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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나무로 지은 아파트에서 사는 시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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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30일 18:00 프린트하기

수년 전 서울시립박물관에서 본 ‘북유럽 건축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북유럽 가구의 확대 버전이라고 할 멋진 목조 주택들을 감상할 거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학교나 아파트 상가 규모의 목조 건물 모형들이 주로 전시된 걸 보고 좀 놀랐다. ‘이 정도 건물을 나무로 지을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공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전시를 보고 나서 북유럽은 웰빙에 있어서는 모든 면에서 앞서간다는 부러움이 더 커졌다.


연초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르 코르뷔지에 전’은 또 느낌이 달랐다. 오늘날 도시의 콘크리트 아파트 숲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을 창안한 스위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콘크리트 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천재이지만 전시를 보면서 21세기가 지향할 바는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출구에 다 와서 반전이 있었는데, 가성비 좋은 그 많은 건물들을 지은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아내와 함께 살았다는 불과 네 평짜리 나무 오두막집이 실물 크기로 재현돼 있었다. 물론 르 코르뷔지에답게 네 평이면 사는데 불편함이 없음을 보여주는 실내공간을 구현했지만 그래도 왠지 아이러니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필자도 기회가 되면 귀촌을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르 코르뷔지에의 오두막집이 큰 영감을 줬다. 하루는 친구를 만나 이 얘기를 하면서 네 평까지는 아니더라도 열 평 미만의 집을 지어야겠다고 말했더니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컨테이너 주택을 사라”며 팁을 알려줬다. 검색해보니 정말 컨테이너 크기의 다양한 조립식 주택을 싸게는 수백만 원에 살 수 있었다. 아무튼 수 년 뒤에는 아홉 평짜리 나무집 안에서 과학카페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유럽과 북미에서는 목재를 이용해 거대한 구조물을 짓는 게 유행이다. A는 캐나다 퀘벡에 있는 목조 다리이고 B는 영국 런던에 있는 머리그루브타워다. C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항공기격납고이고 D는 캐나다 밴쿠버에 지어질 20층 높이 건물의 조감도다. - 지속가능한 임학 저널 제공
최근 유럽과 북미에서는 목재를 이용해 거대한 구조물을 짓는 게 유행이다. A는 캐나다 퀘벡에 있는 목조 다리이고 B는 영국 런던에 있는 머리그루브타워다. C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항공기격납고이고 D는 캐나다 밴쿠버에 지어질 20층 높이 건물의 조감도다. - 지속가능한 임학 저널 제공

같은 무게일 때 철과 콘크리트보다 강해


학술지 ‘네이처’ 5월 18일자에는 목조 건물 붐을 다룬 심층기사가 실렸다. 수년 전 ‘북유럽 건축전’이 떠올라 읽어봤는데 이런 세상이 있었나 싶게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 유럽과 북미는 서로 경쟁적으로 목조 건물을 짓고 있다는데 건물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한다. 기사는 필자가 ‘북유럽 건축전’에서 품었던, ‘대형 목조 건물이 과연 안전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목조 건물 붐의 주요 동기인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의 실효성을 다루고 있다.


필자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재만으로 대형 건물을 짓는다는데 의아해하는 건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에 비해 훨씬 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불이라도 나면 순식간에 타버려 건물이 붕괴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나 나무는 그렇게 약한 자재가 아니다. 미국 레드우드국립공원에 있는 키가 100미터가 넘는 아메리카삼나무를 떠올려 보라.


목질화한 세포로 이뤄진 나무는 같은 무게일 경우 강철이나 콘크리트보다도 강도가 세다. 물론 같은 부피일 경우는 밀도가 낮아 그렇지 못하다. 그럼에도 목재는 시간의 경과나 습도에 따라 휘어지고 갈라지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통나무 그대로 쓴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구조용집성판(cross laminated timber. 이하 CLT)이다. 수 센티미터 두께의 판재를 서로 90도 방향으로 붙여 변형되려는 힘을 상쇄한 CLT가 등장하면서 대형 목조 건물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수 센티미터 두께의 널빤지를 90도 방향으로 엇갈리게 붙인 구조용집성판(CLT)의 등장으로 나무로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보통 널빤지를 홀수 개 붙이는데 바깥쪽 판의 나뭇결을 길이 방향으로 맞추기 위해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수 센티미터 두께의 널빤지를 90도 방향으로 엇갈리게 붙인 구조용집성판(CLT)의 등장으로 나무로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보통 널빤지를 홀수 개 붙이는데 바깥쪽 판의 나뭇결을 길이 방향으로 맞추기 위해서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한편 화재의 경우도 나무가 철이나 콘크리트보다 오히려 안전하다고 한다. 즉 불이 어느 수준을 넘으면 철이 녹고 콘크리트가 깨지지만 나무는 타는데 일정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대의 소방시스템에서는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고 한다.

 


저에너지 건축 자재로 재인식


2010년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 완공으로 정점을 친 마천루 경쟁 레이스의 목조 건물 버전이 지금 한창이다. 2015년 말 노르웨이에서 52.8미터 높이의 건물을 지어 기록을 세우자(참고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은 1056년에 지은 중국 요나라의 잉현목탑으로 높이가 67미터에 이르지만 주거공간이 아니므로 제외했다.) 지난해 9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53미터짜리 기숙사를 완공했다.


그러나 올해 안으로 이 기록이 깨어질 예정이다. 오스트리아에 84미터 높이의 호호빌딩이 건설되고 있는데 호텔과 아파트, 사무실로 쓰일 것이라고 한다. 보통 우리나라 아파트는 한 층이 3미터 내외이므로 84미터이면 28층 높이다. 이 정도면 고층 건물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을까.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들이 목조 주택을 넘어 목조 건물을 본격적으로 짓는 데에는 파리협약으로 상징되는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성하는데 건물 자재를 바꾸는 게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의 경우 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즉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철광석에서 강철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려 보라.


반면 목재는 나무를 베어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붙여 CLT를 만들면 되므로 에너지가 훨씬 덜 들어간다. 목조 건물 자재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같은 크기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12%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2014년 캐나다 노던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 지은 30미터 높이의 8층짜리 목재혁신ㆍ디자인센터를 짓는데 자재를 대체해 40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됐다. 뿐만 아니라 이 건물이 존재하는 한 붙잡혀있는 이산화탄소가 1100톤에 이른다(광합성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탄수화물 고분자로 바뀐 게 결국 목재이므로).

 

높이 53미터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기숙사 전경이다. 규격화된 목재를 써서 불과 70일 만에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 KK Law/naturallywood.com 제공
높이 53미터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기숙사 전경이다. 규격화된 목재를 써서 불과 70일 만에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 KK Law/naturallywood.com 제공

2014년 학술지 ‘지속가능한 임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철골과 철근콘크리트를 전부 목재로 대체할 경우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무려 31%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100% 대체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만큼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그러나 목조 건물의 비율이 늘어날 경우 목재를 구하기 위해 안 그래도 심각한 숲의 훼손이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목조 건물 옹호론자들은 조림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즉 농사를 짓듯이 대규모로 조림을 해 지속가능한 목재 공급을 이루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전체 숲에서 조림 숲이 차지하는 비율은 7%에 불과하지만 목재 공급량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숲의 파괴가 문제가 되는 건 농지나 주거지로 바뀌기 때문이지 자연 숲을 조림 숲으로 바꾸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라고 대꾸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유럽이나 북미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한 조림 숲으로 목재를 공급할 수 있겠지만 형편이 어렵고 정부가 부실한 나라들에서 과연 계획적인 조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2014년 논문을 보면 어찌되었든 조림 숲을 조성하는 게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2050년 무렵이면 전 세계의 인프라(건물, 다리 등)에 들어가는 자재의 양이 지금의 세 배가 될 전망인데 지금처럼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만 고집한다면 온실가스 배출 저감은커녕 더 늘지 않게 하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서울의 한 대학이 기숙사를 짓겠다고 교내 부지에 있는 축구장 네 개 크기의 숲을 하루아침에 불도저로 밀어 화제가 됐다. 서울 도심에 있는 오래된 숲을 주민설명회 한 번 없이 일사천리로 ‘학살’한데 대해 서울시와 그 대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건축허가가 나올 수없는 자연경관지구를 등급을 하향 조정해 허가를 내줬다고 한다).


문득 ‘지금쯤 기숙사가 다 지어졌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보니 완공돼 학생들이 입주해 있다. 물론 전형적인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문득 이 기숙사를 목조 건물로 지었다면(베어낸 아름드리나무들을 쓴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록 숲은 파괴했지만 그래도 친환경 건축물의 효시로 우리나라 건축사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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