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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12] 상설의류할인매장: 옷 가격은 왜 계속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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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01일 18:00 프린트하기

남편이 작년 가을부터 7년 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확신한 아내는 부득불 남편인 나를 이끌고 집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어느 변두리의 후미진 곳에 자리한 상설의류할인매장에 데려갔다. 지방국도변에 제법 주차장도 넓게 마련해 놓은 2층짜리 건물 매장이었다. 매장 앞마당에 웬만한 단층집보다 크게 쳐놓은 대형 천막 안에는 옷들이 벽면을 따라 촘촘히 나열해 있었고 한가운데엔 더 값싼 옷들이 쌓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심란한 음악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들으며 나는 뒷짐을 지고 보는 둥 마는 둥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새 옷에서 풍기는 냄새에 후각이 취해 있었다. 반면 아내는 커다란 추첨함에서 당첨 번호를 뽑듯 수북한 옷 더미에 분주히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GIB 제공
GIB 제공

밖에 나와서 한동안 기다리니 빈손으로 나온 아내가 두리번거리며 남편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건물 매장으로 이동했다. 본 매장이어서인지 좀 더 잘 정돈된 의류들이 성별, 종류별로 나열해 있었다. 이왕 왔으니 값싼 가격에 눈에 드는 게 있다면 한 달 새에 허리둘레가 부쩍 늘어났으니 면바지와 남방 하나씩만 골라보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쩌다 눈에 띄는 것도 있었지만 손은 자꾸 가격표를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어쩌다 마땅한 걸 발견하면 내게는 작은 사이즈밖에 없었다. 구매 의사도 별로 없던 터에 서너 번 그러고 나자 나는 금세 싫증이 나서 농한기의 연만한 농부가 빈 들녘을 걷듯 매장 복도를 오고 갔다. 그사이 언제 다가왔는지 아내가 내 곁에 서 있었다. 아내의 팔뚝에는 내 몫으로 보이는 남방 두 개와 면바지 두 개가 걸려 있었다. 가격표들을 보니 남방은 각각 칠천 몇 백 원이었고 면바지는 각각 이만 원에서 삼사 천 원이 빠져 있었다.


쇼핑을 마쳤으니 계산하고 그만 가자는 내 말에 2층에 올라가면 일이천 원짜리가 많으니 차 안에 기다리라는 말을 내게 건네고는 아내는 매장 입구에 비치된 장바구니를 들고 2층으로 사라졌다. 반시간가량 지났을까, 아내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커다란 비닐봉투에 옷가지를 한가득 채워서 나타났다. 일이천 원짜리로만 스무 개를 골라 사 왔단다. 그 많은 걸 다 입으려고 샀냐는 내 말에 아내는 친정 언니들과 동생에게 되팔 거란다. 다섯이나 되는 자매들은 바빠서 쇼핑할 새도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
“원래 이런 물건이 이런 매장의 미끼 상품이야.”
“미끼들을 다 물어오면 어떡해? 다른 손님들 것도 남겨둬야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아마도 계산대에서 아내는 판매원에게 서늘한 눈총을 받지 않았을까. 그나마 내가 입을 남방과 바지들이 깍쟁이 체면을 겨우 세워주지 않았을까. 얼마 후 처갓집 식구들이 모였을 때 아내는 한쪽 방에 자매들을 불러 모아 정말로 그 비닐봉투를 풀어놓았단다. 보따리장수가 따로 없다.

 

GIB 제공
GIB 제공

외출용 새 옷을 산 지 십여 년쯤 되었으니 집에 있는 나의 옷들은 모두 색이 바랬고 보풀이 일 정도로 낡기도 해서 그날 이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그 상설의류할인매장을 방문했다. 최근까지 모두 네 번 찾아갔으니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우리의 동선(動線)은 매번 같았다. 먼저 마당 천막 안을 둘러보고, 본 매장을 두어 바퀴 돌아보고 나면 나는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아내는 언제나 2층으로 이동했다. 내 몫의 옷은 본 매장에서 가장 값싼 것들 중에서 두세 개가 선택됐지만 아내의 장바구니는 대부분 2층에서 채워졌다. 상품 가격은 본 매장, 마당 매장, 2층 매장 순으로 낮으니 업소 입장에서는 본 매장의 상품이 많이 팔려야 매상이 오를 일이었다. 실제로 손님은 본 매장 안에 가장 많았다. 지갑을 여는 일에 신중한 소비자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최초에 옷이 만들어진 후 상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지 못해 반품을 거듭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흘러 들어온 상품 중 그나마 나은 것들은 마당 매장에 전시됐을 테고, 최하급으로 분류되어 이곳이 아니면 더 이상은 갈 곳 없을 것들은 2층에 부려졌을 테다. 또한 본 매장의 상품들은 대부분 백화점이나 의류전문점에서 한두 해 묵어 더 이상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쫓겨난 이월 상품일 듯하다.


나처럼 한번 구입하면 낡고 해질 때까지 십 년은 입는 소비자만 있다면 의류 제조업체나 옷 장수는 자주 재봉틀을 세우거나 매장 바닥에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 일과겠지만, 세상에는 백화점도 많고 의류전문점도 많고 상설할인매장도 곳곳에서 성업 중이니 소비자의 지갑 두께나 씀씀이에 따라 다 먹고살기 마련인가 보다. 더욱이 사드 배치 문제와 갈등으로 중국으로 향하던 수출 길이 막혀 국내 상설할인매장으로 유입된 값싼 옷가지들 사이에서 입을 만한 것들을 분주히 골라내며 즐거워하는 나의 아내 같은 아낙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듯 어쩌다 상설의류할인매장에 가면 천 원의 행복이 추첨함 속의 당첨 번호처럼 숨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선택받지 못하면 더 이상 갈 곳 없는 옷가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니 그것들은 패션 이전의 기능만으로도 옷 가치가 충분하니 국내외 인류 복지를 위해 헐벗은 많은 사람의 신체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길 바란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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