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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의 목소리 (14)] 나는 왜 교양과학을 읽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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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7일 19:30 프린트하기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대표, 과학 커뮤니케이터)

 

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제가 비행기를 타고 버지니아의 덜레스 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던 그 다섯 시간의 비행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정확히 2009년이었을 겁니다. 그당시 저는 미국에 설립한 회사의 창립 10주년 기념식이 있어서 본사로 가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하고 있었고, 50번째 생일을 맞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2009년 12월 LA로 가던 어느 비행기 속에서…


회사의 앞날에 관한 이런 저런 생각을 마친 후에, 자연히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 나이 50이라는 숫자가 무척 걸리더군요. 우리는 이상하게도 한 돐, 10주년, 50년, 100년 이런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당시 생각해 보니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 치더라도 내가 100살을 넘겨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산 만큼은 더 살지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반환점을 돈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수영장에서 항상 반환점을 찍고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지 않습니까? 꼭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출생에서 오늘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 이젠 말 그대로 터닝포인트를 찍고 태어나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뭐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다만 나의 태도만 턴(turn)을 한 것이죠. 막연하게 시간이 마냥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온만큼도 안 남은 시간을 살다가는 거라고 생각했죠. 되돌아가는 것은 영어로 리턴이라고 하죠. 그 리턴을 생각하다보니까, 이내 또 다른 뜻인 되돌려주다 혹은 반납하다라는 뜻도 떠오르더군요. 결국 사람은 죽을 때 자기가 사회로부터 받은 그 모든 것을 이 사회로 되돌려주고 가게 되어있죠. 그런데 이왕 다 되돌려 주고 돌아갈 거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가 아니라 좀 가지런히, 질서있게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도 좋겠다 뭐 이런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대로 공부가 되었던, 사업이 되었던 그 어떤 열정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달려가기 보다는 좀 천천히 깊이 생각하면서 여유있게 가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끝입니다. 이런 생각의 씨앗만을 가슴에 묻어두었죠.
 

 

팟캐스트를 하다


제가 미국을 가게 된 것은 20년 전이었고, 미국에 가서는 이일 저일 끝에 한국의 책을 미국 전역에 계신 미주한인들에게 유통하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인이 많은 도시마다 작은 규모의 서점들이 있긴 했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미주 동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기술 즉 웹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처음엔 엄청난 적자를 냈지만 3년만에 회사는 안정되기 시작했고 10주년을 맞이할 즈음엔, 매출 규모도 수익도 나쁘지 않았죠. 서적 유통업을 하면서 저는 항상 “서점을 홍보는 일은 거의 소용이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책을 보고 싶어야 서점에 오니까, 책을 홍보해야 서점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서점이 잘 되고, 화제의 책이 없으면 매출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한국 같으면 출판사에서 책을 홍보할 텐데, 미국에서는 한국 출판사의 영향이 전혀 미치지 못하니까 서점이 책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좀 오지랖이 넓은 일이고 비용도 많이 들었죠.


당시 회사 경영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공익적 차원에서도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처음엔 로컬 방송국에서 하다가 소개할 책이 베스트셀러로 국한되는 등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막 시작되고 있었던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제가 책소개를 위해 매주 출연하던 로컬 방송국의 아나운서 한 분과 의기투합하여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게(그 때가) 2012년 8월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게 〈어쩌다 책읽기〉라는 제목의 팟캐스트였습니다. 비행기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때가 2009년 말이었으니 대략 2년 반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이 팟캐스트는 매주 한 권씩 쉬지않고 거의 1년인 50회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된 책은 되도록 골고루 이 책 저 책 분야별 안배를 생각하며 선정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과학 책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때 읽은 과학책은 어떤 책들이었을까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프란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 조나 레러의 〈탁월한 결정의 비밀〉, 스펜서 웰스의 〈판도라의 씨앗〉,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새로운 무의식-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이야기〉, 이석영의 〈빅뱅 우주론 강의〉, 폴 에크먼의 〈얼굴의 심리학〉, 존 티한의 〈신의 이름으로-종교폭력의 진화적 기원〉, 존 레이티의 〈운동화 신은 뇌〉, 샤론 모알렘의 〈아파야 산다〉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과학책 비중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때에는 이렇게 소개하기 위해 읽은 책들이 제 자신을 바꾸어 놓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서점의 자연과학 도서 코너 - 인터파크 화면 캡처 제공
인터넷서점의 자연과학 도서 코너 - 인터파크 화면 캡처 제공

팟캐스트는 내게 무엇을 남겼나?


2012~ 2013년에 걸친 독서는 나의 사고 체계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생활에 부닥쳐서 꼭 필요한 독서를 실용독서라고 한다면 이런 식의 독서는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과는 크게 관계없이 단순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서 우리의 사고 방식이나 인생관, 세계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인문교양서와 과학책을 탐독한 것이 지식의 성장은 물론 삶의 지평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삶을 바꾸는 독서는 무엇일까요? 인문교양서와 자기계발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공이나 출세를 강조하는 소위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소비문명에 물든 속물적 인간이 될 가능성은 아주 높죠. 처세에 능하고, 삶의 스킬이 뛰어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등과 같은 큰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태도를 갖게 되기 마련이구요. 서점에서 직접 일해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대개 교양 서적과 자기계발서를 뚜렷이 구별하지 못합니다. 제게 둘 사이의 차이가 뭔지를 묻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이나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자기계발서지만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무엇인지, 성공이란 게 무엇이며 성공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되묻는 책은 교양 서적 혹은 인문교양서라고 답해준 적이 있습니다.


팟캐스트를 하기 전까지 저도 이런 두 종류의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처음엔 구색으로, 나중엔 흥미가 생겨서 이미 말씀드린 10여권 가량의 과학서적을 선정하였고, 이외에도 여러 권을 읽었습니다. 의외로 과학책이 인문교양서조차 풀어주지 못했던 제 내면에 잠재하던 질문에 답을 주더군요. 저는 대학 입학후 10년간을 운동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운동과 대중운동의 언저리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은 흔히 그렇듯 19세기 이성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현상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본질적으로는’ 이성적인 존재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존재인데 왜 이세상은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있는가 하는 것은 내게 커다란 미스터리였습니다. 또한 인간의 역사를 계급투쟁이라는 프레임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대 40대를 관통하면서 이런 시각에 꽤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의외로 합리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인 데가 많으며 교육으로 지식은 주입할 수 있을지언정 사람 자체의 됨됨이를 바꾼다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불합리와 모순으로 가득찬 존재로 돌변하는 경우가 이해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화과학은 내가 인간을 보는 눈을 교정시켜주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기껏해야 문명과 함께 출발한 인간을 역사 속에서 파악했다거나 기껏해야 1만여년전 문명과 함께 출발한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았면 진화과학은 이미 수 백만 년 전 영장류의 무리에서 갈라져 나와 그들과 상당히 많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제3의 침팬지’로 이해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주었습니다. 특히 오랜 진화의 산물로서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동안 비만 상태에서도 먹기를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어이없는 행동조차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존 레이티, 게리 마커스, 데이빗 린든 같은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임시변통 해결책으로 만들어진 비효율적이고 엉성한 장치,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작동하는 장치로서 매우 불완전한 기관이며 특히 추론 능력을 가진 전전두엽은 겨우 20만년 전에 비로소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진화해온 비교적 안정이 덜된 새로운 장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커너먼 같은 분은 내게 인간의 수많은 인지적 편향에 대해서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지적 편향이 우리 사고의 ‘디폴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사고가 편향을 갖는 것은 뇌가 만능 추론기관이라기 보다는 진화과정에서 제기되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발전한 측면이 크며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합리적, 이성적인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올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진화심리학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나,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 같은 책들은 영장류 이전의 생물 진화의 과정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를 정확히 자리매김해 주었죠.
 

 

페이스북 그룹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을 만들고 과학서평을 쓰기 시작하다


다양한 교양과학서를 읽을수록 과학에 대한 애초의 내 선입견이 많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깨달았읍니다. 과학은 학자나 전문가 혹은 매니아에게만 필요한 주로 자연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현대문명을 정조준하고 있는 객관적 태도와 실증적 탐구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문학 열풍이 한창인 가운데, 과학책 읽는 열풍은 몰라도 미풍이나마 일으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2014년 2월에 페이스북에서 비공개 그룹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그룹을 제안했습니다. 매월 읽을만한 좋은 책을 추천하고 함께 읽고 정보도 나누는 그룹인데 현재로 7300명 정도가 가입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월 책을 추천하다 보니 제 자신도 많이 읽게 되고, 많은 분들과 교류하면서 과학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 6월에는 한국일보에 교양과학책 서평을 매주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대략 100권이 조금 못미치는 정도의 서평을 써왔습니다.
 

 

과학에 대한 오해, 비난 그리고 공격은 정당한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해, 특히 인문학을 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오해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실증주의적 가설들은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사회 다위니즘을 통한 인식론의 기반을 확립했고 진보에 관한 새로운 진화론적인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인간 종 또한 개량될 수 있고 마지막에는 ‘우월한’ 사람들을 선택교배하여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열등한’ 사람들을 멸종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관한 학문인 우생학으로 합쳐졌습니다…. 삼척동자도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것입니다. 참혹했던 20세기였죠.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한 무고한 사람들의 전례없는 체계적인 학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괴적인 무기들의 양산, 제국의 변방에서 일어나는 국지적인 전쟁들-이 모든 것들은 과학적 연구 방법이 다각적 측면에서 기술에 적용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잭슨 리어스의 The Nation의 기고글 중에서)
 

과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고, 또 인간이 수행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일부 과학자는 ‘배드 사이언티스트’로 악마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과학과 기술을 통해 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이 소수 악마적 엘리트의 손에 독점되었을 때 일어나는 거죠.
 

과학 없이, 과학과 무관하게 현대가 당면하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이것이 생물학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문학자가 지구의 인구과잉, 전염병의 확산, 회복할 수 없는 자원 고갈, 해로운 기상 변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농업수요, 자연서식지의 파괴, 범죄행위의 증가, 교육제도의 실패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 직면할 때, 생물학적 성과들에 대한 무지는 특히 위험하다.이런 문제들은 과학의 성과, 특히 생물학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정치가들은 무지 속에서 정책을 편다.”(pp.65-6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인문학자들은 스티븐 핑커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인문학저자들이 과학으로부터의 새로운 아이디어의 개화에 의해 기쁘고 활력을 가질거라고 생각 할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이 병을 고치고, 환경을 관리하고, 정치적 반대자를 물리치고 할때는 모두가 과학을 인정하지만, 과학이 인문학의 영역을 침범하면 과도하게 분개를 해왔습니다. 과학적 추론을 종교에 적용하는 것이 비난받는 것처럼,…결정론, 환원주의, 본질주의, 긍정주의로 정기적으로 비난 받고있으며 더욱 나쁜것은 과학주의라고 비난 받고있습니다.”(‘과학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New Republic 기고문)
 

미국에서도 기독교 복음주의자인 죠지 W. 부시 정권 하에서 과학은 예산 감축을 당하는 등 상당히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에 행한 취임 연설에서 ‘미국 과학을 제자리로 복구해 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취임 직후 뉴욕타임즈의 과학 선임 기자인 제임스 오버바이는 ‘과학의 향상은 곧 민주주의의 향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그는 “미국 과학계의 어깨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히는 느낌이 드는 연설 내용이었다”며 과학과 민주주의는 항상 쌍둥이로 지내왔다고 지적합니다.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고, 역으로 건전한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면 건전한 과학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진정한 과학적 사고는 조작과 왜곡이 없는 투명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실험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또한 그 결과는 다시 전문가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로 수정과 보완을 거칩니다.
 

 

최종적인 지식은 과학이 아니기에 과학은 위대하며 권위에 도전한다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에 대해 또 다른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과학은 완전 무결한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 혹은 태도 말입니다. 이태리의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최근 저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과학에 의해 주어지는 해답은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에 믿음직한 것이 아니다.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직한 것이다. 오늘날 입수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기 때문에 믿음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존하는 최선의 것인 까닭은 우리가 그것을 최종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과학에게 자체의 신뢰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과학의 핵심을 찌르는 말입니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이자 외과의이며 하버드 교수인 아툴 가완디는 2016년 칼텍의 졸업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과학은 하나의 전공이나 분야가 아닙니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약속이며 가설을 검증하고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를 설명하고 지식을 쌓아 나가겠다는 맹세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는 부자연스럽고 비직관적입니다. 과학적 사고는 학습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과학에 의한 설명은 종교와 경험, 상식이 말해주는 지혜와 충돌합니다. 우리는 한 때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며 추운 곳에 있으면 감기가 든다는 상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는 이런 직감이 단지 가설에 불과함을 알아야한다고 가르칩니다. 가설은 실험에 의해 검증되어야만 합니다.”
 

 

지금은 과학공부하기 가장 좋은 때
 

과학사 전체를 돌아보면 현시기만큼 빠른 속도로 과학이 발전한 적은 없습니다.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뇌과학, 진화과학, 이론물리학, 소재과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과학의 분야들이 마치 가속팽창하는 우주처럼 과학 지식의 변경을 가속적으로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인문 사회 영역들마저 과학과 융합하며 흡수 재편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과학공부하기 좋은 때가 있을까요? 많은 수의 교양과학책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전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강의도 거의 무료로 제공되며, 그런 고급 콘텐츠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음은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해 궁금한 점은 누구에게라도 쉽게 물어볼 수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상상해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호기심을 열어두고 늘 배우는 자세로 탐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인간다운 삶을 사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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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7일 19:3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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