에 맛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벨기에 사우어 비어 스타일로는 람빅(Lambic)과 플랜더스 레드 에일(Flanders Red Ale)이 있다. 람빅은 공기중의 야생 효모와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맥주로, 신 맛이 강하다. 람빅을 그대로 마시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체리(크릭) 같은 과일을 넣어 발효시키거나 여러 생산연도의 람빅을 섞어 병에 넣어 발효시켜 부드럽게 만든다(괴즈).


플랜더스 레드 에일에서는 레드 와인에서 나는 건과일 향과 함께 신맛을 즐길 수 있다. 

 

벨기에 칸티용 브루어리의 괴즈 맥주 - 칸티용 브루어리 제공
벨기에 칸티용 브루어리의 괴즈 맥주 - 칸티용 브루어리 제공

이들 유럽의 사우어 비어가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이라는 맥주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미생물을 활용해서 신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같지만 정해진 방법에 따라 만드는 독일, 벨기에의 사우어 비어와 달리 미국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양조를 한다.


스타우트에 젖산을 만드는 박테리아를 투입하거나, 나무통에 넣어 숙성해 퀴퀴하고 떨떠름한 맛과 부드러움을 배가 시키는 등 많은 방법을 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은 어떤 맛이라고 정의하기조차 어렵다.


한국 토종 사우어 비어도 많이 있다.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온 효모와 박테리아를 활용해 신 맛을 만들어내는데, ‘도깨비’라는 맥주는 메주에서 얻은 토종 미생물을 첨가했다.


독일이나 벨기에, 미국산 사우어 비어에 비해 접할 곳이 많고 가격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신 맥주 첫 걸음으로 내디딜만하다. 경리단길에 신 맥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펍 ‘사우어 퐁당’(www.facebook.com/sourpongdang)도 생겼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동아사이언스 제공

체리향이 감도는 새콤달콤한 크릭을 식전주로 마셔 입맛을 돋우고, 치즈와 살라미 안주에 시큼하고 드라이한 아메리칸 와일드 에일을 즐긴 후 초콜릿이 느껴지는 플랜더스 레드 에일을 디저트 삼아 마무리. 이렇게 깔끔하고 속이 편할 수가 없다. 여기가 맥덕의 종착역인가. 엄마,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나요.

 


<’1일 1맥’ 추천맥주>
 

와일드웨이브 브루어리 제공
와일드웨이브 브루어리 제공

이름 : 설레임(Surleim)
도수 : 5.3 %


사우어 비어를 전문으로 양조하는 부산 와일드웨이브 브루잉의 첫 맥주. 감귤, 살구, 자두, 딸기, 블루베리 등 과일을 연상케 하는 향에 새콤함이 더해졌다.


맥주를 양조한 후 다시 한번 홉을 투입하는 과정(드라이호핑)을 통해 만들어진 풍성한 과일향이 젖산에서 나오는 신 맛과 균형 있게 어울린다.

 

 

※ 필자소개
황지혜. 비어포스트 에디터,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폭탄주와 함께 청춘을 보내다 이제는 돌아와 수제 맥주 앞에 선 한량한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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