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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 文정부 과기정책⑤] 기초연구 자유공모 2배 확대, 남겨진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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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1일 12:00 프린트하기

▶ 3줄 요약
1.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순수기초분야 연구지원 예산을 2배로 증액하고, 연구자 주도의 자유공모 연구비 비율을 현행 20%에서 4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2. 정부 주도의 기획 연구가 주를 이루면서 연구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국가 과학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3. 그러나 ‘어디까지를 순수기초분야로 볼 것인지 대한 사회적 합의’, ‘공정한 과제심사 체계 확립’, ‘연구자들의 공적 책임 강화’ 등이 선결 과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염한웅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을 대선 캠프에 영입할 당시의 모습. 이날 문 대통령은 기초연구 지원 강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염한웅 기초과학연구원(IBS) 단장(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을 대선 캠프에 영입할 당시의 모습. 이날 문 대통령은 기초연구 지원 강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동아일보DB

“기초과학은 과학기술의 토대입니다. 2조 수준인 순수기초 연구비를 2020년까지 2배로 확대하겠습니다.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숙원인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 연구비’ 비율 역시 현행 20% 수준에서 2배 이상 확대하겠습니다. 연구자의 창의력을 가로막는 단기적이고 양에 맞춘 과학기술 성과평가방식을 혁신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초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며 이처럼 약속했다. 연구자 주도의 도전적인 연구 지원은 확대하되, 간섭은 최소화 하고 단기적 성과 중심의 평가도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새 정부의 공약에 따라, 현재 미래창조과학부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 검토 중이다.
 
● 왜 이런 공약을? : 자유 공모 늘려 연구 다양성, 창의성 높이기
 
정부가 연구자 주도의 자유공모 연구비 비중을 높이겠다고 나선 것은 국내에선 독창적인 연구를 하기 어렵다는 과학기술계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상향식연구 확대 운동은 이제 시작…과학자들 함께해주길”). 정부 주도의 기획 연구(대형국책과제)가 국가 연구개발(R&D)의 주를 이루면서 연구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떨어졌고, 이것이 국가 과학 경쟁력 약화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의적 기초연구 진흥을 위한 국가 R&D 정책 제안 포럼’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초 연구비의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늘었지만,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 연구비의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한국물리학회, 한국수학회, 대한화학회, 한국지구과학회 등 14개 협회는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 비중을 기초연구비의 50%까지 늘리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 R&D 정책 제안서를 발표했다.
 
이 제안서에 따르면 2015년 정부가 투자한 기초연구비는 5조 원으로 2011년 대비 45% 이상 증가했지만, 자유공모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22%로 2011년(28%)보다 20%가량 감소했다. 정부의 총 R&D 예산(18.9조 원)의 6%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기초연구비 중 상당 부분이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지원하거나 정부 주도의 기획 연구에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공모 연구비와 기획연구 연구비를 합한 순수 연구비의 비중도 전체의 36%(6.8조 원)로 적었다.
 
이승희 KAIST 교수는 “국내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과학인용색인(SCI) 논문 수와 임팩트팩터(IF)가 10 이상인 우수 논문 수도 2014년 이후 정체 현상을 겪고 있다”며 “연구자 주도의 기초 연구 지원 정체가 연구 성과의 정체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자유공모연구 비중 확대’를 요구하는 국회 청원에 참여한 이승복 서울대 치의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온 R&D는 한국을 기술 강국으로 이끌었지만, 진정한 과학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연구자 주도의 자유공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R&D 예산(2015년 기준) 중 순수연구개발비, 자유공모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국가 R&D 예산(2015년 기준) 중 순수연구개발비, 자유공모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 자유공모 과제 적어 신진연구자들 도전적 연구에 어려움 많아

 

이런 문제는 초임 교수 등 신진 연구자들이 도전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우인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연구자가 그동안 전문성을 쌓아온 연구 분야에 맞는 기획 연구 과제는 없고, 자유공모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하다”며 “지금은 나만의 경쟁력을 갖춘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라고 호소했다.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인 대학에 대한 투자도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의 국가 R&D 예산 중 대학 연구 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정부의 대학에 대한 R&D 투자는 수년 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 대학의 연구 인력은 늘어나 연구비 부족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초연구 투자가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너무 과도하게 집중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특정 연구기관에 소속된 극소수의 과학자들에게 기초연구비를 집중 투자하는 것은 다양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한다는 기본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여전히 정부는 기초연구 지원에 있어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적 성과 중심의 현행 평가 제도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기초연구진흥협의회 위원인 서은경 전북대 반도체과학기술학과 교수는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구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기초연구에 있어서는 연구자들이 장기간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IBS 제공 

● 남은 과제는? : ‘무엇이 기초연구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기초연구를 둘러싼 과기계의 요구는 오래도록 지속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10년 전에도 비슷한 자리에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며 “당시에는 상향식 연구를 지금처럼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 연구’가 아니라 ‘풀뿌리 연구’라고 불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에서도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과 ‘정부R&D 혁신방안’ 등을 통해 기초연구 비중에 대한 투자 목표치를 설정하고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왔다. 지난해 12월 미래부와 교육부는 ‘2017년 기초연구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개인연구 1조 원, 집단연구 1960억 원 등 전년 대비 1609억 원 증액된 총 1조2643억 원을 기초연구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상향식 기초연구 투자 확대 △신진연구자 지원 ‘생애 첫 연구’ 신설 △성실실패 제재 완화로 도전적 연구 지향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높지 않은 상황이다. 어디까지를 기초연구로 볼지, 그 중에서 어디까지를 순수기초분야로 볼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덕환 교수는 “정부에서 기초연구를 얘기할 때 ‘지식의 축적’과 ‘미래 성장동력 견인’ 같은 말이 혼용되고 있다”며 “무엇이 기초연구인지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분명히 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는 통계 수치만을 갖고 계속 제자리를 맴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성훈 미래부 기초연구진흥과장도 “순수기초분야의 연구지원 예산을 2배로 증액한다는 새 정부의 기본 계획에 따라 준비 중이지만, 순수기초분야의 구체적인 범위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부작용 없으려면? : 공정한 과제심사 체계 확립과 연구자 공적 책임 강화해야

 
연구자들은 자유공모 연구 과제가 늘어날 경우, 과제심사 역시 공정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연구자가 원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정부의 간섭이 줄어들게 되면, 자칫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인경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아주대 의대 교수)은 “학연, 지연, 친분 관계나 청탁 등을 이용해 부당하게 과제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할 만한 사람에게 연구비가 돌아갈 수 있도록 심사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기초기반전문위원회 위원장인 박종훈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부 교수도 “심의나 평가에 참여하는 전문가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과장은 “기초연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이 이뤄지는 만큼 투자 정당성에 대한 설명책임도 분명 필요하다”며 “연구자 한 분, 한 분이 진중하게 연구에 최선을 다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혜성 아주대 의대 교수도 “연구자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떠나 한국 과학계의 정상화를 위해, 과학자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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