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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 서점: 인류의 강을 건너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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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 서점: 인류의 강을 건너는 다리

2017.04.22 18:00

책으로 숲을 이루고 있어서 서림(書林)이라고도 일컫는 서점(書店)은 말 그대로 ‘책 가게’다. 과일 가게, 빵 가게, 옷 가게와 마찬가지로 서점은 가게라는 공간에서 특정 상품을 판매하는 전문 상점이다. 생선이나 두릅 같은 자연 상태의 생물이나 수석(水石) 같은 무기물 자체를 판매하는 상점도 있지만, 세상의 많은 상점은 주로 인간의 손을 거쳐 생산된 상품을 판매한다. 농부가 재배한 곡식으로 빵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빵 가게이듯 말이다. 그중 상당수는 의식주(衣食住)와 관련된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가게다. 생활인들의 필요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GIB 제공
GIB 제공

반면에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니 책은 생활필수품은 아니다. 대신에 책은 우리의 ‘문화생활’에 밀접하기에 ‘문화상품’이라고 부른다. 생필품은 아니어도 누군가는 중요하게 여기는 책들을 다양하게 갖춰 판매하는 곳이 서점이다. 그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책은 언어나 이미지로 나타낸 지적 활동을 묶어놓은 결과물이다. 그러기에 모든 책에는 지은이가 있다. 그의 원고는 출판사의 편집자를 통해 정리되고 북 디자이너의 손에서 책의 꼴을 갖춰, 제지 회사에서 구입한 종이에 인쇄되고 제본되어 책으로 완성된다. 그러고는 서점에 유통돼 독자의 손과 눈에 닿는다.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책’은 인류의 지성과 감성을 진화시켜왔다. 그 두 주인공은 저술가와 독자이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경구의 가교 역할은, 즉 사람과 책, 책과 사람 사이에는 출판사와 서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예전에는 출판사와 서점이 한 몸인 경우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위층은 출판사, 1층은 서점을 운영하는 오래된 사업체가 적지 않단다. 그러나 엄연히 출판사는 책의 제조업체이고 서점은 책의 유통업체이기에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는 각각 분화되어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또한 서점은 갈수록 기업화되어 전국 각지에 지점을 확장해가는 추세이며, 19년 전인 1998년부터는 온라인 서점까지 등장해 이미 스마트폰 속에까지 들어와 있을뿐더러 오프라인 전체 서점 매출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니 경쟁력이 약한 동네 서점의 폐업률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년 전에 5,300여 곳이었던 전국 서점이 최근에는 1,500여 곳으로 줄었다니, 그사이에 10곳 중 7곳이나 문을 닫았다는 말이다. 이런 추세라면 훗날엔 서점 자체가 서적 박물관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청계천 등지에 간신히 남아 있는 몇몇 헌책방은 그 자체가 쪼끄만 박물관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일부 지역에서 ‘독립’ 서점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서점+찻집’도 있고, 치맥을 패러디해 ‘책맥’(맥주를 마시며 구입한 책을 읽는)하는 ‘서점+맥줏집’도 생겨나 ‘혼술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시집만 판매하는 서점도 있고, 책방 주인장이 읽은 책들로만 구성해 조언을 덧붙여 판매하는 서점도 등장해 단골손님을 확장하고 있다.

 

GIB 제공
GIB 제공

대학 시절 얘기지만 내게도 단골 서점이 있었다. 매주 한 번 이상은 들렀던 그곳은 종종 나의 약속 장소였다. 나는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새로 나온 시집들을 뒤적이다가 마음이 끌리면 계산대로 가져갔지만 때때로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오래전에 발간되어 옛 정가가 붙어 있어 반값밖에 안 되는 시집을 골랐다. 그러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서점을 나와서는 아낀 돈으로 친구와 함께 그야말로 서서 마시는 값싼 선술집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 서점 입장에서는 오래된 재고 책들을 반품하는 수고를 덜어서 좋았을 테다. 그러나 그 서점은 그 후 10년쯤 지나서 폐업하고 말았다.

 

서점은 책의 집이자 미지의 세계로 입장하는 관문이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간 독자는 낯선 별에 도착한 어린 왕자의 질문도 받고, 빅뱅 이론에 근거한 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며 아득한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또한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땅바닥에 제 이름을 쓰고 가만히 흙으로 덮은, 별이 된 시인의 감성을 조용히 뒤따라가 보기도 하고, 소나기에 젖었던 옷을 입힌 채 묻어달라던 소녀의 유언을 읽으며 코끝을 훔치기도 한다.


왜 작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여러 인생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유한한 인생의 여정에서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일 테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끔 양쪽을 잇는 다리로 존재하는 자리가 서점일 테다. 그러기에 서점은 세상만사가 빼곡히 모여 있는 또 다른 세계인 셈이다. 그 세계에서 삶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은 독서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자만의 몫이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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