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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가는 길목 1] 벚나무를 올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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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가는 길목 1] 벚나무를 올려보며

2017.07.22 17:30

벚나무의 혈관은 검다. 검은 곳에서 자란 연둣빛 살은 풋풋하다. 이산화탄소만 편식하며 저 혼자 자란 게 아니라 까까머리 때부터 ‘해의 살’이 쓰다듬어 주었기 때문이다, 매일 이른 아침 출근해서 저녁이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햇살의 손길이.


간혹 뭉게구름 해먹에 누워 햇살이 토막잠을 잘 때면 나무는 잠시 심드렁해지지만, 기지개 켜며 일어난 햇살이 다시 지상을 보듬으면, 벚나무는 손바닥을 펼쳐 웃는다. 나무만큼 선탠을 즐기는 생물은 없다. 그렇게 한 계절을 지나면서 청개구리 이파리는 점점 초록으로 짙어질 것이다.

 

윤병무 제공
윤병무 제공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계절이 가고 오는 어느 비 내리는 가을날, 장년의 붉은 벚나무는 빗살처럼 빼곡한 사연을 지고 산하를 건너온 나그네 바람을 만날 것이다. 지난봄 작달비 몰아친 한밤에 나무가 잠든 사이 벚꽃들을 데려갔던 바람이 세상을 한 바퀴 돌아와 추적추적 나지막이 말할 것이다.


당신의 꽃잎으로 웨딩드레스 한 벌을 지어 어느 가난한 여인에게 선물했어요. 그런데 그 여인이 당신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오래 앉아 기다려도 연인은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여인의 연인은 당신의 신록 아래서 마냥 기다렸다는군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란 나뭇가지가 서로 닿지 못하듯 길이 엇갈렸던 거예요. 끝내 그 연인들은 만나지 못했어요. 당신의 계절이 바뀌었듯 그들의 시절도 지나갔기 때문예요.


소슬바람의 말에 벚나무는 지난봄에 자신을 찾아와 연둣빛 청춘을 오래 올려보던 한 남자를 기억해낼 것이다. 그리고 제 꽃잎들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 시절을 기다렸을 여인의 어긋난 운명을 생각하며 다홍색 이파리의 눈꼬리에서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고는 연인을 대신해 아무도 모르게 제 중심에 나이테라는 빈 가락지 하나를 가만히 낄 것이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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