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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범준의 ‘글을 쓴다는 것’ 1] 설명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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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02일 14:00 프린트하기

나는 글을 쓰는 훈련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주변 과학자 중에는 학창시절 시를 짓거나 문예반에서 활약한 분들도 있지만, 난 그런 경험도 전무하다. 어쩌다 대중을 위한 과학책을 썼고, 또 어쩌다 그 책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널리 읽혔다. 


그래선지 마치 내가 글쓰기 비결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비결은 개뿔. 그런 것 없다. 겸손이 아니다. 다른 과학자의 글을 읽다가 감탄하며 부러워한 적은 많지만,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물리학자 김범준의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어쩌다 이 글을 읽게 된 독자는 명심하길. 이 연재는 글을 어떡하면 잘 쓰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GIB 제공
GIB 제공

쓰려면 알아야, 알려면 읽어야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고생하는 것이 바로 영어 듣기다. 지금이라고 편하게 잘 듣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영어가 안 들려 정말 고생한 적이 있다. 


대학원생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낼 때에 하도 걱정이 돼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다. 그때 외국인 강사가 해준 얘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바로 “아는 것만 들린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이미 아는 영어단어나 영어표현만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자기가 모르는 영어단어를 처음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아는 것만 쓸 수 있다.” 쓴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술한 글은 절대로 독자를 이해시킬 수 없다. 사실 꼭 쓰는 것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과학자는 자기가 연구한 것을 다른 과학자 앞에서 설명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자들도 아는 것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리고 쓸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을 말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 외부와 소통하려면, ‘앎’이 먼저다.


영어 얘기가 나온 김에 떠오른 것이 있다. 케렌 앤(Keren Ann)이 부른 ‘Not going anywhere’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I like to hear but not to listen, I like to say but not to tell.”이라는 문장이 있다. 영어 수업에 배웠던 ‘hear’와 ‘listen’의 차이, ‘see’와 ‘watch’의 차이, 그리고 ‘say’와 ‘tell’의 차이를 떠올리면 된다. 듣고, 말하고, 그리고 보는 것 각각에 이처럼 영어 단어는 짝이 있다. 듣고, 말하고, 보는 주체의 ‘앎’의 정도에 따라, 혹은 정보의 양에 따라 어감이 다른 단어들이다.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도 영어를 들을(hear) 수 있지만, 듣고 이해(listen)할 수는 없다. 그런데 쓴다는 것을 뜻하는 ‘write’에는 이처럼 짝을 이루는 영어 단어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말하고, 듣고, 쓰는 소통의 방식 중에서 쓴다는 행위에 ‘앎’이 더 필수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앎을 만들려면 먼저 ‘생각’이 필요하다. 흰 벽을 앞에 두고 앉아 스스로의 생각에 골몰해 ‘앎’을 늘릴 수도 있지만,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다른 이의 ‘앎’을 슬쩍 해 내 ‘앎’의 재료로 쓰는 거다.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아는 것을 이미 써 놓았다. 바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세상에 쏟아지는 그 많은 책 중 어떤 것을 읽을지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지 말아야 할지는 쉽게 답할 수 있다. 저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쓴 책은 단 한 명의 독자도 이해시킬 수 없다. 책을 읽다 방금 마주친 문장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내가 아직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가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쓴 것인 지를 자문해본다. 만약 두 번째 이유라면, 그런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쓰려면 알아야하고, 알려면 읽을 일이다.

 

☞ (함께 읽기) [물리학자 김범준의 ‘글을 쓴다는 것’ 2] 좋은 글은 자랑하지 않는다

☞ (함께 읽기) [물리학자 김범준의 ‘글을 쓴다는 것’ 3]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 싶다면 쓰라!

 

 

※ 필자소개
김범준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이학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한국복잡계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 ‘세상물정의 물리학’으로 제 56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언론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물리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이 우리의 직업을 대체할 거라는 불안에 맞서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본질적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이 교육의 시대에서 학습의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 평생 학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학습은 말하기, 듣기, 쓰기로 표현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출발하고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완성은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동아사이언스는 평생 배워야하는 미래시민들을 위해 베스트셀러인 ‘세상물정의 물리학’의 저자 김범준 교수가 말하는 ‘글을 쓴다는 것’을 3회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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