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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9] 공중전화 부스: 통화를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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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9] 공중전화 부스: 통화를 사는 곳

2017.06.10 18:00

지난주 이야기의 소재였던 ‘편의점’처럼 도처에 자꾸 생겨나는 곳도 있고, 한때는 순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행인들이 자주 찾았지만 휴대폰에 치여 발길이 끊긴 ‘공중전화 부스’처럼 점차 사라져가는 곳도 있다.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공중전화 부스는 자석처럼 행인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공중전화 이용자들의 눈길을 인근 상점에 닿게 하기 위해 상가에서는 일부러 길가에 공중전화 부스를 유치해 그곳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대신 제공해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기사에 따르면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이젠 아무도 발걸음하지 않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용한 지난 14년간의 전기료를 계산하여 KT로부터 504만 원을 보상받은 상가 주인이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KT 공중전화, 옆 상가에 504만원 물어준 이유는?”, [한겨레], 2017. 5. 31).

 

윤병무 제공
shutterstock 제공

이렇듯 시대에 따라 인기가 오르내린 공중전화는 공공장소에 설치하여 정해진 사용료만 지불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화기다. 최초의 공중전화기는 1889년에 미국의 발명가가 동전으로 작동하게끔 고안한 것이었고, 국내의 경우는 1902년에 처음으로 서울의 네 곳에서 개통된 이후 1926년에 정식으로 전화국과 우체국에 설치되어 보편화되었다. 그 후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주로 동전으로 공중전화를 사용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는 공중전화 전용 카드로 대체되어 불편함이 개선되었고 요즘에는 신용카드로도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해졌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시민들 손아귀마다 휴대폰이 들려 있어 공중전화는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병들 말고는 그 존재조차 망각된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훗날에는 한때 많은 직장인들이 허리마다 차고 있던 ‘삐삐’(호출기)처럼 역사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유선 통신에서 무선 통신으로 전환되자 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통화 버튼만 누르면 발신도 착신도 가능해져 무척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직장에서의 업무 통화도 유선 전화기보다 더 효율적인 개인 휴대폰으로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상대와 통화하기까지의 대기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선 통신을 꿈꿔왔던 사람들은 공학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훗날 클래식 음악가가 된 단짝 친구와 방과 후 내내 놀고도 각자 집으로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집에 돌아와 팔베개를 하고 누워 혼자 생각하기를, 우리에게 무전기가 있다면 한밤에도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에 빠지곤 했다. 그러고는 이튿날에는 그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방과 후 학교 운동장 주변의 양버즘나무 간격만큼 서로 멀찍이 떨어져 마주 서서는 기다란 실로 연결된 야쿠르트 빈 통 두 개를 무전기인 양 각각 들고는 “잘 들리나? 오바!” 하면서 야쿠르트 통 입구에 입과 귀를 번갈아 대며 싱거운 말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이십대가 된 후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밤, 귀갓길에서 나는 가로등 불빛을 받고 처량히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앞에 멈춰 섰다. 꼬깃꼬깃한 수첩을 꺼내 친구 이름을 찾아낸 나는 주홍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내 인사말에 친구 어머니가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며 반기셨다.
“에그 야야, 어쩐다냐, 조금 일찍 전화하지 그랬냐, 원택이 갸가 일주일 전에 식 올리고 바로 독일로 유학길 떠나버렸구나.” 당시에는 친구 어머니께 면구할뿐더러 앞으로 유년의 단짝을 평생 못 만날 것 같은 생각에 마음 아파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윤병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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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데에는 우리가 유년의 정서를 잊고 살고 있었고, 당면한 삶의 관심이 달라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말로써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을 게다. 더구나 예나 지금이나 전화 통화는 청춘의 꽃인 연인에게 향하기 마련이어서 나뿐만 아니라 당시 (특히 밤 시간에) 곳곳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서 있는 수많은 청춘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동전은 각자의 연인을 향해 공중전화기에 투입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정말 그 시절엔 해가 지고 나면 공중전화 부스마다 두세 명쯤은 줄지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론 통화 시간이 길어져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의 눈총을 피하려고 한여름임에도 공중전화 부스 문을 닫고는 안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그곳이 흡연실인 양 담배 연기를 자욱이 피운 채 보고 싶은 마음의 종이비행기를 수화기로 날려 보내는 청춘도 많았다.


당시에는 한정된 통신기기를 시민들이 함께 사용해야 했기에 곳곳의 공중전화 부스에는 날마다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마음 아픈 사연이 투입되는 동전만큼이나 쌓였으리라. 통화하기까지 같은 장소에서 누군가와 함께 대기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편한 제약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당시의 시민들은 낯모르는 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면서, 혹은 이용자의 무례한 이기심에 눈총을 주면서 소위 공중도덕이라는 가치와 태도를 은연중에 배우지 않았을까. 또한 그 시절에는 유선 전화기의 첫 수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인사를 먼저 나눌 일이 잦았기에 상호간에 사회적 예의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 많은 자발적 교육장은 공중전화 부스였고, 특히 밤 시간에는 발신자의 예의가 극대화되었다. 그 예절 교육비는 한번에 10원쯤 되었으리라.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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