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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14] 다락방: 마음이 자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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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5일 18:00 프린트하기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19층이다. 아래층은 있어도 위층은 없다. 아니, 있다. 꽈배기 모양의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다락방이 있다. 재작년 초봄에 이사할 집을 알아볼 때 나는 부동산 중개인의 소개로 이 집을 방문했다. 나는 곧바로 전세 계약서에 서명했다. 처음에는 살던 집보다 넓이가 작아 뒷머리를 긁적였지만 다락방에 올라가 보고는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잡동사니가 많은 우리 살림 중 비교적 가볍고 덩치 큰 짐들을 다락방에 몰아넣을 요량이었다. 이사를 하자, 당시 갓 중학생이 되었던 딸아이는 볼일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다락방을 오르내리며 자꾸 웃었다.

 

GIB 제공
GIB 제공

딸아이가 다락방에 올라가 무엇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내려오곤 했던 걸로 봐서는 오각형 모양의 앞뒷면 구조를 둘러보거나 벽면에 붙여 가지런히 쌓아놓은 살림들을 뒤적이다가 낮은 천장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금세 심심해져 내려왔을 듯하다. 그럼에도 딸아이는 더 궁금할 것도 없는 다락방에 종종 조르르 올라갔다가 콩콩콩 내려왔다. 그 발소리는 내 귓바퀴에서 살갑게 맴돌았다. 낯설고도 낯익은 그 공명의 발소리는 사십 년 동안 내 기억 속에만 들어앉았던 유년의 현장에서 들리는 내 발걸음 소리였다.


유년 시절 우리 집은 단층 기와집이었지만, 안방에서 연결된 다락방이 있었다. 세 평이나 됐을까, 다락방은 부엌 천장의 윗면이었다. 송판으로 연결된 예닐곱 칸의 계단을 올라가면 어른은 허리를 굽혀야 했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30촉짜리 백열전구 하나만 조심하면 불편할 게 없었다. 다만, 그 자유는 전기 사용에 주저하는 어른들 눈치에 주로 한낮에만 독차지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륙색이나 나무 궤짝에 넣어둔 모기장 등을 꺼낼 때 말고는 식구들은 드나들지 않았기에 다락방은 나만의 독방이나 다름없었다. 다락방 입구에는 여닫이문이 있어서 그 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가면 어두컴컴했지만 아늑했다. 마치 극장 안에 들어갔을 때처럼 처음에는 어둠이 익숙지 않지만 눈은 동공을 확장시켜서 차츰 공간을 읽어냈다. 그래도 교과서 두 권 크기만 한 유리 창문이 있어서 햇빛도 스며들었고 창을 열면 지나가는 바람도 기웃거리며 환기도 해주었다.

 

GIB 제공
GIB 제공

그 시절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면 한두 시간은 혼자 놀았다. 누나가 짙푸른 표지의 노트에 필사해놓은 롱펠로의 시를 읽기도 하고, 학교 숙제였던 국경일 기념 포스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종이로 만든 손오공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고장 난 라디오를 분해하기도 하고, 양초를 켜놓고 흔들리는 촛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궤짝 속의 집동사니를 꺼내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오의 기억은 내게 더욱 선명히 남아 있다. 내가 다락방에서 놀다가 긴 낮잠에 들었던 것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날이 저물어 작은 창문에 어슴푸레한 아주 옅은 빛이 채워져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다락방 계단을 내려와 안방에 맞닿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저녁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수저를 든 채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어머니께서 막내아들을 찾으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는 말과 함께 밥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다락방뿐만 아니라 나는 잠자리를 펴려고 이불을 들어낸 빈 이불장에서도 곧잘 들어가 있곤 했다. 나만의 공간이었던 그곳에 들어앉아 있으면 언제나 편안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엄마 배 속의 태아 적 평온함을 느꼈으리라. 그러니 지금 사랑하는 자녀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다면 내버려두시라. 그리고 배우자가 자동차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내버려두시라. 간혹 사람은 자발적으로 혼자 있을 때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깊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사자가 스스로 자기 방에서 나왔을 때, 스스로 차 밖으로 나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는 것뿐이다. 그곳의 내부가 고요하고 평안하다면 그곳의 바깥은 활기차고 즐겁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곳의 안과 밖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몸이 자라나 세상 밖으로 나오듯, 세상 밖에서 몸으로 살면서 마음의 다락방이 없으면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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