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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전문 번역가를 이길 수 있느냐’보다 중요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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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22일 21:00 프린트하기

아마도 이세돌 9단은 바둑에서 인공지능을 이겨 본 마지막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인공지능 알파고는 바둑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떡수’들을 던졌다. 프로 기사와 해설가들은 인공지능의 실수라며 열을 올렸다.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현장. - 구글 제공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현장. - 구글 제공

그러나 그 수들은 인공지능이 수백만, 수천만 건의 기보 데이터와 자체 대결 결과를 바탕으로 이끌어 낸 ‘묘수’였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바둑을 두어오며 발견한 정석의 틀을 불과 2년 간 바둑을 배운 알파고가 일순간에 깨버린 것이다. 바둑은 돌을 놓을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아 컴퓨터가 인간을 도저히 이기기 어려우리라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무참히 깨졌다.

 

체스와 퀴즈 대결에서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은 바둑에서도 인간을 꺾었고, 의사보다 정확하게 암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지능적으로 ‘뻥카’를 날리는 프로 포커 선수들을 물리쳤다. 인간만의 지극히 인간다운 영역에서는 컴퓨터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사람들의 희망에 불과한 것일까.

 

☞(관련 기사) 세계 최고의 포커 선수들, 인공지능 (AI) ‘타짜’에 20억원 털렸다!

 

 

● 번역은 아직 인간의 영역? 게임의 룰 불공정? 

 

최근 인간이 컴퓨터에 맞서 인간의 영역을 지켜낸 쾌거(?)가 있었다. 21일 한국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학교 주최로 세종대에서 열린 인간과 인공지능의 번역 대결에서 인간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전문 번역사들은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드는 한영 문장 번역 대결에서 구글과 네이버, 시스트란의 인공지능 번역기를 압도하는 성과를 내놓았다. 인공지능의 번역 상당수는 제대로 된 문장도 이루지 못 했다. 최근 딥 러닝과 인공신경망을 도입해 인공지능 번역 품질이 수직 상승했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언어의 번역은 컴퓨터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임을 재확인했다.

 

물론 승리라기엔 멋쩍은 부분도 있다. 네이버의 경우에는 인공신경망 기반 새 번역 서비스 ‘파파고’가 아닌 기존 통계 기반 번역을 거쳐 나온 문장이 답안지로 채택되었다. 문장 전체를 통째로 인식하는 인공신경망 기반 번역은 문구나 단어 단위로 번역하는 통계 기반 방식에 비해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네이버의 인공신경망 번역은 아직 200자 미만 문장에만 쓸 수 있는 베타 단계다. 통계 기반 방식을 쓴 네이버의 번역 결과는 당연히 훨씬 더 어색한 결과를 냈다.

 

※ 통계 기반 번역이란? 방대한 번역 데이터를 수집, 언어의 쓰임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번역하는 방법. 확률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표현을 골라 번역하므로 상대적으로 단어를 단순 번역해 조합하는 문구 기반 번역보다 품질이 높다.   

 

무엇보다 아직 인공지능이 번역 분야에서 사람 수준에 못 미침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어와 영어처럼 차이가 큰 언어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기업도 인공지능 번역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공언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필수적인 표현을 번역하며 사람을 보조하는 등의 역할에 일단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굳이 대결 이벤트를 열어 인간의 우위를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1일 국제통역번역협회 주최로 열린 인공지능과 인간 번역가의 번역 대결 결과
21일 국제통역번역협회 주최로 열린 인공지능과 인간 번역가의 번역 대결에서 번역가와 인공지능 번역기가 내놓은 번역 문장들

행사를 참관한 전문가들은 번역 분야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입을 모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인간의 번역 작업은 더 나아지고 더 편해질 수 있다. 사람은 번역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잠재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하루가 다르게 학습 속도 빨라지는 인공지능 번역

 

인간 번역가와 인공지능 번역기의 행복한 동거.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계속 발달해 더 자연스러운 번역 결과를 선보일 것이다. 인공신경망은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스스로 학습해가며 완벽한 번역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럼 인간은 나날이 똑똑해지는 인공지능 번역기를 그냥 편하게 부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지금은 우리가 인간의 영역을 확인했다며 안심하지만,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인공지능의 언어와 번역 능력이 완벽에 가까와질 때 우리는 도리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언어의 학습 과정과는 다르다. 인공신경망은 문장의 모든 요소를 잘게 나누어 알고리즘에 따라 분석한다. 여기에선 오직 수학과 확률만 따질 뿐이다. 인공지능이 - 고양이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  딥 러닝으로 고양이의 사진을 한없이 작은 부분들로 나누어 그 관계를 학습하며 고양이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구글의 인공지능이 인공신경망 방식으로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 문장 전체를 통째로 인식한다. - 구글 제공
구글의 인공지능이 인공신경망 방식으로 중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 문장 전체를 통째로 인식한다. - 구글 제공

구글은 비교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두 언어를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해 번역하게 하는 기술도 갖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 영어와 터키어 사이의 비교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가 부족한 한국어와 터키어도 번역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여러 언어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메타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내 언어를 학습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인간 외에 언어를 이해하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이 과정에서 인공신경망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번역 결과물을 내놓게 될 것이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 고유의 능력인 ‘언어’에 접근해 간다.

 

인공지능이 인간 못지 않게 언어를 이해하고 번역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수천년 전통의 바둑의 정석이 발견하지 못한 묘수를 시전한 알파고에 놀랐듯 ‘파파고 2050’ 버전에 충격을 받을 지 모른다. 

 

GIB 제공
GIB 제공

언어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렇다면 언어를 이해하는, 그러나 인간이 아닌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대로 언어가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이번 인공지능과의 번역 대결은 인간이 아직 고유의 영역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만간 우리가 인간성의 핵심이라 생각했던 것이 깨져 나갈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인간이 인공지능에 ‘승리’한 날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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