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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⑦ 할머니, 할아버지의 날은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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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07일 10:3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한국은 조부모의 날이 없는 몇 안되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2. 조부모의 양육 보조는 오랜 인류학적 진화의 산물이다.
3. 그러나 조부모 양육의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4. 조부모 단독 위탁 양육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O씨의 유년기는 복잡했습니다. 아버지는 무려 네 번 결혼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번째 아내였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었죠. O씨가 두 살 무렵, 부모는 이혼합니다. 일곱살이 될 무렵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별거하고 나중에 결국 이혼합니다. O씨는 외할머니에게 보내 졌고, 이후 어른이 될 때까지 줄곧 할머니 품에서 자라게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날?


곧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많은 아이들은 카네이션을 접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릴 것입니다. ‘어머니날’은 세계적인 국경일인데, 미국, 일본을 포함하여 아주 많은 나라에서 5월 초의 하루를 정해 어머니날(Mother’s day)로 기념하고 있죠. 대개는 미국처럼 5월의 두번째 일요일에 몰려 있습니다. 어머니날의 기원이, 약 100여년전 앤 자비스라는 미국 여성을 기리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나라는 아버지날(Father’s day)을 따로 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원래 어머니날 밖에는 없었습니다. 1956년에 제정된 어머니날이, 1973년 ‘어버이날’로 바꾸면서 ‘아버지’를 슬쩍 끼워 넣었죠. 아버지를 위한 날을 하나 만들어주어도 좋았을 텐데요. 아무튼 우리나라처럼 하루에 ‘몰아서’, 어버이날로 기념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날은 어떨까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조부모의 날(Grandparents’ day)을 따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초반 마리안 맥퀘이드는 미국에서 조부모의 날 제정 캠페인을 벌였는데, 결국 1978년 연방 정부 차원에서 노동절 다음 일요일을 ‘조부모의 날’로 선포하면서 공식화됩니다. 그리고 많은 주요 국가에서 잇달아 조부모의 날을 제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날이 없습니다. 그냥 어버이날에 슬쩍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감사하자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죠.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일입니다.

 

조부모의 날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낸 카드 - J E Theriot(F) 제공
조부모의 날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낸 카드 - J E Theriot(F) 제공

할머니 양육의 진화


할머니의 양육 참여라는 인류학적 관습을 ‘지속 양육 가설’이라고 합니다. 아기는 어머니 외에도 대행 부모, 특히 할머니의 공동 양육을 받을 때,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할머니가 같이 키운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영양 상태도 양호했고 생존율도 더 높았죠. 또다른 연구에 의하면,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동일하게 아기의 생존 및 발달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동 양육의 기반 내에서만 그렇습니다.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진화적인 맥락에서 보면 아마 어머니, 외할머니, 친할머니, 기타 가족 순서로 양육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친족 집단, 즉 마을 전체가 같이 키우는 것입니다. 전적인 할머니의 단독 양육은, 전통 사회에서 거의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베트남 흐몽족(Black H
베트남 흐몽족(Black H'mong)의 할머니, 딸, 손주. 할머니의 양육 보조는 인류의 오랜 전통이다. 할머니의 공동 양육은, 진화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적응적 이득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 Hanay(W) 제공

심지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가, 바로 할머니 양육에 기인한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오래 사는 할머니가 손주에게 적응적 이득을 주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보다 장수하는 여성의 유전자가 선택되었다는 것이죠. 논란이 분분한 가설이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긴 노년기가 가지는 진화적인 목적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실 60세 이후는 퇴행이 지속되는 비기능적인 기간이며, 단지 종결까지 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노년기가 존재하는 것일 수 있죠. 하지만 노년기도 자연선택에 의해서 선택된, 즉 적합적 이득을 위한 기간이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삽니다. 다른 포유류는 대개 마지막 출산 이후, 수명의 10%만 더 살고 사망하죠. 그러나 인간의 여성은 마지막 출산 이후에도 전체 수명의 약 1/3을 더 살아갑니다. 잠비아의 2000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한 25년 간의 종적 연구에 의하면, 할머니와 같이 사는 아이는 보다 양호한 영양상태와 높은 생존 확률을 보였습니다. 할머니 양육은 인류의 오랜 진화적 유산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아이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치솟는 이혼율과 십대 임신, 약물 남용 등의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서, 조손 가정의 비율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미 70년대 초반 무려 3%의 가구가 조손 가정이었는데, 이러한 추세는 갈수록 심각해지죠. 현재는 7% 이상의 아이들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1995년 엄밀한 의미의 조손 가정, 즉 부모 없이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가정의 비율은 겨우 0.1%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기준으로 조손 가정의 비율은 0.7%에 이릅니다(서울 기준).


그런데 상당수의 조손 가정은 건강한 양육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할머니 양육 가설은, 어디까지나 보조 양육자로 머무를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할머니의 단독 위탁 양육처럼, 할머니의 양육 참여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적당한 수준으로 즐겁게 손주를 돌볼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조손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빈곤입니다. 만혼이 일반적이므로, 조손의 연령차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적절한 정서적, 신체적 자극을 제공하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동부양강제법을 제정하여,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습니다.

 


할머니가 키워도 괜찮아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아서는 곤란합니다.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손주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말 많습니다. 보통 가정에서도 할머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주 양육을 보조하고 있죠. 부모 은혜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앞서 말한 O씨의 유년기는 누가 봐도 불행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O씨는 조부모의 품에서 아주 건강하고 명랑하게 성장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죠. 그리고 주 상원의원을 거쳐서 연방 정부 상원의원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제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죠. 임기 첫 해에는 노벨평화상도 수상합니다.


네. O씨는 바로 버락 오바마입니다. 오바마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을 외조부모와 보냈습니다. 전형적인 조손 가정이죠. 그래서 외할머니는 오바마에게 ‘어머니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심지어 대선 며칠 전에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려 이틀동안 유세를 중단하고 하와이로 가서 병문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손주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생 시절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와 그의 외할아버지 스탠리 던햄(Stanley Dunham),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Madelyn Dunham). 버락 오마바는 조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올바른 교육을 받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 pixabay 제공
학생 시절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와 그의 외할아버지 스탠리 던햄(Stanley Dunham),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Madelyn Dunham). 버락 오마바는 조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올바른 교육을 받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 pixabay 제공

아마 조손 가정은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가족 와해의 흐름을 막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 보입니다. 차선책으로 조부모 양육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또한 조손 가정의 아이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부모 가정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어버이날에 함께 뭉뚱그리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적으로 효를 중시한 우리 나라에 조부모의 날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뭐, 당장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만. 아쉬운 대로 올해 5월 8일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Cartwright, J., 2008.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Cambridge, Mass.: MIT Press.
"Marian McQuade; Pushed for Grandparents Day". The Washington Post. 2008-10-01
Nicholas K. Geranios (Associated Press) (June 17, 2007), "Father's Day – The un-Spokane history of Father's Day", HamptonRoads.com
Lois M. Collins (6 May 2014). "Mother's Day 100-year history a colorful tale of love, anger and civic unrest". DeseretNews.com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제27619호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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