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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희생만 한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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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2일 08:00 프린트하기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 특별하고 고마운 일이라기보다 마땅히 그러기를 기대하고, 만약 그러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거나 ‘나한테 왜 저러지?’라는 의문을 품곤했다. 걱정해주는 말을 들을 때에도 진심으로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가식적이라며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내가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게, 또 항상 진심어린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당연한 걸까?

 

GIB 제공
GIB 제공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 심각한 질병, 불의의 사건사고, 이혼 등을 겪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라고 하면 비교적 논리적인 확률을 내놓곤 한다. 예컨대 네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면 저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 역시 1/4이라는 답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본인’에게 일어날 확률은 어떨 거 같냐고 물으면 같은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남들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혼율이 50%면 50%의 확률로 이혼하게 되겠지만 마법같이 나만은 그런 일을 덜 겪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생각한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선 ‘설마 나에게..’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고 하면 ‘저런.. 안 됐군’이라며 안쓰러워하면서도 곧 수긍하지만 내가 그런 질병에 걸렸다고 하면 마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마냥 화를 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실패 역시 남들은 다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어도 ‘나만은’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일이 오직 나만은 빗겨나야 하는, 나만은 운명이나 세상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아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들은 다들 어느 정도 왠지 나에게만은 저런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그게 ‘옳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세상과 운명이 어째선지 나만은 특별대우 해주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sense of entitlement)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몸도 건강하고 업무 성과도 괜찮고 인간관계도 괜찮고 가족도 화목한 등 사실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모든 면에 있어 완벽한 삶’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여기에서 삶이 조금만 벗어나면 마치 잘못된 대우를 받은 양, 내 삶에서 뭔가 잘못되는 것은 ‘불의’인 양 억울해하곤 한다.


실제로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내 삶이 잘 흘러가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고 있을수록 뭔가 잘못되면 세상이나 신을 크게 원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과 신이 나에게 무슨 빚을 졌기에 유독 나만 편애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신에게 좋은 운명을 맡겨두기라도 한 걸까? 남들은 고생하더라도 나는 꽃길만 걷는 게 당연하다니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인가.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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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남에게 잘해주는 것은 엄청 어렵고 전혀 당연하지 않은 나의 ‘선행’이지만, 타인이 나에게 잘해주는 건 기본이며 당연하고 그러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연구에 의하면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내가 남에게 한 잘못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실수’로 인한 ‘일시적’인 일이라며 일의 영향을 과소평가하지만 남이 내게 한 잘못에 대해서는 ‘일부러’한 아주 나쁜 일이며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비슷하게 내가 남에게 잘 한 일은 특별한 일로 오래 기억하지만 남이 내게 잘 한 일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잘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관계에서도 우린 기본적으로 내가 대접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으며, 또 내가 이따금씩 잘못을 저지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남이 잘못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은 관계에서 주로 희생만 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게 충분히 잘 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곤 한다.


물론 우리는 자신만의 사정만을 자세히 알 뿐 타인의 사정은 그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기의 삶이 제일 힘들다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겉보기엔 평탄해 보이는 네 삶은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자신의 힘듦은 과장하되 타인의 힘듦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내 삶의 나락을 아는 만큼 타인의 나락을 깊게 알 수 없어서 생기는 비대칭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대칭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판단은 상당히 자기중심적일 수 밖에 없음을 말이다. 쉬워 ‘보이는’ 삶은 있을지라도 정말 쉬운 삶은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부족함과 불운으로 인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감을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삶이 수월해 보인다고 겉보기로 판단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삶이 참 쉬워 보인다며 나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음을 떠올려 보자.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주고, 식상한 위로라고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타인을 위해 마음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듯 나에 대한 타인의 관심도 결코 당연하지 않을 것이다.

 


※ 참고문헌
Baumeister, R. F., Stillwell, A., & Wotman, S. R. (1990). Victim and perpetrator accounts of interpersonal conflict: autobiographical narratives about ange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9, 994-1005.
Exline, J. J. (2017). Forgiveness and the ego: Why hypo-egoic states foster forgiveness and prosocial responses. In S. A. David, I. Boniwell, & A. Conley Ayers (Eds.), The Oxford handbook of Hypo-egoic Phenomena (pp. 257–269).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Grubbs, J. B., Exline, J. J., & Campbell, W. K. (2013). I deserve better and god knows it! Psychological entitlement as a robust predictor of anger at God. Psychology of Religion and Spirituality, 5, 192-200.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imaum02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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