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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를 일으키는 모호한 그림, 그 이유는 다 OOO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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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를 일으키는 모호한 그림, 그 이유는 다 OOO 때문!

2017.02.21 19:00

간단한 퀴즈 하나 풀고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그림 속에서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나요? 

 

‘산다라박 머리’를 한 여인이 거울을 보는 모습? 박쥐? 어린 아이가 안아달라고 하는 모습? 마주 보는 피터팬? 핼러윈데이에 자주 등장하는 호박 모양의 등(잭-오-랜턴, jack-o-lantern)?

 

로르샤흐 검사에 사용되는 10가지 그림 중 7번째 그림. 이 그림은 주로 피실험자의 삶 속에서 ‘여성과의 관계’나 ‘여성성’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카드로 쓰인다.  - 위키미디어 제공
로르샤흐 검사에 사용되는 10가지 그림 중 7번째 그림. 이 그림은 주로 피실험자의 삶 속에서 ‘여성과의 관계’나 ‘여성성’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카드로 쓰인다.  - 위키미디어 제공

이 그림은 ‘심리 X레이’라고 불리는, 투사검사용 문제 중 하나로 특별한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입니다. 투사검사란 개인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 중 하나로, 집-나무-사람 (HIP, House-Tree-Person Test) 검사가 대표적입니다. 피실험자에게 빈 종이를 주고, 거기에 집-나무-사람을 그리게 한 뒤 전문상담가가 해석을 더해 심리상담을 해 주는 원리죠.

 

앞서 살펴본 그림은 투사검사 중 하나인 ‘로르샤흐 검사 (Rorschach test, 줄여서 로샤 검사로도 불림)’에 사용하는 10가지 그림 중 7번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주로 피실험자의 삶 속에서 영향을 미쳤던 ‘여성과의 관계’나 ‘여성성’을 진단할 때 쓰입니다. ‘어머니 카드’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오늘은 로르샤흐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모호해서 더 의미있는 그림?

 

로르샤흐 검사와 같은 투사검사의 가장 큰 특징은 ‘(애매)모호함’ 입니다. 이런 검사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애매한 자극에 비춰지는 사람의 충동성이나 활동성, 성격 등을 관찰하기 위해 실시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헨리 머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사람들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자극을 접하면 이를 분명한 자극으로 인식하려고 하고, 이런 습성 때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피실험자의 내적 갈등이나 성격의 특성, 심리 상태가 강하게 반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르샤흐 검사는 1921년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가 설계한 심리검사입니다. 자신의 환자 405명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분석한 결과를 담아 자신의 책 ‘정신진단학’에 정리해 발표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모두 좌우대칭으로 된 잉크 얼룩이 있는 10장의 그림을 이용하며, 5장의 그림은 검정 잉크만으로, 2장의 그림은 검정 잉크와 빨강 잉크만으로, 나머지 3장의 그림은 다양한 색을 사용해 로르샤흐가 직접 손으로 그렸습니다.

 

이 검사는 1960년대 미국이나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심리검사로 꼽혔고, 후대 학자들의 여러 가지 해석이 붙어 각종 분야의 대표 심리검사로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그림에 따라 최대 300여 가지의 해석이 나오기도 해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심리학자들은 실험의 의미나 객관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2009년 위키피디아에 로르샤흐 검사의 전체 이미지와 일부 해석이 공개되면서, 일부 해석을 접한 피실험자는 검사 결과가 왜곡될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로르샤흐 검사의 ‘의미’를 되찾아 줄 연구 결과가 등장했습니다. 리차드 테일러 미국 오레건주립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로르샤흐 검사 그림 가장자리의 잉크 번짐에서 ‘프랙탈 구조’를 발견하고, 그림의 모호함과 복잡성을 수학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논문은 지난 2월 14일 플로스원 저널에 실렸습니다.

 

연구팀을 이끈 테일러 교수는 “솔직히 말해 이 그림 어디에도 박쥐도, 나비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그림을 보고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이건 그림 가장자리에 나타난 프랙탈 구조의 미묘한 차이가 우리 눈에 서로 다른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로르샤흐 검사 그림에서 나타나는 모호성은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이지요. 연구팀은 아래 그림처럼 앞서 살펴본 7번 그림의 가장자리에 변화를 준 비교 사진을 논문에 실어, 그 차이를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어떤 가요? 느낌이 다른 가요? 

그림 가장자리에 프랙탈 구조가 살아있는 왼쪽 그림과, 가장자리의 프랙탈 구조를 지운 오른쪽 그림. 차이가 느껴지는지?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그림 가장자리에 프랙탈 구조가 살아있는 왼쪽 그림과, 가장자리의 프랙탈 구조를 지운 오른쪽 그림. 차이가 느껴지는지?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테일러 교수는 오래 전부터 우리 눈이나 시각, 시신경, 인공망막 등을 ‘프랙탈’과 관련지어 연구해 왔습니다. 그는 프랙탈은 사람의 시각과 자연을 잇는 매개체라고 말합니다. 2015년에는 뉴런의 구조가 프랙탈 구조를 따른 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각 장애인의 치료를 돕는 카메라 형식의 인공망막 임플란트를 개발해 미국 특허를 받기도 했습니다.

 

● 차원이 남다른 로르샤흐 검사 그림들!

 

우리는 흔히 나와는 다른 우수성 또는 특별함을 표현할 때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합니다. 때론 끊임없이 독특한 발상을 이어가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정말 4차원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수학에서 말하는 차원은 어떤 의미일까요? 간단한 OX 퀴즈를 풀어 알아보겠습니다.

 

프랙탈의 창시자인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만델브로는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하우스도르프가 주장한 1.3과 같은 소수 차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프랙탈로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프랙탈 차원 또는 하우스도르프 차원이라고 불립니다. 아, 물론 점, 선, 면과 같이 n차원으로 설명가능한 정수 차원은 ‘공간’에 대한 개념이고, 앞으로 설명할 프랙탈 차원은 보다 상상할 수 없는 추상적인 학문의 개념입니다. 

프랙탈 차원을 구하는 공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구하고자 하는 차원을 D라고 할 때, rD=N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차원을 계산하려고 하는 물체의 각 면을 모두 r등분해서 생기는 닮은 도형의 개수(N)를 이용하면 됩니다. 여기에 로그(log)의 성질을 잘 알고 있다면, D=logN/logr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r등분을 해서 생긴 닮은 도형의 한 변의 길이가 ε라면, 이 공식은 다시 D=logN/log(1/ε)= - logN/logε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랙탈 도형은 그 특성상 아주 철저한 기준으로 나눠야 의미가 있습니다. 도형의 가장자리를 잘게 쪼갠다는 것 (나눈다는 것)은 수학에서는 ε값이 점점 0에 가까워지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연구팀은 로르샤흐 검사 이미지를 모두 고해상도로 스캔해서, 가장 먼저 그림과 배경을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림을 완벽하게 분리한 다음, 이를  유클리드 평면 위에 그리고 일정한 정사각형 격자로 쪼개, 그림이 몇 개의 사각형에 걸쳐 그려지는지를 계산했습니다.  

이 그림은 로르샤흐 검사에 사용하는 5번 그림.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박쥐, 나비, 나방과 같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연구팀은 이처럼 각 그림의 프랙탈 차원을 계산하기 위해 10가지 그림을 모두 유클리드 평면 위에 그리고 일정한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쪼개 각 그림이 몇 개의 사각형 위에 그려지는지 알아냈다..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이 그림은 로르샤흐 검사에 사용하는 5번 그림.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박쥐, 나비, 나방과 같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연구팀은 이처럼 각 그림의 프랙탈 차원을 계산하기 위해 10가지 그림을 모두 유클리드 평면 위에 그리고 일정한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쪼개 각 그림이 몇 개의 사각형 위에 그려지는지 알아냈다..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그 결과 로르샤흐 검사 10개 그림은 모두 1차원과 2차원 사이였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5번 그림은 1.23차원, 맨 처음 살펴본 7번 그림은 1.13차원이었습니다. 이때 프랙탈 차원이 낮은 그림일 수록 사람들은 같은 그림에서 더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 낮은 차원의 그림에서 더 다양한 모습이 보이나요?

연구팀은 프랙탈 차원이 낮을수록 해석이 다양해진다고 주장했다.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연구팀은 프랙탈 차원이 낮을수록 해석이 다양해진다고 주장했다. - Courtesy of Richard Taylor 제공

이 연구 결과가 그동안 심리학계에서 해석이 불분명해 환영받지 못했던 로르샤흐 검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로르샤흐 검사의 앞날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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