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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냄새?’, '흙내음?’… 헌책 냄새, 역사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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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09일 18:00 프린트하기

마티아 스틸릭 영국 런던대 교수가 영국 세인트폴대성당 렌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고서의 향을 맡고 있다. 스틸릭 교수팀은 책의 향기를 분석해, 책이 사라진 후에도 향기를 남기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 내셔널 트러스트 제공
마티아 스틸릭 영국 런던대 교수가 영국 세인트폴대성당 렌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고서의 향을 맡고 있다. 스틸릭 교수팀은 책의 향기를 분석해, 책이 사라진 후에도 향기를 남기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한다. - 내셔널 트러스트 제공

책 한권을 짚어들면 고유의 냄새가 먼저 다가온다. 헌책방 골목 전체엔 헌책 특유의 냄새가 가득 차 있고, 도서관이나 박물관엔 헌책 냄새가 먼저 방문객을 마중 나온다.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흙내음’, ‘곰팡이 냄새’ 등으로 가지각색이다.

 

영국 과학자들이 헌책 냄새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단어는 나무 냄새를 뜻하는 ‘우디(woody)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 버밍엄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100년 이상 된 고서들이 풍기는 냄새를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마티야 스틸릭 영국 런던대 지속가능유산연구소 교수팀은 ‘헌책 향 분석도구(Old book odor wheel)’를 개발, 책의 향기를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국제학술지 ‘헤리티지 사이언스(heritage science)’ 7일자에 발표했다. 책이 썩고 사라진 후에도 향기를 남겨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것이다.

 

스틸릭 교수는 “책 냄새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은 책과 독자, 책을 보유한 공간이 관람객과 처음으로 소통하는 창구”라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냄새를 이루는 화학물질들을 분석해 냄새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도서관과 박물관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고서의 냄새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책에서 ‘우디향’, 즉 나무 냄새가 난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스모키(훈제)향’, ‘흙내음’, ‘커피향’, ‘초콜릿향’, ‘바닐라 향’ 등이 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로 연구진은 책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관람객들이 평가한 냄새와 일치하는 화학적 성분들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본적으로 책을 구성하는 종이는 나무를 정제해 만들기 때문에 나무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또 종이의 성분인 ‘리그닌’, ‘셀룰로오스’ 등은 커피나 초콜릿에도 함유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 종이는 시간이 지나 천천히 썩어가는 과정에서 공기 중에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배출한다. 방향족 화합물인 ‘바닐린(Vanillin)’, ‘벤즈알데하이드(Benzaldehyde)’, ‘푸르푸랄(Furfural)’ 등으로 각각 바닐라 냄새, 아몬드 냄새, 단맛이나 빵 냄새 등을 낸다. 사람들이 헌책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들 화학물질이 가진 달달한 향 때문이다.

 

세실리카 연구원은 책 냄새를 구성하는 화학성분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 내셔널 트러스트 제공
뱀비브리 연구원은 책 냄새를 구성하는 화학성분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 내셔널 트러스트 제공

연구의 1저자인 세실리카 뱀비브리 박사과정 연구원(사진)은 “헌책 향 분석도구는 보존 전문가들이 책 등 전시품의 보존 상태를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책에서 우디향을 넘어 바닐라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책이 썩어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또 연구진은 여러 책의 향기를 분석한 빅데이터를 구축하면 책의 역사를 유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쇄기법의 변화로 인해 1850년을 전후로 생산된 책의 향기가 다르고, 책이 보관된 장소의 환경, 운송 경로에 따라 냄새가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중반 유행했던 표지가 가죽으로 된 고급 도서는 종이를 묶는 금속 고리가 녹슬며 배출하는 ‘헥사놀(Hexanol)’ 때문에 곰팡이 냄새가 난다.

 

이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인간의 감수성을 보존할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 특정 냄새를 만드는 일종의 ‘화학적 레시피’를 완성한다면 먼 훗날 ‘할머니가 부엌에서 빵을 굽는 냄새’와 같은 개개인의 추억까지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틸릭 교수는 “과학자들은 냄새 속 화학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은 잘 알지만, 그 성분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 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분석과 사람들의 평가를 병행하며 인간이 사랑한 냄새들을 역사적으로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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