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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동아시아 남녀불평등의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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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16일 17:00 프린트하기

여자와 소인만은 다루기 힘들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하느니.
- 공자, ‘논어’ 양화편에서

    
선거가 재미있으려면 1위와 2위의 격차가 큰 데서 출발해 점점 차이가 좁혀져 투표일엔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식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이번 대선은 거꾸로 가는 바람에 영 싱거웠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다소 엉뚱한 데서 나왔다.


한 후보가 방송에서 “설거지는 여자의 일로 하늘이 정해놓은 것”이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돼 패러디 문구까지 돌았다. 남녀차별이라는 반발에 이 후보는 “전업주부의 경우”라며 “맞벌이 가정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발 물러섰다. 문득 “바깥일도 남자의 일로 하늘이 정해놓은 것”이라며 작금의 맞벌이 세태를 비판해야 일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남녀차별이야 동서고금에 보편적인 현상 아닌가?’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사회경제적 지표가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사회에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이 남아있다 보니 OECD 나라들 가운데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의 가사참여율이 최저수준이고 기업이나 공직에서 여성의 비율도 최저수준 아닐까(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세상은 벌써 변했는데 왜 남녀차별적 사고방식은 이처럼 여전한 걸까. 이에 대해 우리의 사고방식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유교적 가부장제’를 원인으로 드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공자가 태어난 중국보다도 유교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중국은 지난세기 공산정권 아래서 유교가 부르주아 반동 이념으로 낙인찍혀 탄압받았다).


유교는 기존 질서를 인정하고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그 기존 질서 가운데 하나가 ‘남녀유별(男女有別)’이다. 유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차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별’일뿐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성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한 역사학자의 강의를 들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용이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즉 불교국가인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렇게 낮지는 않았는데 조선이 개국하며 성리학(유교)을 국가이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추락했다는 내용이다. 요즘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지만 조선왕조 500년이야말로 여성들에게 진정한 ‘헬조선’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유교의 시조인 공자의 언행을 수록한 ‘논어’를 보면 남녀차별적인 발언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문구가 사실상 유일하다. 그렇다면 남녀유별은 후세의 유학자들이 덧붙인 것일까. 사실 ‘논어’에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미 관심 밖이라는 말이다. ‘논어’에서 사람은 곧 ‘자유인 남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유별난 남녀차별 의식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일까. 아니면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유교의 성격을 볼 때 공자 시대에 이미 상당한 남녀차별 사회가 성립된 것일까. 즉 유교는 이런 남녀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준 것일 뿐이란 말인가.

 

동주시대 식단의 변화와 남녀차별 심화의 연관을 다룬 논문의 앞부분으로 ‘논어’ 양화편의 남녀차별적 문구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동주시대 식단의 변화와 남녀차별 심화의 연관을 다룬 논문의 앞부분으로 ‘논어’ 양화편의 남녀차별적 문구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신석기시대에는 남녀차별 심하지 않았던 듯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1월 31일자에는 후자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인류학 및 고고학 증거를 제시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뉴욕시립대 인류학과 케이트 페첸키나 교수를 비롯해 중국, 호주의 공동연구자들은 중국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골과 유물을 분석해 공자가 살았던 청동기시대가 앞서 신석기시대에 비해 남녀차별이 심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유물은 몰라도(무덤 부장품의 양과 질로 판단) 유골로 어떻게 남녀차별 여부를 추측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당시 사람들의 유골에 남은 음식의 흔적을 분석해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즉 신석기시대에는 남녀가 먹은 음식에 차이가 없었지만 청동기시대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식단이 훨씬 못했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권리가 추락한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고고학 연구로 밝혀낸 중국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식생활 변화를 살펴보자.


중국의 대표적인 신석기 문화로 황허(黄河) 중류 지역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2900년까지 존속했던 양사오(仰韶)문화의 고고학 유물을 분석해보면 당시 사람들은 기장과 조(좁쌀)를 작물화해 주식으로 먹었고 돼지를 가축화해 기르고 잡아먹었다. 참고로 기장과 조는 서로 아주 가까운 식물로 열매는 기장이 조보다 약간 더 크다. 이하 기장은 기장과 조를 의미한다. 또 사냥도 여전히 많이 해서 유적지에서 사슴의 뼈가 많이 출토됐다. 배추와 포도, 쌀, 도토리 등도 발견됐지만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 신석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식단의 변화가 일어났다. 즉 기원전 2600년에서 1900년 사이 서쪽에서 밀과 보리가 들어왔고 동쪽에서 콩이 전해졌다. 또 소와 양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밀과 보리, 콩은 기장이나 쌀에 비해 질이 한참 떨어지는 작물이었다. 한나라 말기인 200년 무렵 제분 기술이 개발돼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밀이 재평가됐다.


연구자들은 양사오문화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골 130구와 공자가 살았던 소위 춘추전국시대로 더 널리 알려진 동주시대(기원전 771~221년)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골 45구를 분석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작물을 주로 먹었고 육류를 얼마나 먹었는지 추정했다. 참고로 기원전 1046년 세워진 주나라는 기원전 771년 유목민 견융의 침입을 받아 왕이 살해되는 참극이 벌어지자 수도를 호경에서 동쪽의 낙읍으로 옮겼는데 이를 분기점으로 이전을 서주(西周)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부른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주(周)나라와 주요 제후국을 보여주는 지도. 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주(周)나라와 주요 제후국을 보여주는 지도. 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동주시대 여성, 못 먹어서 키도 작아져


연구자들은 양사오문화 시절 주식인 기장이 C4 식물이라는 데서 식단 분석의 실마리를 찾았다. C4 식물은 C4 광합성을 하는 식물로 광합성을 할 때 탄소가 네 개짜리 분자를 만드는 과정이 있어 광합성 효율이 높고 가뭄에 강하다. 반면 후기 신석기시대에 도입된 밀과 보리는 C3 식물이다(C4식물과 C3 식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카페 294 ‘아세요? 사탕수수가 벼보다 광합성 효율이 높다는 사실을...’ 참조).


연구자들은 ‘안정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식단에서 기장이 차지하는 비율을 추정했다. 안정 동위원소란 원소가 안정해 붕괴하지 않는 동위원소로 탄소의 경우 C12와 C13이 안정 동위원소다. 따라서 수천 년 전 유골의 C12와 C13의 비율은 당시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연구자들은 뼈에 있는 콜라겐 단백질을 추출해 이 비율을 조사했다. C4 식물과 C3 식물은 광합성을 할 때 동위원소에 대한 선호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어 C4 식물의 경우 C13의 상대적인 비율이 약간 더 높다.


분석 결과 양사오문화 사람들에 비해 동주시대 사람들의 콜라겐에서 C13의 비율이 더 낮았다. 즉 식단에서 C4 식물인 기장의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그 사이 밀과 보리가 도입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분석하자 흥미로운 패턴이 나왔다. 즉 양사오문화 사람들의 경우 남녀차이가 없었는데 동주시대에는 꽤 차이를 보였다. 즉 여성의 경우는 양사오문화에 비해 동주시대에 C13 비율이 뚝 떨어졌다. 이는 동주시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기장은 덜 먹고 밀과 보리는 더 먹었다는 뜻이다.


한편 질소의 안정 동위원소 N14와 N15의 상대적인 양을 분석하면 육류섭취 정도를 추측할 수 있다. 즉 N15의 경우 먹이사슬이 올라갈수록 비율이 높아지는데 따라서 식단에서 육류의 비율이 높을수록 콜라겐의 N15 비율이 높다. 분석 결과 양사오문화 사람들에 비해 동주시대 사람들의 콜라겐에서 N15의 비율이 더 낮았다. 즉 식단에서 고기의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이는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 동주유적에서는 사냥해 먹은 고기를 뜻하는 사슴의 뼈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분석하자 역시 양사오문화 사람들의 경우 남녀차이가 없었는데 동주시대에는 차이를 보였다. 이는 동주시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고기는 덜 먹고 대신 콩으로 단백질을 섭취했다는 뜻이다.

 

먹는 게 부실해 만성빈혈에 시달리면 두개골에 골다공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눈확 위쪽의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cribra orvitalia 증상을 보이는 두개골이다. 동주시대 여성 두개골 다수에서 이런 증상이 보인다. - bonebroke.org 제공
먹는 게 부실해 만성빈혈에 시달리면 두개골에 골다공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눈확 위쪽의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cribra orvitalia 증상을 보이는 두개골이다. 동주시대 여성 두개골 다수에서 이런 증상이 보인다. - bonebroke.org 제공

식단의 차이가 몸의 차이로 이어져
   

유골의 상태를 성별에 따라 조사하자 이런 식단 차이가 반영돼있음이 드러났다. 즉 동주시대 여성의 경우 두개골에 이상이 있는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영양부실에 따른  만성빈혈로 인한 증상이다. 즉 안구를 감싸는 뼈인 눈확의 위쪽이나 두개골에 구멍이 숭숭 뚫린 골다공증을 보이는 비율이 동주시대 여성에서 훨씬 높았다. 반면 양사오문화에서는 이런 비율이 낮았고 남녀차이도 없었다. 한편 키를 반영하는 넙다리뼈(대퇴골)와 정강뼈(경골) 길이의 변화에서도 남녀차이가 드러났다. 남성의 경우 양사오문화와 동주시대에 별 차이가 없었지만 여성의 경우는 동주시대에서 확연히 짧아졌다. 즉 동주시대에는 영양부실로 여성의 키가 작아지면서 남녀의 키 차이가 더 벌어졌다는 말이다. 한편 무덤의 부장품을 봐도 양사오문화에서는 남녀차이가 없었지만 동주시대 여성의 무덤에는 같이 묻힌 게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문화가 더 발달한 동주시대 여성의 삶이 어쩌다 수천 년 전 여성의 삶보다도 못하게 된 것일까.

 
주나라는 봉건제 국가로 서주 말기만 해도 800여 도시국가(제후국)가 존재했는데 동주시대로 넘어오면서 본가인 주나라가 쇠락하자 제후국들의 영토병합 전쟁이 본격화했다. 그 결과 공자가 살았던 기원전 500년 무렵에는 나라가 십여 개로 줄어들었고 기원전 403년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전국 칠웅’이라고 해서 일곱 개 제후국이 자웅을 겨뤘다. 기원전 221년 마침내 진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면서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했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 중국은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전쟁을 수행하는 남성들 위주로 세상이 돌아갔다.


그러다보니 남녀차별이 갈수록 노골화됐을 것이다. 양사오문화 시절에만 해도 남녀가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동주시대에는 남녀의 식단이 달라질 정도였다. 이는 남녀차별이 심상치 않았다는 뜻으로 한 가족조차 성별에 따라 다른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남녀가 밥을 따로 먹으라고 하는 것도 이런 차이를 눈감기 위함이 아닐까. 사실 지금도 가부장제가 심한 가난한 지역에서는 먹는 것부터 남녀차별이 심하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의 한 지역에서는 여아의 경우 젖을 뗀 뒤 죽만 먹인다고 한다.


문득 필자의 어린 시절이었던 40여 년 전이 떠오른다. “아침 드셨어요?”가 인사일 정도로 하루 세끼를 먹게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고기는 고사하고 달걀이나 생선도 귀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상에 올라오는 이런 반찬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몫이었고 엄마와 딸들을 입맛만 다시는 집들이 많았다. 남녀의 진학률도 꽤 차이가 났다. 보통 서너 명인 자녀들을 다 가르칠 수 없는 집이 많았고 대부분 딸들이 희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남녀차별 같지만 당시 많은 여성들조차 이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하는 한 것이 바로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힘 아닐까.


권력과 부를 향한 수컷들의 탐욕으로 남자는 싸우다 죽고 여자는 굶어 죽던 시대 형성된 극단적인 남녀차별과 이를 정당화한 이론, 즉 2500년 전 ‘하늘의 뜻’이 자녀가 하나뿐인 가정이 대부분이고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이 풍요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떠받들어진다는 건 비정상적인 현상 아닐까.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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