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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3] 묘소: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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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3] 묘소: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

2017.04.29 18:00

한식(寒食) 열흘 후였던 지난주 일요일에 선산에 다녀왔다. 조상께 성묘하고 묘지 잔디에 두루 모여 앉아 두어 시간 동안 다과도 즐기고 담소를 나누기에는 한식날인 4월 6일 전후의 일요일은 보통은 자못 쌀쌀하기에 우리 일가는 4월 중순쯤 모인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을 뜻하는 선산(先山)은 과거 어느 때 조상 중 누군가가 혈연적 공공성을 위해 집안 공동체에 기증한 경우가 많았을 듯하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공익을 위한 재단의 부동산 같은 성격일 것이다. 그러기에 여러 대를 이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선산은 특정인에게 사유화되지 않고 문중 전체의 소유로서 대대손손 이어진다.

 

필자 선친의 묘소 - 윤병무 제공
필자 선친의 묘소 - 윤병무 제공

이러한 장묘 문화는 평지보다 산이 많아 그곳 땅속에 고인을 모시는 매장(埋葬) 양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 사회에서도 매장을 했는데, 과거에는 교회의 뒤뜰에 가문이나 가족 단위의 집단 묘지를 만들었다. 그곳에 돌문으로 이어지는 지하실을 만들어 각각의 석관(石棺)에 고인을 안치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결말에서 로미오가 독약을 마신 직후 절망하는 줄리엣도 자살을 하는데 그 공간이 바로 서양식 집단 묘지다. 오늘날 서양의 장묘 문화도 과거와 대동소이하다. 보통 그들은 마을이나 도시 단위로 집단 묘지를 운영하는데, 누구든 고인이 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가족묘 단위의 집단 묘지에 안장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는 마을 어귀에 집단 묘지를 마련하여 망인의 공간을 삶의 공간과 떼놓지 않는다. 도시의 공원묘지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가족이 나들이 가듯 꽃을 들고 망인을 찾아간다.


그밖에도 인류는 다양한 장례 방식으로 고인과 작별했다. 매장만큼 보편적인 장례법은 화장(火葬)인데 불교의 진원지인 인도에서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일반화되었다. 또한 현대에 들어와 유럽 중심으로 자리 잡은 수목장(Natural Burials, 樹木葬)은 화장과 매장이 결합된 방식이다. 이는 주검을 화장한 뒤 그 골회(骨灰)를 나무뿌리 주변에 묻는 자연 친화적 장례법인데, 인구 증가에 따른 묘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구촌 일부에서는 주검을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 놓아두어 자연적으로 소실시키는 풍장(風葬)도 있고, 주검을 바다나 강에 가라앉히는 수장(水葬) 문화도 남아 있다. 화장 후 뼛가루를 강물에 뿌리는 오늘날의 습속은 그 변형인 듯하다. 또한 주검을 토막 내 독수리들에게 던져줌으로써 고인의 영혼이 하늘에 닿기를 기원하는 조장(鳥葬)은 네팔의 티베트인들의 장례법이다.


집안의 장남이었던 나의 선친은 봄가을이면 종종 당신의 선친 묘소를 찾았다. 그곳은 내게 13대 조부가 계신 선산은 아니었지만, 시내버스를 타면 반시간이면 닿는 종점까지 가서 다시 완만한 산길을 1시간쯤 걸어 올라가면 당도하는 산속에 있었다(훗날 할머니께서도 별세하시어 두 분의 합장을 위해 선산으로 이장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일요일이면 가장을 따라 소풍을 가듯 종종 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그 나들이가 소풍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매번 이른 아침에 어머니께서 간장 양념에 재놓은 불고기와 취사도구를 륙색에 담아 둘러매고 갔기 때문이다. 당시엔 젊으셨던 나의 선친은 막내인 네다섯 살배기 나까지 업고 가느라고 땀깨나 흘리셨던 기억의 편린이 밤하늘의 아스라한 별빛처럼 내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맛! 큰 바위 아래 숯불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익은, 달달하고 뜨거운 불고기 맛은 그 후 지금까지 어디서도 다시 만날 수 없다.

 

묘소 잔디에 핀 제비꽃 - 윤병무 제공
묘소 잔디에 핀 제비꽃 - 윤병무 제공

넉넉지 않은 불고기는 자식들에게 양보하시고 정작 당신은 막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으시고는 양파나 당근에 젓가락을 가져가셨던 아버지께서도 작고하시어 당신의 부모 묘소 바로 아래에 묻히신 지 벌써 13년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 같은 효자도 아니거니와 선산에 인접한 곳에서 생활하지도 않아 선친만큼 자주 성묘를 하지 못한다. 고작 1년에 네 번쯤 어머니를 모시고 형과 함께 북어나 마른오징어 한 마리를 막걸리 잔 옆에 나란히 제단에 올리고 천천히 재배(再拜)할 따름이다. 그래도 아버지의 묘소에 가면 보랏빛 제비꽃에 내려앉은 봄볕이 내 머리도 가만히 쓰다듬는다.


훗날, 그곳은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묘소는 나의 증조부모부터 시작해 조부모 네 형제 내외분이 줄지어 자리 잡은 산등성이의 끝자락이어서 더 이상의 묘지 공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부모님 곁에 함께 있고 싶은 우리 형제의 마음이 같아서 형과 나는 몇 해 전에 합의했다. 언젠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 그리고 우리 차례가 오면 합장한 부모님 묘소 봉분 옆에 한두 뼘 크기의 자리를 각각 마련하여 화장한 뽀얀 뼛가루로 묻히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뜻이 대대로 이어진다면 아버지 묘소의 여분이 여러 대의 후손까지 묘소로 활용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한결 가븨얍게 아버지 등에 다시 업힐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히 흐뭇하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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