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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6] 철도역: 배웅과 마중의 살가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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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20일 18:00 프린트하기

평일 아침 8시. 마을버스에서 줄지어 내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둘러 광장을 지나 경의선의 한 철도역으로 들어선다. 그중 대다수는 출근길일 테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조차 성큼성큼 걷는다. 자동 개찰구 여기저기서 “환승입니다” 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플랫폼에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멀리서 전동열차가 달려온다. 여덟 마디의 열차 옆구리가 열리자 소수의 승객이 내리고 다수의 승객이 승차한다. 다시 제 몸통을 다문 열차는 철로를 따라 쇠바퀴를 굴린다.

 

GIB 제공
GIB 제공

수도권에 흔한 철도역이나 지하철역의 평소 아침 모습이다. 그렇게 아침에 역(驛)을 떠났던 사람들이 저녁이 되면 그곳의 플랫폼으로 다시 돌아와 뚜벅뚜벅 걷는다. 어둠 내린 역 광장에서도 가로등 아래 그림자들은 풍차 날개처럼 움직이거나 환승하려는 버스 정류장에서는 시곗바늘처럼 멈춰 서 있다. 그 사이사이에 봄밤의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과 옷깃을 흐트러뜨린다. 열차에서 내렸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연이어 도착하는 마을버스들에 오르고 나면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까지 역 광장은 한동안 한산해진다.


오래전 내가 살았던 지방도시의 철도역 풍경은 다소 달랐다. 그때도 근교로 통근, 통학, 나들이하는 승객들이 있었지만, 승강장 이용 방법을 잘 모르는 노인이나 어린 학생을 열차 안까지 배웅할 수 있도록 철도역 매표소에서는 별도의 플랫폼 입장권을 판매하였다. 그래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명함 1/3 크기의 그 입장권을 사 들고 배웅 받는 승객을 열차의 지정석에 앉히고 나서야 안도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았다. 반면에 광장으로 이어진 대합실 출구 앞에서는 까치발을 세워가며 하차 승객을 기다려 곧바로 마중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배웅과 마중의 살가운 현장이었던 그때의 철도역은 작별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이 교차하는, 누군가는 먼 곳으로 떠나고 누군가는 멀리에서 당도하는, 명암이 대비되는 공간이었다.


20여 년 전, 나는 3년간 거의 매주 서울과 대전을 한 차례씩 오고갔다. 토요일 오후에 대전역에 도착하면 기차역 출구 앞에서 기다리던 반가운 사람이 내게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이틀 후 새벽 6시에는 다시 대전역 플랫폼에서 나는 일주일치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혼자 서울행 통일호 열차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기적 소리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철로의 소실점에서 외눈박이 헤드라이트에 노란 불을 밝힌 열차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럴 때면, 어느 역 광장에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석상(石像)이 서 있다는 성윤석 시인의 시 「석상」이 떠올랐다. 그 광장의 석상도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그곳에 그대로 멈추었던 것일까.

 

GIB 제공
GIB 제공

내가 좋아하는, 〈리디아의 정원〉이라는 그림책의 소녀 주인공 리디아는 미국 대공황 시기에 아빠가 실직하는 바람에 가족을 떠나 먼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 집에서 일을 도와가며 여러 계절 동안 기숙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침울한 배웅을 받으며 소녀 리디아는 기차에 오른다. 그러고는 제 허리까지 오는 짐 가방들과 함께 낯선 역에 내려진다. 난생처음 보는, 천장 높은 대합실의 커다란 규모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혼자 서 있는 시골 소녀 모습의 그림이 눈에 선하다. 양쪽으로 펼쳐진 페이지에 어두운 색채로 그린 그 대목의 그림에는 유일하게 아무런 글이 쓰여 있지 않았다. 낯선 공간의 두려움과 커다란 기차역이 주는 위화감에 주눅 든 소녀의 마음이 절제된 그림 한 컷에 고스란히 표현된 짠한 장면이다.


이처럼 철도역은 누군가에게는 못내 아쉬운 작별의 공간이기도 하고, 낯선 불안감을 주는 얼떨떨한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그곳은 평일이면 아침마다 허겁지겁 서둘러 떠나는 직장인들을 장전한 탄창 같기도 하고, 밤이면 눅눅한 식빵 같은 피로를 한 짐씩 지고 되돌아오는 사람들의 고달픈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한 철도역은 행인은 많아도 정착한 사람은 거의 없는 곳이며, 그러기에 늘 떠나는 분들과 돌아오는 분들만 있는 곳이며, 그 승객들을 태운 열차의 강철 바퀴가 은빛 선로를 달려와 멈추고는 잠시 후 이내 떠나는 곳이다. 승하차객의 안전을 위해 플랫폼 먼발치에 서서 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서 진입해도 된다는 표시로 역무원이 X자로 흰 깃발을 흔든다. 그것은 한편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마중의 눈웃음이자 아릿한 배웅의 손짓이 아닐까.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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