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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10] 화장실: ‘하루’를 시작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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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17일 18:00 프린트하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곳은 어딜까. 회장실이지 않을까. 부족한 잠을 쫓기 위해 찬물로 세수도 하고 용변도 해결하기 위한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주거하는 나 역시 아침에 침구에서 벗어나자마자 곧장 가는 곳이 화장실이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들고 수세식 좌변기에 앉아 제일 먼저 ‘미세먼지’ 앱을 열어 당장의 대기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집 안 환기를 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다음은 밤새 올라온 뉴스를 훑는다. 그러고 나서 ‘메모’ 앱을 열어 전날 쓰다 만 글을 다시 읽으며 지우기도 하고 좀 더 이어 쓰기도 하면서 만지작거리다가 그다음 순서인 샤워 중의 생각거리로 남겨둔다. 그렇게 매일 아침에 나는 하루 24시간 중 1시간의 절반을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GIB 제공
GIB 제공

회장실을 의미하는 영어 ‘toilet’은 프랑스어 ‘toile’가 변형된 말인데, 그 뜻은 ‘망토’다. 이 용어는 수백 년 전 프랑스에서 망토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용변이 급한 행인에게 ‘즉석 화장실’을 제공하며 밥벌이를 했던 직업인에게서 태어난 셈이다. 또한 오래전 영국에서 생겨난 여성용 구두 ‘하이힐’도 길거리에 마구 버려놓은 분뇨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건 흔히들 알고 있다. 이렇게 위생적으로 낙후된 오랜 세월을 마감하면서 오늘날같이 화장실에 비치된 ‘수세식 변기’는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이 역시 서구에서 비롯됐다. 산업혁명 전후에 인구밀도가 급속히 높아진 도시 곳곳에서 분뇨 처리 문제가 악화되고 흑사병까지 반복해 창궐하자, 1860년대부터 런던의 하수도를 정비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인 16세기부터 소규모로 개발되었던 수세식 변기는 계속 개량되어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와 유사한 ‘워시 다운’(wash down)형 변기가 등장했다.


자동 분리 배출 및 별도 저장과 처리, 이렇게 분뇨 처리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기에, ‘수세식 변기’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만약에 ‘수세식 변기’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오늘날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생활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특히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아예 건축 설계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다. 당장에 집집마다 매일 배출되는 분뇨를 위생적으로 분리해 정화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생활환경은 도처의 악취는 물론이고 여러 전염병을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세식 변기와 함께 세면기와 욕조까지 갖춘 가정용 화장실은 생활의 위생과 청결을 위해 가장 유용하고 꼭 필요한 공간이다. 주방과 화장실이 없는 주택은 바퀴 없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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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화장실은 꼭 있어야 할 공간이다. 하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뭇사람이 사용하기에 종종 관리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불편이 따른다. 남성용 소변기만 해도 많은 이들이 함부로 사용하면서 소변기를 벗어난 바닥에서 지린내를 풍기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다 보니, 소변기 위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등의 유머 섞인 계몽적인 글귀도 써 붙여놓지만 허사일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에는 소변기 한가운데에 얼핏 살아 있는 곤충 파리로 보일 법한 그림을 인쇄해놓아 자발적인 조준을 유도하면서 사용자를 한 발짝 앞으로 내딛게 한다. 언제든 발견한 파리를 쫓고자 하는 일반적 심리를 이용한 좋은 아이디어다.


한편 요즘에는 공중 화장실에서 낙서를 보는 일은 드물어진 듯하다. 아마도 밀폐된 화장실 안에서조차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몰두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오래전 대학 건물의 화장실 안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 낙서를 한 누군가는 아마 기말시험 등을 코앞에 두고 있었나 보다. “볼펜아, 너만 믿는다.” 바로 그 밑에는 다른 필체로 이런 댓글이 쓰여 있었다. “볼펜아, 불쌍하다.” 그런가 하면 어느 블로그에는 웃음을 주는, 이런 화장실 낙서를 찍은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신은 죽었다”(니체), “니체 너 죽었다”(신), “니네 둘 다 죽었다”(청소아줌마). 또 다른 블로그에는 세 줄로 쓰인, 짠한 화장실 낙서 사진도 있다. “결혼 축하해 / 내 첫사랑 / 행복해라.”

 

GIB 제공
GIB 제공

이렇듯, 공중 화장실은 (내용을 떠나) 누군가의 은밀한 게시판이 되기도 하고,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있어온 ‘댓글’의 기원이기도 하고, 이용자의 공덕(公德)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도 밀폐된 공간이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있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 즉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음담패설이나 욕설이나 농담을 써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눌 수 없는 마음에 흐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딱한 미혼모는 그곳에 아기를 낳아놓기도 한다. 그렇듯 화장실은 공용이든 가정용이든 우리가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혼자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그곳을 어떻게 사용하든, 그것은 오롯이 ‘나’에게 달렸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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