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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제단위계 재정의 ①] kg, 4대 물리상수 ‘플랑크 상수’ 이용해 다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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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1일 10:00 프린트하기

말에 얽힌 옛날 이야기가 있다. 고깃간 주인에게 ‘이봐, 박가 놈아, 고기 한 근 내놔라’라고 부른 양반과 ‘이보게 박 서방, 고기 한 근만 주게’라고 말한 양반이 서로 다른 고기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진 이야기지만 과학자들은 조금 색다른 시각으로 저 이야기를 볼지도 모른다. ‘고깃간 주인 박씨가 가진 저울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아닐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GIB 제공
GIB 제공

 

● 질량은 ‘질량 원기’로 정의해왔다

 

세계가 통일해서 쓰는 단위 (생활 속에서 따르지 않는 일부 국가도 있다), ‘국제단위계’ 7종은 수많은 논의를 거쳐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물리 법칙을 지탱하는 상수로 정의하기도 하고, 세슘 원자 시계 같은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정의하기도 한다. 7개 국제단위계 중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정의를 알 수 있는 단위는 ‘질량(단위: ㎏)’이다. 아주 간단하다.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과 같다’. 1889년에 ㎏ 원기를 만들고, 이 원기의 질량이 1 kg이라고 지정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있는 질량 원기 복사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있는 질량 원기 복사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단위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만든 ‘약속’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단위가 다르다면 큰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다. 옛날 이야기에서는 고기 덩어리 크기 정도 수준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큰 사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199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있었던 국내 화물기 추락 사고를 예로 들어보자. 사고로 조종사 3 명과 인근 주민 5 명이 사망하고 40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항공기 산업 분야에서는 길이 단위로 피트(30.48 ㎝, 대략 손부터 팔꿈치까지 길이)를, 중국는 미터(m, 대략 좌우로 양팔을 넓게 벌렸을 때 손끝에서 가슴 정도까지 길이)를 사용했다. 상하이 관제탑에서 1500 고도를 유지하라고 했을 때, 관제탑은 1500 m를 의도했겠지만 비행기 조종사는 1500 피트로 생각했다. 그 결과는 사고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단위를 제대로 통일하지 않으면 혼란과 사고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기 전, 과학자들은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세계의 기준이 될 ‘원기’ 두 가지를 만들었다. 미터 원기와 질량 원기다. 미터 원기는 1983년 새로운 미터의 정의가 생기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질량 원기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 질량 원기는 모든 ㎏의 기준이며, 현재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질량의 기준이다.

 

● 가장 안정적인 합금으로 만들었지만 역부족

 

1889년 제작된 질량 원기는 그동안 안정적으로 원기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유리관 세 겹으로 겹겹이 쌓여 보호받고 있다.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원기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89년, 1946년, 1991년, 2014년 네 번 뿐이다. 대신 이 원기 복제본을 만들어 각 나라에 배포하고 몇 년에 한 번씩 서로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원기의 질량이 늘었다. 주변 환경과의 반응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백금 90 %와 이리듐 10 % 합금으로 제작했지만 주변과 상호작용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백금은 수은과 쉽게 반응하는 성질이 있어, 공기 중에 수은 증기가 소량이라도 있을 경우 수은이 원기를 오염시키게 된다. 꼭 수은이 아니어도 사용할수록 손상과 오염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도량형국(BIPM)의 원기와 각 국가의 표준 원기들의 질량은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100년간 대략 50 ㎍이 증가했다.

 

1 ㎏에 50 ㎍은 아직까지는 질량 단위를 정의하는데 큰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다. 다른 원기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보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기의 질량이 변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단위를 정하는 기준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결국 표준 과학자들은 질량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2018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새로운 정의로 바꾸기 위해 연구 중이다.

 

● 물리 상수를 이용한 새로운 정의

 

질량 원기의 실제 질량이 증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실물로 정의를 만든다면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아무리 안전하게 보관하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인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질량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단위 정의에 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다른 국제단위계에서 이런 시도를 해냈다. 길이의 단위, ‘미터(m)’다. 질량 원기와 함께 제작됐던 미터 원기도 지금의 질량 원기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연스레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지 논의가 있었고 미터는 결코 변하지 않는 물리 상수 ‘빛의 속력’을 이용해 정의하게 됐다. 이미 현대 물리학을 통해 빛의 속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이 됐으니, 빛의 속력을 측정하면 됐다. 길이는 속력과 시간과 관련된 물리량이니 속력과 시간을 알면 반대로 길이를 알 수 있다(참고로 시간 단위 ‘초’는 세슘 원자시계를 이용해 정의됐다).

 

길이 단위가 결정되자 다른 단위도 연쇄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됐다. 그 시작은 4대 물리 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다. 양자역학의 기본 상수인 플랑크 상수는 에너지와 관련된 중요한 상수로 단위는 J‧s다. 에너지와 일의 단위인 J(쥴)을 ㎏과 m, s같은 국제단위계 단위로 변환하면 플랑크 상수의 단위는 ㎏‧m2‧s-1이 된다. 즉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이미 결정된 길이와 시간 단위를 이용해 역으로 ㎏을 정의할 수 있다.

 

플랑크 상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측정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광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질량힘센터 책임연구원이 키블 저울로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고 있다. 와트 밸런스라고도 부르는 키블 저울은 기계적인 일률(m‧g‧v)과 전기적 일률(c‧f2‧h)이 같다는 원리를 이용해 플랑크 상수(h)를 구하는 도구다. 현재 플랑크 상수는 6.62606(*) × 10-34 ㎏‧m2‧s-1)까지 구해져 있다. 7월까지 세계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모아 소수점 이하 여섯 번째 숫자 (*)를 확정할 예정이다.

 

 

플랑크 상수가 확정되면 내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질량의 새로운 정의가 합의되고 2019년부터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 기술 발전이 만드는 130년 만의 변화인 셈이다.

 

☞(관련기사) 새롭게 바뀌는 국제 단위 표준들... 한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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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사이언스·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공동 기획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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