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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영화] 가장 빛나는 데뷔작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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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2일 16:00 프린트하기

# 영화 ‘파수꾼’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시간 57분
개봉: 2011년 3월 3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KAFA FILMS 제공
KAFA FILMS 제공

요즘은 ‘파수꾼’이라 하면 이시영 주연의 드라마나, 고전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시나 ‘해리 포터’ 덕후라면 퀴디치 경기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2011년 국내에서 ‘파수꾼’이라는 한국영화가 개봉했는데,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한 ‘박열’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제훈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이제훈의 연기도 그렇지만, ‘동주’의 박정민, 드라마 ‘천상의 약속’의 서준영 등 젊은 배우들의 심도 깊은 연기와,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함을 뽐내는 윤성현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아래에는 영화 ‘파수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세 친구

 

KAFA FILM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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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자살했다. 기태(이제훈 분)의 아빠(조성하 분)는 아들의 갑작스런 자살의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 운영하는 가게의 문도 닫고 아들의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실마리를 모은다.


‘백키’라고 불리는 (백)희준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동윤, 기태와 절친한 친구가 된다. 남자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못하는 숙맥.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이 절친인 기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태에게 괜히 짜증 섞인 말을 쏟아낸다. 자기 딴에는 친구를 배려해서 여학생의 고백을 거절한 기태는 그런 희준이 고깝기만 하다. 그 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학교 ‘짱’이었던 기태는 패거리와 함께 희준을 끊임없이 괴롭히게 된다. 희준은 끝내 전학을 결심한다.


기태와 중학교 때부터 절친인 동윤은 이렇게 위태로운 친구들의 관계가 걱정이다. 희준이 전학을 가자 둘만 남은 동윤과 기태는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된다. 그때 기태는 동윤의 여자친구 세정(이초희 분)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동윤은 기태의 이 한 마디 말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 ‘가장 빛나는 데뷔작’

 

KAFA FILM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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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는 홍보문구에 비해서, 영화의 분위기는 굉장히 어둡고 음울하다. 친구의 자살, 그 아버지의 망연자실함, 자살한 친구들의 사연과 상처까지도. 영화는 절친했던 세 친구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 혹은 과거의 과거까지 넘나들면서 이들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마치 퍼즐 조각처럼 보여주는데, 다른 영화보다는 전개가 다소 복잡할 순 있어도 관객이 따라가기에 그리 벅찰 정도는 아니다.


평론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극찬한 것처럼,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와 소재를 통해, 주로 성장과 희망, 밝은 미래만을 이야기하던 청춘영화의 범주의 틀을 과감히 깨버리는 데 성공한다. 아이들이 관계를 지속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데 얼마나 서투르고 취약한 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단 5000만 원의 예산에서 감독 자신이 각본과 편집, 의상까지 도맡은 수고를 한 만큼 감독의 의도가 온전히 담긴 영화가 되었다.


또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엄지를 들어올리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에는 모두 신인이거나, 독립영화에서만 활동하던 배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은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극중 감정을 여러 차례 폭발시키는 이제훈의 경우, 감독이 원했던 ‘살기’ 어린 눈빛을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영화제의 신인상을 싹쓸이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내면의 연약함을 숨기고자 점차 폭력성을 과시하는 기태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한 그의 연기는, 그와 유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국내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병헌을 이을 재목으로 손꼽혔고, 이제는 그에 못지 않은 배우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서준영과 박정민 역시 각각 동윤, 희준을 연기하면서 제 역할을 다해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비중은 많지 않지만 기태 아버지로 잠깐씩 등장하는 조성하의 연기는 관객까지도 망연자실하게 만들 정도로 탁월하다.

 


# 남학생들의 공고한 피라미드

 

KAFA FILM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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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 어린 초등학생 소녀들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냈다면, 그보다 5년 앞서 개봉한 ‘파수꾼’은 남자 고등학생들 간의 서툰 관계맺기와 폭력, 서로가 주고 받는 상처에 대해 조명한다. 어긋난 관계의 단면을 포착해 독립영화라는 틀을 깨고 두 영화 모두 청룡영화상, 영화평론가협회상 등 유수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신인상을 수상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데뷔작이다.


‘우리들’은 주로 빈부의 차이 때문에 소녀들 간의 관계에 간극이 생긴다. 그러나 ‘파수꾼’의 남학생들은 힘을 기준으로 한 권력관계가 파국의 원인이 된다. 남학생들로만 구성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그곳이 마치 생태계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볼 수 있듯, 누가 제일 싸움을 잘하고, 또 누가 누구를 때려 눕혔는지에 대한 정보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이렇게 먹이 사슬의 피라미드가 한 번 구축되면, 그 서열에 따라 학생들의 행동이 바뀐다. 높은 서열의 학생은 다른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낮은 서열의 학생은 그런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생활하게 된다. 물론 선생님들은 자꾸만 성적을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고 싶어 하겠지만.


‘파수꾼’은 남자 아이들이 구축한 생태계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기태, 동윤, 희준은 친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학교의 ‘짱’ 기태는 친구들에게도 점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친구들의 관계는 단순히 힘에 의한 권력관계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고 더 끈끈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한다. 특히 제일 먼저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기태와 희준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기태가 자신의 아킬레스 건(엄마의 부재)을 건드린 희준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고, 이 때 두 사람이 친구로서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힘에 의한 상하관계에 놓여 있음을 희준이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 그들의 깊고 넓은 세계

 

KAFA FILM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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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동윤과 기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 기태가 고등학교 때는 주먹으로 학교를 ‘접수’했지만 중학교 때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동윤은 알고 있다. 기태가 그렇게 학교에서 “미친 개”처럼 활보하는 이유가 잠시나마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라는 것뿐이고, 사실은 기태가 마음을 의지할 곳은 동윤 자신이라는 것 역시 동윤은 안다. 그리고 기태는 동윤이 그의 여자친구 세정을 얼마나 마음에 두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서로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누적시키고, 영화는 비극이 된다.


서준영 배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파수꾼’을 만든 윤성현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학생이 죽으면 언론에 딱 한 줄, ‘성적 비관 자살’이라고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물론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뉴스가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사건의 A부터 Z까지 뉴스에 싣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기자뿐 아니라 독자인 우리들도 (특히 요즘 들어)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가 쉽게 단정짓는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그저 별 생각도, 감정도 없이 매일매일 대충대충 놀고 먹거나 혹은 공부만 하면서 살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학생이어도 그들이 형성하고 쌓아가는 관계의 과정은 어른들이 관계를 맺는 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학생들도 우리처럼 성장해가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기쁨과 유희를, 때로는 상처와 고통을 느낀다.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 안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자라면서 경험했듯이 학교 안에는 무수한 권력관계와 갈등이, 알게 모르게 계급적 차별이 존재한다. 부유하거나 가난한 집안의 친구, 성적이 좋거나 사교성이 좋은 친구, 싸움을 잘하거나 유머 감각이 좋은 친구, 부모님 중 한 사람이 부재한 친구 등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격을 지닌 친구들은 제각기 무리를 지어 활동하고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배척하거나 서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어린 애들이 뭘 알겠어"와 같은 말로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는 어린 이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고 넓다. 그들 세계의 심도를 정밀하게 보여준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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