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취가 너무 얕게 되면 환자가 수술 중 깨어날 수 있다. 너무 깊게 되면 심장발작, 합병증 등을 겪거나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따라서 마취의 깊이가 적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환자가 얼마나 깊게 마취가 됐는지 무선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회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팀은 국내 기업 케이헬쓰웨어와 공동으로 무선으로 마취의 깊이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마취심도계측기’를 개발했다고 9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반도체 학술대회 ‘국제고체회로설계학회(ISSCC)’에서 발표했다.
연구진의 마취심도계측기에는 실제 수술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초소형 근적외선 분광 센서가 탑재돼 있고 무선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해 간편하게 측정이 가능하다. 기존에도 비슷한 기술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모니터링 장치에 연결하기 위한 긴 전선이 필요해 수술 중 사용에 불편함이 있었다.
기존 기기로는 측정이 불가능했던 ‘케타민’ 등 약물에 대한 마취 깊이도 측정 가능하다. 실제로 연구진은 케타민 주입 후 15분간 마취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수술 중 전기 잡음을 유발하는 의료 기기나 삽관 등을 사용하는 중에도 신호가 왜곡되지 않았다.

마취심도계측기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마에 부착한 패치를 통해 뇌파 신호와 혈중 헤모글로빈(산소를 운반하는 혈액 성분)의 농도 데이터를 수집한다. 디지털 신호로 데이터가 무선으로 계측기 시스템에 전달되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마취의 깊이를 계산한다. AI는 ‘딥 러닝’ 기술로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통해 마취의 깊이와 뇌파,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훈련을 받았다.
유 교수는 “그동안 마취의 깊이를 측정하는 센서는 값비싼 해외 제품을 사용해야만 했는데, 국내 기술로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안전하게 마취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