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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생쥐의 앞발이 손이 되지 못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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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01일 11:30 프린트하기

얼마 전 신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씨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우리나라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정경화, 장영주(사라 장)만 떠올리는 수준인 필자는 기사를 읽고 궁금해져 연주를 한번 들어보려고 유튜브를 검색했다. 신지아-손열음(피아노) 듀엣의 연주 동영상이 여럿 나왔고 한 편을 보자 강주미(클라라 주미 강, 바이올린)-손열음 듀엣의 연주 동영상도 올라왔다. 덕분에 신지아 씨 연주와 함께 이름은 알고 있었던(워낙 특이해서)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도 즐겁게 감상했다.

 

사람을 포함한 고등영장류는 손놀림을 잘 할 수 있게 신경회로가 구축돼 있다. - 동아DB 제공
사람을 포함한 고등영장류는 손놀림을 잘 할 수 있게 신경회로가 구축돼 있다. - 동아DB 제공

평소 클래식 음악은 라디오나 CD(대부분 서구의 유명 연주자들)로만 듣다가 유튜브로 연주장면을 ‘시청’하니 클래식 연주도 ‘볼 맛’이 쏠쏠하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빠른 템포에서 연주자들의 손을 클로즈업한 화면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현을 짚고 건반을 두드리는 현란한 손놀림이 경이로웠다.


세 사람의 연주를 지켜보다 문득 ‘인간이 손을 능숙하게 사용하게 진화했다지만 저 정도로 정교한 손놀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손놀림의 진화, 즉 뇌와 손가락의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회로의 진화는 구석기인이 수렵채취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이뤄졌을 텐데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저런 고도의 운동수행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의 뇌에도 어릴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하면 이런 손놀림(물론 예술적 완성도는 한참 떨어지겠지만)을 할 수 있게 하는 잠재력(신경회로배치)이 있다는 것인데 아무튼 놀라운 일이다.

 

최근 연구결과 생쥐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손놀림 회로가 퇴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끈 변이생쥐는 회로가 유지돼 앞발로 물건을 다룰 때 정상생쥐보다 훨씬 능숙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렇다고 피아노를 칠 정도는 아니지만. - 사이언스 제공
최근 연구결과 생쥐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손놀림 회로가 퇴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끈 변이생쥐는 회로가 유지돼 앞발로 물건을 다룰 때 정상생쥐보다 훨씬 능숙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렇다고 피아노를 칠 정도는 아니지만. - 사이언스 제공

손놀림 회로, 원숭이와 유인원에 있어


학술지 ‘사이언스’ 7월 28일자에는 손놀림의 진화에 대한 뜻밖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좀(사실은 한참) 과장을 하면 생쥐도 갓 태어났을 때는 ‘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자라면서 회로가 끊어져 평범한 ‘앞발’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회로를 없애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고장 낸 변이 생쥐의 경우 앞발을 손처럼 사용해야 할 때 훨씬 능숙하게 해낸다고 한다.


동물 가운데는 앞발(또는 앞다리)이라고 불러야 할지 손(또는 팔)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티라노사우루스의 작은 앞다리는 걷는데 전혀 기여를 하지 않으므로 팔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다람쥐는 도토리를 ‘양 앞발’로 쥐고 있는 것일까 ‘양 손’으로 쥐고 있는 것일까. 모든 동물에서 사지의 뒤쪽 한 쌍은 걷는 게 주된 기능이므로 어쨌든 발이지만 앞쪽 한 쌍의 경우 말단에서 갈라진 부분을 얼마나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에 따라 발이나 손 가운데 하나로 불러야 하는 걸까.


아무튼 포유류에서 진원류는 이런 고민 없이 앞쪽 한 쌍을 확실히 손이라고 부른다. 진원류는 영장류 가운데 원숭이(monkey)와 유인원(ape)을 가리킨다. 이들은 엄지가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보게 배치돼 있어 손놀림이 새로운 경지에 오른 동물들이다. 따라서 이런 손놀림이 가능하게 하는 뇌회로의 배치도 진원류의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 뇌의 중심전회는 1차 운동피질로 불리는데 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한다. 각 영역별로 담당하는 신체부위를 그린 몸순서배열 지도로 얼굴과 손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 위키피디아 제공
사람 뇌의 중심전회는 1차 운동피질로 불리는데 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한다. 각 영역별로 담당하는 신체부위를 그린 몸순서배열 지도로 얼굴과 손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 위키피디아 제공

여기서 잠깐 사람의 손놀림 회로를 살펴보자. 뇌의 전두엽이 두정엽과 만나는 지점인 중심전회는 1차 운동피질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몸의 근육 움직임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운동피질의 각 부분이 담당하는 신체부위를 따라 사람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을 텐데 얼굴과 손이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섬세한 근육조절이 필요한 부위라서 많은 뉴런이 할당돼 있다는 말이다.


1차 운동피질의 뉴런은 중뇌와 연수를 거쳐 척수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피질척수로(corticospinal tract)라고 부른다. 근육과 연결된 운동뉴런이 척수에서 만나 신호가 전달된다. 연구결과 사람을 포함한 진원류는 피질척수뉴런과 손 근육의 운동뉴런을 1대 1로 연결하는 회로가 잘 발달해 있는 반면 다른 포유류에서는 이 연결이 부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찌 보면 예상한 내용이다.

 


정교함을 스스로 버려


미국과 중국, 일본의 공동연구자들은 이 회로가 기존에 추측처럼 진원류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포유류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났지만 많은 종에서 발생 또는 성장 단계에서 퇴화한 것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생후 이틀 된 생쥐의 신경계를 살펴본 결과 놀랍게도 이 회로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생후 10일 무렵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14일이 되자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에서 ‘PlexA1’이라는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 스위치를 끄면 성장과정에서 회로가 유지돼 생쥐도 사람처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될까. 이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진 변이 생쥐를 만들어 실험한 결과 앞발이 손의 역할을 할 때 정상 생쥐보다는 훨씬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물론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카펠리니를 주면 손놀림 회로가 없는 정상생쥐는 양 앞발로 엉성하게 붙잡고 먹는 반면(왼쪽) 회로가 있는 변이생쥐는 제법 그럴듯하게 쥐고 먹는다(오른쪽). - 사이언스 제공
카펠리니를 주면 손놀림 회로가 없는 정상생쥐는 양 앞발로 엉성하게 붙잡고 먹는 반면(왼쪽) 회로가 있는 변이생쥐는 제법 그럴듯하게 쥐고 먹는다(오른쪽). - 사이언스 제공

예를 들어 소면처럼 생긴 파스타인 카펠리니를 줄 경우 정상생쥐는 양 발바닥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잡고 갉아먹는 반면 변이 생쥐는 사람처럼 발가락으로 카펠리니를 쥐고 먹는다. 그 결과 더 쉽고 빠르게 카펠리니를 먹을 수 있다. 몸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어내는 실험에서도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았다. 작은 통속에 먹이가 들어 있어서 앞발로 꺼내 먹어야 하는 경우도 변이 생쥐가 훨씬 쉽게 먹이를 꺼냈다.


그렇다면 왜 생쥐는 이처럼 앞발가락(손가락?)을 정교하게 쓸 수 있었음에도 그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해버린 것일까. 얼핏 생각해도 이런 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앞발가락을 능숙하게 놀리는 게 주로 땅에서 네 발로 걷는 동물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배열에 신경회로를 많이 할당할 경우 이동 같은 움직임에 필요한 신경회로가 부실해져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생쥐를 포함한 사족보행 포유류에서 이 회로가 퇴화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포유류의 역사에서 오늘날 원숭이처럼 주로 나무에서 생활하게 적응한 동물에서 이런 손놀림 회로가 진화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게놈 염기서열을 기반으로 만든 포유류의 계통분류에 따르면 설치류가 영장류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즉 사람, 개,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라면 (사람, 생쥐) 대 (개)가 된다는 말이다.


한편 티라노사우루스가 살던 시절인 6600만 년 전 화석이 발견된 초기 영장류인 퍼가토리어스(Pugatorius)는 오늘날 영장류보다 오히려 다람쥐나 쥐가 연상되는 데 발목뼈를 보면 나무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설치류와 영장류의 공통조상도 나무에서 살았고 그 결과 손놀림 회로가 진화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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