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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⑪ 외국인 혐오증은 진화적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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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6일 08:0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사람이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자기 집단이나 나라를 더 사랑하는 것은 진화적 산물이다.
2.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가까운 곳에 살고, 서로 친하며 비슷한 외모나 냄새를 가진 대상을 좋아한다.
3.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내집단 선호는 더 이상 적합한 삶의 방식이 아니다.
4.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한나라에 정국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나라에 가서 진왕 정을 도왔습니다. 나라 곳곳에 수로를 연결하여 논밭에 물을 대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진나라의 구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왕을 어지럽히는 고자질을 합니다. 수로를 내는 일은 사실 진나라 국고를 탕진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술책이라고 보고한 것이죠.


진왕 정의 마음에는 의심이 싹틉니다. 당시 정은 아직 젊은 왕이었는데, 경험과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급기야 축객령(逐客令)을 내립니다. 즉 진나라 출신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 신하들을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진나라에 찾아온 큰 위기였습니다. 아마 이때 축객령이 진짜 시행되었다면, 진왕 정은 그저 그런 미욱한 왕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간축객서(諫逐客書)


진나라의 젊은 벼슬아치였던 이사(李斯)는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립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간축객서, 즉 축객령을 거두라는 글입니다. 몇몇 문장을 고쳐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왕께서는 여러 보물과 미녀를 좋아하시지만, 이 중에 진나라에서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왕께서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시지만, 모두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을 수 있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길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왕은 백성을 버리지 않아야 그 덕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삼황오제에게는 적이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백성을 버리는 것은 적국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 출신의 신하를 버리는 것은 적국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도적에게 병사를 주는 꼴이고, 양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나라에 위험을 피하려면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진왕 정은 이사의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내린 축객령을 스스로 거둡니다. 각 나라의 인재는 진나라에 모여들었고, 진나라는 갈수록 부강해졌습니다. 이후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진왕 정은 ‘진시황(秦始皇)’이 됩니다. 중국 최초 통일 제국의 황제였죠. ‘황제(皇帝)’라는 말 자체가, 진시황이 직접 만든 말입니다.

 

진시황에 대한 평은 폭군에서 영웅까지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그는 수백 년간 지속되던 춘추전국시대의 끊임없는 전쟁을 끝내고 통일 왕조를 건설했다. 강대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은, 사실상 그가 세운 통일 제국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출신과 관계없이 인재를 널리 받아들였는데, 이는 진나라가 부강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 Yuan, Zhongyi 제공
진시황에 대한 평은 폭군에서 영웅까지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다. 그러나 그는 수백 년간 지속되던 춘추전국시대의 끊임없는 전쟁을 끝내고 통일 왕조를 건설했다. 강대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은, 사실상 그가 세운 통일 제국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출신과 관계없이 인재를 널리 받아들였는데, 이는 진나라가 부강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 Yuan, Zhongyi 제공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지난 1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른바 반이민 행정명령을 내립니다. 테러위험국가로 지목된 이란,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과 무슬림 국가 국민의 비자발급과 난민입국 프로그램을 금지한 것이죠.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고, 천만명에 이르는 이른바 ‘불법체류자’를 강제로 추방하려는 계획도 진행중입니다. 진나라의 축객령이 무색한, 국가 수준의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트럼프에게는 명재상 이사와 같은 ‘신하’가 없는 모양입니다. 반이민정책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친부모는 시리아인이었습니다. 애플 신화의 뒤를 이을 미래의 스티브 잡스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중국은 2015년부터 이른바 외국인 영구거류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세계의 인재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두 강대국의 서로 다른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됩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반이민정책,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을 추진하면서,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판 축객령이라고 할 만하다. - Michael Vadon 제공
도널드 트럼프는 반이민정책,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을 추진하면서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판 축객령이라고 할 만하다. - Michael Vadon 제공

 

내집단 선호의 진화


사실 이러한 외국인 혐오의 경향은, 강력한 진화적 산물입니다. 아무리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낯선 이를 경계하고 의심하려는 속성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자신의 형제를, 자신의 집단을, 자신의 나라를 더 사랑하려는 동물적 본능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집단 선호(in-group favoritism) 경향은 외집단 배척의 인지 모듈과 짝을 이룹니다.


내집단을 선호하려는 경향은 어느 집단에서나 관찰됩니다. “내 형제의 고통을, 너의 죽음으로 갚아주겠다”라는 말은 괜한 엄포가 아닙니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각 개인의 잠재적 근친계수를 판독해냅니다. 학연과 지연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애교심이나 애향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집단 선호라는 원시적 인지 모듈의 결과입니다.


동물 종에선 네 가지 방법을 통해서 이러한 내집단 선호의 기전이 작동합니다. 지역(location), 친숙함(familiarity), 표현형 합치(phenotype match) 및 식별 대립유전자(recogition alleles)입니다. 즉 가까운 곳에 살고, 서로 친한 관계이며, 비슷한 외모나 냄새가 나는 것이죠. 마지막 기전인 식별 대립유전자 효과는 흔히 푸른턱수염 효과로 불리는데, 좀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곳에 살고, 같은 방언을 쓰며, 같은 피부색에, 같은 습관과 배경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 즉 ‘다른’ 사람은 싫어합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본성이지만 또한 의식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마음이 맞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입 속의 혀 같은 동료와 일하고 싶죠. 그러나 이러한 내적 선호의 경향은 현대 사회에 잘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 복잡한 현대의 사회적 삶에서, 사람을 가려 사귀는 사람은 점점 고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왼쪽) 일본 내 반한 시위. 한국과 단교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 외국인범죄 척결연대 회원의 다문화 정책 반대 시위. 외국인 혐오증은 인류의 마음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진화적 본성이다. - 연합뉴스 제공
왼쪽) 일본 내 반한 시위. 한국과 단교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 외국인범죄 척결연대 회원의 다문화 정책 반대 시위. 외국인 혐오증은 인류의 마음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진화적 본성이다. - 연합뉴스 제공

 

길을 내는 자, 성을 쌓는 자


돌궐 제 2제국의 재상이었던 톤유쿠크(Tonyukuk)는 수십년간 지속되던 당나라의 복속에서 벗어나 독립제국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을 쌓는 자 필히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필히 흥하리라”


사실 이 말은 아시아 초원 지대를 근거지로 삼은 돌궐의 지리적 특성상 성을 쌓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고 왕에게 간하는 말입니다. 그는 당나라의 백분의 일도 안되는 돌궐의 국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을 쌓아봐야 지킬 것도 없고, 결국 패배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인류는 긴 역사 동안 부족 위주의 생활 방식을 이어갔습니다. 50년대 무렵 서호주 지역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한 아보리진은 평생토록 만난 사람의 숫자가 2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을 경계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수백명의 사람을 만나고, SNS에 올린 글을 수천명의 사람이 읽는 시대입니다. 유전적 본성이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이른바 게놈 지연(Genome lag)이라 합니다. 우리 유전자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내집단 선호의 본성은, 이제 유효기간이 다한 진화적 잔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성이라 해도, 사람이 없어지면 곧 허물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허술한 길이라해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큰 길로 변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열린 길의 사회일까? 굳게 닫힌 성의 사회일까? - Pamela Adam 제공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성이라 해도, 사람이 없어지면 곧 허물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허술한 길이라해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큰 길로 변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열린 길의 사회일까? 굳게 닫힌 성의 사회일까? - Pamela Adam 제공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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