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과학Dream_2화] 인도 과학교사로 살아남는 법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6월 18일 13:30 프린트하기

다리 밑 학교의 벽화.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제공
다리 밑 학교의 벽화.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편집자주

[과학Dream] 에피소드는 동아사이언스의 기자들의 인도여행기를 담았다. 자세한 내용은 스토리펀딩에서 확인할 수 있다(스토리펀딩 보러가기)

 

델리 - 델리=고은영 기자 eunyoungko@donga.com 제공
택시 기사의 시야에 비친 도로. 두 차 사이로 난 비좁은 틈도 지나가려면 지나간다. 첩첩산중이 아닌 첩첩차(車)중이다.- 델리=고은영 기자 eunyoungko@donga.com

인도 뉴델리 도로에는 2가지가 없다. 차선과 신호등이다.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빠져나오면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카오스가 펼쳐진다. 온갖 자동차와 릭샤가 도로에 한데 뒤섞여 달린다.

 

이곳에만 있는 2가지도 있다. 고막을 쉴 새 없이 때리는 ‘경적소리’와 ‘사이드 미러 없는 차.’ (인도에서 사이드 미러는 차량 구입할 때 탈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옵션이란다.) 한국과 달리 인도의 경적은 ‘내 차가 지나가니 주의하세요’라는 뜻이다. ‘Blow horn(경적을 울려주세요)’라고 적은 트럭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인도 소년이여, 나에게 집중해줘요

 

오전 6시. 온갖 나라의 여행객이 묵는 조스텔에서 기자 넷이 눈을 떴다. 정확히 3시간 뒤 다리 밑 학교에서 과학 실험 수업을 해야 한다.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다리 밑에 택시가 멈춰 섰다. 다리 밑 칠판 앞에 줄지어 앉아있던 소년들은 상체만 돌려 낯선 이들을 지켜봤다. 대부분 소년, 아이에 가까운 앳되고 작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리 밑 학교의 교장인 ‘락스미 찬드라’ 씨는 기자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청하며 환영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 교장 앞에서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2014년 다리 밑 학교를 위해 기금을 모았다 ‘교장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오스트리아 출신 볼프강’이라고 소개한 그는 페이스북에 ‘델리 다리 밑 학교’ 페이지를 만들어 “이 학교에 금전 기부를 하면 교장이 대부분을 횡령하고 아이들을 폭행하기도 하니 교육 봉사나 물품을 직접 전달하는 도움을 추천한다”는 요지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실험을 완료하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른 최 지원 기자.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유독 열심이다.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제공
단 한명의 낙오자 없이 실험을 완료하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른 최 지원 기자.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유독 열심이다.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불안감을 감추고 곧 첫 번째 수업을 시작했다. 주제는 ‘자석으로 우주선 띄우기.’ 택시에서 수업 대본을 읽은 통역사 언니가 앞에 서서 힌디어로 내용을 소개하면 학생들 사이에 들어가 시범을 보이는 건 기자의 몫이었다. 기자가 먼저 우주선 그림을 손으로 찢어 오리면 학생들도 흙 묻은 손으로 그림을 찢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여학생 수업은 오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여학생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도움을 청하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 만큼 차분했다. 학생들과 좀 더 긴 대화를 할 수도 있었다.

 

우주선을 띄우는 데 열심이던 한 소녀는 서로 다른 우주선 그림 중 하나를 고르는 데 한참을 머뭇거렸다. 하나를 골라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싶었는데, 진짜 이유는 한번도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골라본 적이 없어서였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학교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한 뒤 다리 밑을 떠났다. 택시를 타면서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정말 ‘쿨 하게’ 가버린 아이들이 아쉬웠다는 건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학봉사 즐겁게 잘 마쳤습니다. 피르밀렝게(다시 만나자!)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제공
과학봉사 즐겁게 잘 마쳤습니다. 피르 밀렝게(다시 만나자!) - 델리=신수빈 기자 sbshin@donga.com


<미니인터뷰> “대학원 동기들 중 대부분이 과학자가 되길 포기했어요.”

 

 

네하 코따리 연구원의 남편인 수딥 코따리(Sudeep Kothari) 연구원도 국제 백신 연구소(IVI)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네하 코따리 연구원은 자신이 계속 과학을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 네하 코따리 연구원 제공
네하 코따리 연구원의 남편인 수딥 코따리(Sudeep Kothari) 연구원도 국제 백신 연구소(IVI)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네하 코따리 연구원은 자신이 계속 과학을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 네하 코따리 연구원 제공

인도 여행을 앞두고, 국제 백신 연구소(IVI)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인도인 과학자 ‘네하 코따리(Neha Kothari)’를 만나 인도의 과학 교육에 대해 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인권이 낮은 인도에서 여성으로서 과학자가 되는 과정은 어땠는지, 교육 환경은 어떤지에 대해 초점을 두었다.

 

네하는 과학자라는 어릴 적 꿈을 이뤘다. 하지만 모든 인도 여성들이 네하와 같진 않다. 함께 공부하던 대학원 여자 동기들만 해도 대부분 중도에 과학자가 되길 포기했다. 그들과 네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네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Q. 왜 많은 친구들이 석사, 박사까지 하고도 과학자가 되길 포기했나?

 

가부장적 분위기 때문이다. 석사나 박사까지 한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학위과정 중 결혼을 많이 하는데, 남편 때문에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았다. 남편들이 일을 그만두길 바랐던 거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다. 만약 남편의 일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아내는 어떤 일을 하든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가곤 한다.

 

Q. 사회 분위기가 그 정도면 학위를 밟는 과정에선 여성으로서 어려움이 없었나?

 

물론 있었다. 우선 인도는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밤늦게 여성이 돌아다니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밤늦게까지 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나 현지 조사를 위해 지방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경우 연구 자체가 어렵다.

 

예를 들어 보자면, GJU(Guru Jambheshwar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 연구를 할 때 기숙사에 살았다. 당시 여학생들에게만 통금 시간이 오후 5시 30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그 이후엔 도서관도 갈 수 없고 아무데도 갈 수 없었다. 물론 통금을 위해 모든 실험은 그 전에 마쳐야 했다. 

 

여학생들이 늦게까지 돌아다니면 위험하단 이유로 만들어진 규칙이라는데, 여학생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위험 요인을 제공하는 남학생들에겐 왜 통금이 없는지 모르겠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6월 18일 13:3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7 + 9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