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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의 목소리 (15)] 학부 공학 교육이 망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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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2일 10:00 프린트하기

감동근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김명호 작가 제공
김명호 작가 제공

전자공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전자를 이용하는 학문? 그런데 전자를 이용하지 않는 시스템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 보니 전자공학의 범위는 너무 넓다. 전자와 약간이라도 관련되면서 돈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다룬다. 잠깐! 돈이 될 만한 것을 다루다니……. 그게 바로 기업이 잘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정말 돈이 될 것 같은 아이템은 기업이 압도적인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서 연구 개발한다. 그러니 전자공학에서 기업과 학교의 실력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KAIST 박사과정 때 나름 세계 최초랍시고 반도체 패키징(packaging) 분야 최고 저널에 논문을 몇 편 썼다. 그런데 IBM에 들어가보니 거기서는 이미 오래 전에 다 연구해둔 것들이었다. 논문으로 안 썼을 뿐이지. 학계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논문은 제3자가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끔 써야 한다는데 그런 논문을 어느 회사가 쓰겠는가? 경쟁사와 기술 격차가 상당하다고 판단될 때는 특허조차도 안 쓸 때가 있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런 것 연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며칠 내로 구글 같은 회사가 이미 제품을 내놓는 경험을 많이 한다.


반도체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려면 패키징만 잘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통신 아키텍쳐(architecture)도 좋아야 하고 집적 회로도 우수해야 한다. 패키징만 해도 전기적 특성 외에도 기계적 특성과 발열 특성까지 고려해야 하고, 공정 기술이 받쳐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 단계에서도 열 명 정도의 팀이 필요하고, 양산까지 고려하면 수십 명이 필요한 일이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팀에 껴 있으면 그냥 매니저가 시키는 일만 해도 저절로 세계적인 성과가 된다.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이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분야에서 일개 교수가 대학원생 몇 명 데리고 얼마나 의미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논문 실적만을 강조한다. 언론사 대학평가나 정부 연구개발 사업 평가 지표 때문에 각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교수 승진에 필요한 논문 편수를 해마다 올리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용케 맞춘다. 실제 산업계에 필요한 분야를 연구해서는 회사와 경쟁하기 어렵다. 물론 회사는 논문 쓰는데 관심이 없으니 회사에서 이미 오래 전에 해 놓은 것이라 할 지라도 여전히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좀 더 현명한 생존 전략은 회사에서 전혀 관심 없을 만한 분야를 택하는 것이다. 다른 교수들조차 별 관심 없을 만한 분야를 고르면 더욱 안전하다.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최신 트렌드를 모르고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가지실 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르치는 전자기학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바뀐 것이 거의 없다. 학부 과목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당장 다음 학기에 취업할 학생이라면 모르겠으나, 4~6년 뒤 졸업할 때에도 여전히 써먹을 수 있으려면 지난 십 수 년간 변하지 않은 내용으로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하고 논문을 출판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기업이 학교를 훨씬 앞서 있는 분야에서는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논문거리를 찾아 기업이 관심 없을 문제를 파고들다 보면 오히려 주류 트렌드와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 연구는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바로 저 논리가 망가진 학부 교육을 방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악용돼 왔다는 점이 문제다.


내 전자기학 수강생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 “인맥을 통해 기출문제를 구해다가 달달 외운 학생들 때문에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는 불만들이 있어서, 지난 네 학기의 시험 문제와 풀이를 자료실에 모두 올려준다. 기출문제라 해봐야 어차피 교과서 예제 수준의 문제들이다. 처음엔 책에 나오지 않는 참신한 문제들을 시험에 냈더니 평균이 10점대로 나오길래, 그 다음에는 기출 문제의 조건만 살짝 바꿔서 냈다. 그래도 점수가 너무 안 나와서 최근에는 기출 문제를 완전히 베껴서 내고 있다. 최신 트렌드는 커녕 100년 전에 풀린 문제를, 그것도 족보를 그대로 베껴내는 데 평균이 40점이다.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저런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사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100명을 한 반 30명씩 세 반으로 나눠서 가르치면 학업 성취도는 획기적으로 올라간다. 전자기학에서는 수식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대신에 판서를 꼭 할 필요가 있지만, 100명이 다 볼 수 있게 쓰려면 칠판을 수시로 지워야 하며 그럴 때마다 흐름이 뚝뚝 끊긴다. 30명 상대로는 지필고사가 아니라 한 명씩 불러서 구술 면접을 보면서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질문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점점 깊이 있게 던지면 상위권 학생들의 호기심도 자극할 수 있다. 개념은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벡터 미적분 계산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교수가 별도의 문제 풀이 세션을 운영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된다. 하지만 책임 시수가 지금의 두세 배로 올라간다. 그러면 논문을 못쓰니 ‘연구중심대학’에서는 선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면서 교수법 특강을 들으라는 둥 엉뚱한 데서 답을 찾고 있다.


아주대에 지원한 고3 수리 논술 채점을 할 때마다 여러 번 충격을 받는다. 우선 문제가 꽤 어려워서 놀라고, 또 그걸 상당수가 잘 풀어내서 놀란다. 그것에 비하면 족보를 베껴서 내는 전자기학 문제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모욕하는 수준인데, 거기서 낙제점을 받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교육은 큰 변화 없이 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한가한 것을 넘어서 너무 뻔뻔한 얘기다.


얼마 전 정부 대형 사업에서 학부생 인턴 실적을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열정 페이’를 받으며 인턴을 수행하도록 강요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학교도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에게 인턴 학생들에게 4주간 총 40만원 이상을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니 ‘열정 페이’로 비난 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4주 일할 인턴을 교육하고, 40만원 받는 인턴한테 맡길 만한 의미 있는 일감을 찾는 게 더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8주 프로그램도 있지만 이건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다. 4주나 8주나 이력서에 똑같이 한 줄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교수가 신경 쓰면 어느 정도 윈-윈(win-win)이 될 수 있는 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이 어떤 과목들을 수강했고 어느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기업한테는 어떤 일이 필요한 지를 고려하여, 학생이 정해진 기간 안에 나름대로 완결성 있게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 이런 것이 교수로서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지만,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일이다.


IBM 근무 시절 내 매니저가 예일대 물리학과를 나왔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해서 예일대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커네티컷 주립대로 보내는 것을 봤다. 매니저의 부인도 잘 나가는 의사여서 학비 차이는 그 부부한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터라 왜 그랬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예일대 교수들은 다들 자기 연구하느라 바빠서 학부생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오히려 좋은 교육 받으며 기초를 탄탄히 하기에는 주립대가 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부 졸업 후에도 계속 연구를 하고 싶어하면 그 때 예일대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몇 군데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육 중심 대학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대학 평가에서 연구 실적만 강조하고 있으니 교육 중심이어야 할 대학들이 억지로 연구 중심인 척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학이 수행하는 대형 연구 개발 사업은 대폭 줄이고, 그 돈을 학부생 교육을 제대로 하는데 써야 한다. 어차피 의미 있는 연구는 하지도 못할 상황이니 영양가 없는 논문 억지로 쓰게끔 하지 말고, 중요한 줄 알면서도 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학과 교수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이 몇 개가 돼야 하는지 논쟁할 필요 없이, 각 대학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분야에 따라 그 숫자가 달라질 수 있고, 거기에 속한 학교도 달라질 것이다. 한 학과 내에서도 교수에 따라 역할이 다를 수 있다. 내 연구실의 대학원생은 6명인데 내게 배정된 학부생은 30명이 넘으니, 나는 그 비율만큼 학부생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반면 KAIST 전자과 교수라면 1인당 배정된 학부생은 3명도 안 되지만 대학원생은 대개 15명이상 데리고 있으니 당연히 대학원생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대학원생을 한 명이라도 받은 교수라면 그 대학원생 교육을 위해 논문 쓰는 연구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는 또한 학부생 교육도 맡고 있기 때문에 그 비율에 맞게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당연한 얘기가 현실에서는 완전히 부정 당하고 있다.


대학교육혁신위원회에서 아이디어가 안 나와서 혁신을 못 하는 게 아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글쓰기가 공학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글쓰기를 잘 하는 것은 차치하고 직장 생활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 프로젝트 보고서를 보면 이게 카톡 메시지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는 한두 학기 글쓰기 수업을 듣게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글쓰기를 각 전공 수업에 녹여내야 하는데, ‘연구중심대학’ 교수가 매주 100명을 첨삭지도 할 수 있겠는가?


온갖 아이디어가 나와도 결국 중요한 것은 교수가 학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내 연구실 대학원생 중에서도 아무래도 제일 고학년차 학생(학부 06학번)들을 제일 자주 만나게 된다. 95학번인 나와 11년 차이가 나니 아무래도 적지 않은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근데 학부 신입생들은 이 대학원생들하고 또 11년 차이가 나는데, 갈수록 변화가 빠른 세상이니 그 간극은 더 클 것이다. 내 아이들은 이제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니, 나는 요즘 대학생들이 무슨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는지 사실 잘 모른다. 수업 시간 외에 같이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


어떤 문제들이 있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엉뚱한 경쟁을 하느라 공학 교육이 죽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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