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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4] 미용실과 이발소: 소원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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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4] 미용실과 이발소: 소원하는 집

2017.05.06 18:00

미용소, 미장원, 머리방, 헤어숍으로도 불리는 미용실은 주로 헤어스타일을 꾸며주는 전문 업소다. 그곳은 과거에는 여성들만 이용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전동 바리캉으로 짧게 깎는 남성 머리 모양이 유행하자, 가위와 수동 바리캉만을 갖춘 이발소를 등진 남자들도 미용실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두발 미용업계를 대폭 넓혀갔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만 이용하는 이발소는 설상가상으로 한때 밀실에서 퇴폐 영업을 하는 일부 업소들이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오해의 수난을 겪다가 점차 퇴색하게 되었다. 나 역시 지난 9년간 매달 단골로 찾아가던 동네 이발소에서 발길을 돌려 석 달 전부터는 한동네의 7000원짜리 남성 전문 미용실로 향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연만하신 이발사께서 눈이 어두워지셨는지 9년간 내 두발을 만져오신 감각을 잃어버리고 두 번이나 모양을 이상하게 만드신 것이었다. 그러니 이발사께는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거울 앞에서 자꾸 좌우로 고갯짓을 해보는 나로서는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pixabay 제공
pixabay 제공

우리나라 미용실의 역사는 100년쯤 된다. 1920년 창덕궁 앞 운니동 87번지에 첫 미용실 ‘경성 미용원’이 생긴 이래 우리 여성들에게도 단발머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1933년에 일본에서 미용 기술을 배워서 귀국한 오엽주라는 여성 미용사가 화신백화점에 미용실을 개업해 파마를 유행시켰다. 당시에는 전기로 머리카락을 지져 모양을 낸다고 해서 전발(電髮)이라고 불렀단다. 광복 후에는 여러 헤어스타일이 확대돼 서울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미용실이 차려졌다. 이후 한국전쟁 직후에 158개였던 서울의 미용실이 6년 후인 1959년에는 1,225개로 대폭 늘어났다. 여성의 문화생활이 확대된 사회 현상이었다.


반면 국내 최초의 이발소는 1901년에 유양호 씨가 인사동에 개업한 ‘동흥이발소’였다. 고종의 단발령이 떨어진 지 6년이나 지난 후였다. 개화의 일환으로 내려진 단발령은 우리 풍속의 가치관에 대립되어 자살까지 하는 등 백성의 반발이 커지자 공포 4년 만에 취소되었기에 이발소의 개업도 다소 늦어졌을 것이다. 그런 백성의 심경을 반영하듯 당시의 이발소는 두발 미용보다는 상투를 잘라놓고 산발한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찾아오거나 두발 관리가 불편해 아예 삭발하려고 방문한 평민이 많았다. 반대로 단발령의 취소로 다시 상투를 틀려는데 두발 길이가 짧아 누군가가 상투를 짜줘야 하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그 바람에 이발사는 이발소 입구에 “상투 짜줌, 배코도 침”이라고 광고 문구를 써 붙여놓았다. 점잖 빼는 양반들은 일본인 이발사를 집으로 불러 머리를 맡겼다.


아마도 지금 40대 중후반 이상의 남성이라면 자신의 유년기에 이발소마다 벽면에 걸려 있던 액자 사진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 액자는 보통은 세 개쯤이었는데, 간혹 시내버스 운전석 위에도 걸려 있던, 사진 하단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손글씨로 쓰여 있던 레이놀즈의 그림 「어린 사무엘」이 하나고, 열 마리쯤 되는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어미 돼지 가족 그림이 또 하나였다. 그 ‘평온’과 ‘풍요’를 소망하는 이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박한 서민 가장(家長)들의 꿈이다. 그리고 내가 난생처음으로 읽은 시(詩)는 세 번째 액자 속에 있었다. 밀레의 「만종」 같은 그림 위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시 「삶」이 그것이다. 어린 나는 그 글귀가 시인지도 몰랐을뿐더러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받침이 복잡한 ‘삶’이라는 낱말을 처음 마주했던 것이다. 그 시만큼은 춘하추동 여러 해 동안 이발소를 드나들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저절로 외워졌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이발소는 전국 남성들의 유일한 문학 학교이기도 했다.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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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세 번 방문한 우리 동네 미용실의 벽에는 TV가 높이 걸려 있다. 그러나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어떤 손님도 이젠 그 영상조차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손바닥 크기의 작은 화면에 하나같이 열중해 있다. 오늘날의 우리는 전철에서든, 카페에서든, 미용실에서든, 혼자 있을 때면 어디에서든 자기가 열어놓은 액정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놓고 있다. 그렇게 자기만의 공간에 빠져 실제 공간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삶’이라는 실제 공간에서는 20년 경력의 활달한 두 미용사는 흰 가운을 입고 앉아 있는 어린 손님이 지루해 할까봐 웃으며 자꾸 말을 건다. 미용술이 좋아서인지 후미진 데 간판을 달았음에도 그곳은 방문할 때마다 서너 순서 뒤에나 내 차례가 올 정도로 붐비지만, 피로감을 드러내지 않는 두 미용사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유쾌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그곳 손님 중 가장 연만한 부류일 내게도 마찬가지다. 짬이 안 나 점심도 굶고 일하는 미용사는 어디에서 그렇게 기운이 나는지 웃으며 내게도 이렇게 말한다. “오늘처럼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는 정말 출근하기 싫더라고요.” 미용의 공간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푸시킨 시의 액자는 미용 전문인의 ‘삶’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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