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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향식연구 확대 운동은 이제 시작…과학자들 함께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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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17일 18:00 프린트하기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인터뷰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3월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국회청원을 진행하던 당시 받았던 우편을 바라보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3월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국회청원을 진행하던 당시 받았던 우편을 바라보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창의적 연구를 위해선 대형 국책과제 대신 자유공모과제를 늘려야 합니다.”


시작은 소박했다. 작년 6월 21일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글을 한편 올렸다. 연구비 예산구조를 바꿔달라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글이었다. 바싹 마른 건초더미에 불을 댕긴 것처럼 주변 연구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일었다. 다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었지만 앞장서 나서지 못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국회와 언론에서도 자료를 달라고 연락이 왔다. 조금 더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는 생각에 최근 십여 년간 국가연구개발(R&D) 예산 등 통계자료를 모았다. 서너 달 동안 이 일에만 몰두했다. 권유정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사무원이 조사를 도왔다.


모은 자료를 토대로 BRIC에 4편의 글을 올렸다. 문제점 지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주변 연구자들의 뜻을 모아 작년 9월 온라인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며칠 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정식으로 국회청원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연구자들에게 자필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보내달라고 했더니 우편이 학과 사무실로 쏟아졌다. 사흘 만에 494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국회에 제출한 뒤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 온라인 참여는 일주일을 더 열어뒀는데, 총 1498명이 참여했다.


●“대학의 순수연구 토대 무너진다”는 절박감

 
국회청원을 주도한 호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대 연건캠퍼스(대학로)를 찾았다. 그는 청원에 나선 이유가 ‘절박함’ 때문이었다고 했다.


“2010년 이후로 현장 연구자들의 연구비가 계속 줄어드는 거예요. 대형 국책과제로 돈이 쏠리고 소형 자유공모과제의 비중은 줄어들어서 그래요. 어느 순간 ‘이대로 가면 대학의 순수연구 토대가 무너지겠구나’ 하는 절박감이 들었어요.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비에 목매느라 독창성 있는 연구를 못하는 걸 보는 게 제일 속상했어요.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면 다음에 연구비를 못 받을지도 모르겠단 걱정도 있긴 했는데 제가 정년이 6년밖에 안 남아서, 그렇게 아쉬울 나이는 지났으니 해보자고 했죠.”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모아 국회청원을 제기한 건 ‘자유공모연구 비중증가’ 사례가 처음이다. - 플리커(Alain Seguin) 제공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모아 국회청원을 제기한 건 ‘자유공모연구 비중증가’ 사례가 처음이다. - 플리커(Alain Seguin) 제공

국책과제는 정부가 연구주제를 먼저 정한 뒤 이를 수행할 연구자를 찾는 과제를 말한다. 연구자들은 ‘하향식(Top-Down)’ 과제라고 부른다. 반면 자유공모과제는 연구자들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제안하면 정부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상향식(Bottom-Up)’ 과제라고 부른다. 선진국을 쫓아가던 개발도상국 시절엔 하향식이 맞았을지 몰라도,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로 선진국과 경쟁해야 하는 지금 시대엔 상향식 연구가 늘어야한다는 주장이 연구계 일각에서 나온다.  


2016년 R&D 예산 중 순수연구개발비는 6조8000억 원, 이중 자유공모연구비는 1조1000억 원이었다. 호 교수는 “최근 수년 새 전체 R&D 예산은 늘었지만 이중 상당수는 대형국책과제 연구비였고, 자유공모연구비의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국책과제가 늘어난 탓에 ‘셀프수주’ 등 불공정 관행이 많아졌다는 의심도 있다(※관련기사). 국책과제는 공무원이 기획을 주도하므로 공무원과 가까운 일부 연구자들이 특혜를 볼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다. 호 교수는 “자유공모과제에선 동료평가를 통해 과제를 선정하므로 연구력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거고 지금보다 공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학자들의 첫 국회청원, 채택율 1% 바늘구멍 뚫다


이 같은 연구자들의 의견이 모여 ‘자유공모연구 비중 증가’ 청원이 발의됐다.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모아 국회청원까지 제기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 30년 동안 청원이 채택된 확률은 1%에 불과했다(총 3399건 중 42건). 게다가 과학기술 분야 상임위에서 청원이 채택된 경우는 전무했다.


채택율 1%의 바늘구멍을 뚫고 ‘자유공모연구 비중 증가’ 청원은 지난 1월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됐다(※청원 보기). 채택된 청원은 행정부가 따라야 할 효력을 가진다. (청원 이전에 계획된 사안이긴 하지만) 올해 정부예산에서 자유공모연구는 작년보다 1600억 원이 늘어난 1조2600억 원으로 결정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에 1조5000억 원까지 예산을 늘리고, 그 뒤로도 자유공모연구 예산을 점차 늘리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연구자 주도의 상향식 연구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관련기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청원은 성공했지만 호 교수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순수연구개발비 중 국책과제와 자유공모과제의 비율을 현재 ‘80:20’ 수준에서 ‘40:60’까지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향후 5년간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방향을 결정하는 ‘4차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2018년~2022년)’을 세울 때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 교수는 최근 분자세포생물학회와 기초과학학회협의체에서 ‘자유공모연구 비중 증가’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이제 내 개인 이름은 잊혀지고 과학계 집단의 이름으로 운동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 세금으로 연구하는 건데 국가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해야 되냐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요, 전 국민이 과학자들한테 진짜 바라는 게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고 봐요. 그만큼 혁신적이고 위대한 연구를 해내는 것…, 우리 국민들은 학문에 대한 기대가 높아요. 그걸 위해서라도 자유공모연구는 필요합니다.”

 


변지민 기자

h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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