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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이후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정신건강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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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11일 17:00 프린트하기

5월 6일부터 강원도 강릉, 삼척 및 경상북도 상주 일대에 일어난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수백 헥타르의 임야가 소실되고, 상당수의 민가가 전소되었습니다. 불길을 잡으려던 산림청 소속의 헬기 정비사 분은 비상착륙 중에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산불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 수많은 이재민과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다행히 9일 현재, 산림청에서는 산불이 모두 진화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종종 산불은 진화된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산불이 잡혔다고 해도, 재난 극복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산불을 경험한 피해자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금새 잡히지 않습니다.


호주는 건조한 기후와 광대한 초원 등으로 인해서 큰 산불(Bushfire)이 많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2009년 2월 초, 이른바 검은 토요일의 산불(Black Saturday bushfires)이 빅토리아 주를 덮쳤습니다. 수천명을 긴급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73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무려 45만 헥타르의 산과 들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3월 중순이 되어서야 겨우 꺼졌죠. 지금도 그 지역에 가면, 검게 그을린 산불의 흔적이 곳곳에 있죠. 
 

산불은 넓은 지역에서 장기간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종종 마을 전체가 타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지역 사회에 대규모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 flickr 제공
산불은 넓은 지역에서 장기간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종종 마을 전체가 타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지역 사회에 대규모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 flickr 제공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재난 심리 지원도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호주 심리학회에서 발표한 산불 트라우마 회복 지침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산불의 영향


산불로 인해서 살던 집이나 마을을 잃는 것은 아주 끔찍한 경험입니다. 보통 산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위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곤 합니다. 산불을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과중한 스트레스 하에서 우리는 판단력을 잃고,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곤 하죠.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당장의 재난 위험에서 벗어나고, 보다 빠른 회복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산불에 대한 3단계 심리적 대처법


1단계, 어려움을 예상하기


보통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 처해도, 자신이 아주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스트레스 따위는 별로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인간은 스트레스 하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불안은 다양한 신체적 반응을 유발하는데,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안절부절 못하고 산만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신체적 반응은 다시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키죠. 또한 스트레스가 유발한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떨쳐 버리기 어렵습니다. 머리 속에 가득한 파국적 상황을 끊임없이 반추하게 되는데, 이는 재난에 대한 잘못된 대처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나는 재난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대처할 것이다’라고 장담하는 것보다는, ‘나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는 정도라면 훨씬 능독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단계,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식별하기


앞서 말한대로, 고도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의 몸은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에 압도당하지 말고, 이를 일단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알지 못하면, 조절할 수도 없습니다.


아래는 불안이 닥쳤을 때, 경험하는 흔한 정서적, 인지적 반응입니다. ‘내가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얼른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통제력을 상당히 되찾을 수 있습니다.


- 나는 이겨낼 수 없을 거야.
-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거야.
- 나는 너무 두려워.
-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 우리는 곧 죽고 말 거야.
- 산불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나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나 기분이 든다고 해서, 자신을 탓해서는 곤란합니다. 산불 앞에서도 고요한 평정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검은 토요일의 산불이 진화된 3개월 후, 호주 CSIRO 산불 통합 연구 센터에서 촬영한 피해 지역의 사진. 그 피해는 아주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다. - Nick Pitsas, CSIRO(W) 제공
검은 토요일의 산불이 진화된 3개월 후, 호주 CSIRO 산불 통합 연구 센터에서 촬영한 피해 지역의 사진. 그 피해는 아주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다. - Nick Pitsas, CSIRO(W) 제공

3단계, 호흡법 및 내적 대화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기


일단 불안이 촉발한 감정 및 생각의 변화를 인식했다면, 이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호흡 조절과 내적 대화가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으면, 다른 상황에 대한 통제도 보다 용이해 집니다.


일단 천천히 숨을 쉬면서, 긴장한 몸을 진정시킵니다. 마음이 정돈될 때까지, 숨쉬기에 집중합니다. 가능하면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도록 숨 자체에 호흡을 내맡깁니다. 숨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숨을 쉬는 것이죠.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과 이미지를 보다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봅니다. ‘그래. 좋아! 나는 해결할 수 있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너무 불안할 필요는 없지’ 라는 식이죠. 이미 일어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잊도록 노력합니다.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좋습니다. 
 

 

산불을 겪은 아이를 위한 조언


아이들도 산불로 인해서 집을 잃거나, 살던 곳에서 소개될 수 있습니다. 산불에 대해서 소문을 듣거나 뉴스를 보고 크게 염려하는 아이들도 있죠.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조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산불을 겪은 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반응


- 퇴행적 행동, 즉 원래 나이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한다.
- 악몽
- 혼자 자려고 하지 않거나, 아예 잠자기를 꺼리는 행동
- 짜증, 분노, 떼쓰기
- 음식 투정
- 부모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기
- 학교 거부 혹은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양상

 


산불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돕는 방법


산불이 진화된 후에도 아이들은 안정과 안심, 지지가 필요합니다. 즉 ‘지금 산불이 다 꺼졌고, 이제 안전하다. 부모가 늘 곁에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꼭 껴안거나 토닥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종종 아이들은 말보다는 놀이를 통해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같이 놀아줄 수 있다면 아주 좋습니다. 재난 직후에는 부모에게 의존적인 행동을 보여도 허용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이나 식사 예절, 통학 재개 등에 필요한 훈육은 차차 해도 늦지 않습니다.


산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줍니다. 물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죠. 특히 어린 아이에게는 산불에 대한 ‘사실’보다는 ‘안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경청해주고, 무엇을 알고 싶은 지 알아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산불에 대한 미디어 보도에 너무 노출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산불과 관련된 영상을 보면서, 트라우마를 재경험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적절하게 차단해 줍니다. 특히 어른들이 산불에 대해서 걱정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부터 산불이 일으킨 상황을 얼른 받아들이고 냉정을 되찾는 것입니다. 건강한 어른이 아이들도 건강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대개의 아이들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입니다.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트라우마는 점점 누그러집니다. 그러나 만약에 아이들이 공격적인 분노 폭발을 보이거나, 학교에서의 지속적인 말썽, 산불에 대한 집착, 심각한 정서적 불안을 보인다면 소아정신과를 찾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산불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수많은 이재민의 신속한 회복을 기원합니다.

 


※ 참고문헌
강석훈 등., 2015. 재난과 정신건강, 서울 : 학지사. [http://www.riss.kr/link?id=M13771384]
APS., Bushfires, Psychocological preparedness can save your life. [https://www.psychology.org.au/Assets/Files/15APS-PI-BPP-P1-Bushfires.pdf]
APS., Helping children who have been affected by bushfires. [https://www.psychology.org.au/Assets/Files/Guidelines-Bushfires-Children.pdf]
재난정신건강 정보센터. [http://www.traumainfo.org]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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